
[새전북신문] 정읍에는 사람 냄새 나는 중국집이 하나 있다. 정일중학교와 유럽마을 엥겔베르그 앞에 자리한 중화요리 전문점 ‘하이 베이징’. 이곳의 주방에서는 오늘도 뜨거운 불길과 함께 한 남자의 인생이 끓고 있다. 주인공은 유도선수 출신 중화요리 쉐프 서정원 사장이다.
서 사장의 삶은 한마디로 ‘도전’이었다. 어린 시절 그는 호남중학교 유도선수로 매트를 뒹굴며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배고팠던 시절, 운동보다 더 소중했던 것은 친구들과 나누던 우정과 사람의 정이었다. 결국 운동선수의 꿈을 접고 새로운 길을 선택해야 했다. 그때 그의 손을 잡아준 것은 중화요리였다.
20대 초반, 삼촌의 권유로 시작한 요리사의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군산과 서울의 유명 중식당에서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밤늦게까지 웍을 돌리며 기술을 익혔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기술만 배우지 않았다. 스승의 손끝에서 ‘음식은 사람의 마음을 담는 일’이라는 철학까지 배웠다. 한번 배운 조리법은 반드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집념 덕분에 그는 빠르게 성장했다.
특히 익산의 한 중식당에서 만난 스승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어려운 코스요리를 배우던 시절 큰 손 부상을 입었을 때, 호랑이처럼 엄했던 스승이 그의 손을 치료해주며 눈물을 흘렸다. 그 순간 서 사장은 깨달았다. 요리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사랑이라는 것을.
오랜 객지 생활 끝에 그는 결국 고향 정읍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만의 중화요리 세계를 펼치기 시작했다. 수타 손짜장과 깊은 국물 맛의 짬뽕, 정통 중국식 코스요리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지금의 ‘하이 베이징’은 정읍을 대표하는 중화요리 맛집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특히 서 사장의 짬뽕은 화려하지 않다. 대신 정직하다. 진하게 우러난 육수와 신선한 해산물,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국물은 한번 맛본 손님들이 다시 찾게 만든다. 그는 “음식은 속이면 결국 손님이 먼저 안다”고 말한다. 그의 인생철학은 거창하지 않다. 정직과 성실. 그 단순한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은 그에게도 혹독한 시간이었다. 중동전쟁 여파로 식재료 가격은 폭등했고, 해산물과 식용유, 채소값까지 모두 올랐다. 주변에서는 가격을 올려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그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손님들의 부담까지 늘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마진을 줄이는 길을 선택했다.
“손님과의 신뢰는 한번 무너지면 다시 세우기 어렵습니다.”
그의 말에는 삶의 무게가 담겨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웍을 돌리며 땀을 흘리지만 그는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는다. 두 자녀의 아버지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아가는 책임감도 그의 어깨를 무겁게 한다. 그러나 그는 늘 새벽같이 시장으로 향하고, 좋은 재료를 고르며, 손님상에 올릴 음식을 정성껏 준비한다.
서정원 사장은 오늘도 말없이 주방에 선다. 화려한 성공담보다 묵묵한 성실함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 정직한 음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고,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신뢰를 지켜내려는 그의 뚝심은 어쩌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가장 소중한 가치인지도 모른다.
정읍의 어느 저녁, ‘하이 베이징’의 불빛 아래에서 서 사장은 다시 웍을 든다. 그리고 뜨거운 불길 속에서 오늘도 자신의 인생을 요리하고 있다.
/정읍=박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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