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요즘 대한민국은 유난히 지쳐 보인다. 경제는 불안의 늪을 헤매고, 정치는 극단적 갈등으로 치달으며, 사회적 양극화의 골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다가올 미래를 조바심 내며 걱정하고, 청년들은 도전할 희망을 잃어가며, 노년층은 안락하지 못한 불안한 노후를 염려한다. 손바닥 안 SNS 속에는 타인의 화려한 성공담과 가공된 행복이 넘쳐나지만, 정작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 사회의 실질적 행복지수는 좀처럼 높아지지 않는다. 풍요 속의 빈곤, 연결 속의 고립이 2026년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이럴 때 문득, 200년 전 독일의 한 노철학자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에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바로 독일의 대문호이자 인문학자였던 요한 볼프강 폰 괴테다. 마침 최근 광주의 한 시민 인문학 공간인 '북카페 별밭'에서는 세계적인 괴테 연구자인 전영애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가 "괴테와 라이너 쿤체, 그리고 삶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진행했다. 괴테 금메달을 수상한 전 교수는 이 자리에서 사랑과 희망, 그리고 인간다움의 숭고한 의미를 이야기하며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삶을 더 깊이 사랑하는 법을 전했다. 강연을 마친 뒤 나눈 차담에서 공간을 이끄는 정경미 대표는 "빠르고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을 더 깊이 사랑하는 법을 전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흔히 괴테를 거작 '파우스트'를 쓴 위대한 문학가로만 기억한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문인이 아니었다. 평생 동안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궁극의 명제를 치열하게 탐구한 사상가이자 인문학자였다. 그가 치열한 사유 끝에 도달한 인생철학은 놀랍도록 단순하고 명료하다. "끊임없이 성장하며, 너의 삶을 온전히 사랑하라." 오늘날 승패의 이분법에 갇힌 한국사회가 가장 처절하게 잃어버린 가치가 있다면 바로 이것일지 모른다.
괴테는 인간을 완성된 고정체가 아니라, 죽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성장하는 유기적인 존재로 보았다. 그의 대표작 '파우스트'의 주인공 역시 평생 진리와 구원을 찾아 헤매며 수없이 실패하고 처절하게 방황한다. 그러나 괴테는 그 방황과 실패를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작품을 통해 준엄하게 선언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이 문장은 이달초 치러진 제9회 6.3 지방선거의 폭풍이 지나간 자리, 승패의 냉혹한 갈림길에서 깊은 상실감에 빠져 있을 낙선자들에게 바치는 가장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다. 선거라는 냉정한 제도 속에서 한 표의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고,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경쟁자가 되는 치열한 전장을 그들은 통과해 왔다. 밤을 새우며 지역의 미래를 고민하고, 유권자의 손을 잡으며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겠노라 다짐했던 그 모든 시간은 단지 '낙선'이라는 두 글자로 휘발될 수 없는 고귀한 노력의 연속이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너무나 쉽게 방황과 탈락을 '실패'라는 단어로 규정해 버린다. 입시에 실패하면 낙오자처럼 여기고, 취업에 늦으면 인생의 레이스에서 뒤처졌다고 생각하며, 선거에서 패배하면 모든 꿈이 꺾인 것처럼 취급한다. 그러나 괴테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그 모든 방황과 낙선의 아픔이야말로 인간이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기 위한 필수적인 성장의 과정이다. 아이가 자전거를 배울 때 무릎이 깨지고 수없이 넘어지듯, 인생 역시 넘어짐과 부딪힘이라는 아픔을 통해 비로소 깊어지고 배우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인생에서 단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탄탄대로를 걷는 것이 아니라, 넘어진 그 자리에서 먼지를 털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내면의 힘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지나치게 결과만을 숭배하는 맹목적인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좋은 대학, 권력 있는 직장, 높은 연봉, 화려하고 큰 집만이 성공의 유일한 척도가 되었다. 선거 역시 당선증을 손에 쥐는 것만이 유일한 승리로 기억된다. 그러나 괴테는 인생의 목적지가 아니라, 그곳을 향해 걸어가는 '과정' 그 자체에 본질적인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먼 미래의 결과가 아니라 '현재'를 온전히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 성공하면 웃겠다", "이번 시험에 붙거나 당선되면 그때부터 행복해지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행복은 미래의 어느 날 홀연히 도착하는 영광의 목적지가 아니라, 오늘이라는 불완전한 하루를 살아가는 인간의 초연한 태도다. 등산을 하면서 산의 정상만 바라보고 걸으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걸음걸음이 고통일 뿐이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 길가에 피어난 이름 모를 야생화를 보고, 살랑이는 산바람을 피부로 느끼며 걸으면 산행 자체가 커다란 즐거움이자 축제가 된다. 우리의 인생과 정치도 마찬가지 아닐까. 지금 우리는 너무 멀리 있는 승리와 미래의 결과만 바라보다가, 오늘이라는 가장 눈부신 순간을 스스로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괴테는 또한 자연의 섭리 속에서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을 찾았다. 그는 문학뿐만 아니라 식물학과 광학, 지질학까지 깊이 연구하며 거대한 자연을 인생의 위대한 스승으로 삼았다. 자연 속의 강물은 거대한 바위를 만나도 결코 깨지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바위를 원망하며 멈추는 대신, 부드럽게 돌아서 흐를 뿐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와 정치권은 갈등을 만나면 대화와 타협보다 극단적인 대립과 투쟁을 선택한다.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상처를 치유하기보다 적대감을 키우고, 세대 간 갈등, 지역 갈등, 이념 갈등의 골을 더 깊게 판다. 자연은 우리에게 유연함의 위대함을 가르친다. 강물이 결국 단단한 바위를 이기고 바다로 나아가는 이유는 강물 스스로가 단단하고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고 굽이치며 끊임없이 흐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이들도 당장의 상실감에 함몰되기보다, 강물처럼 유연하게 흐르며 다음을 기약하는 대인의 풍모를 보여줄 때 우리 사회의 정치적 품격도 한 단계 성숙할 것이다.
괴테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준엄한 가르침을 남겼다. "네 자신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라." 이 말은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스스로를 갉아먹지 말라는 뜻이다. SNS에는 타인의 화려한 성공과 정제된 행복이 실시간으로 편집되어 올라온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허상과 자신의 현실을 비교하며 불행을 자처한다. 정치적 무대에서도 남의 자리와 권력을 부러워하며 자신을 잃어버리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장미는 장미답게 정열적으로 피어나고, 소나무는 소나무답게 푸르게 자랄 뿐이다. 소나무가 장미의 화려함을 부러워하지 않고, 장미가 소나무의 낙낙장송함을 시기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경제적 성장을 이뤄낸 경이로운 나라가 되었지만, 동시에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가장 극심한 불행을 느끼는 기형적인 사회가 된 것은 아닌지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
사실 지금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눈앞의 숫자를 바꾸는 경제학도, 권력을 쟁취하는 정치학도 아닌, 인간의 영혼을 울리는 인문학일 수 있다. '우리는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가치 있는가', '무엇이 인간을 비로소 인간답게 만드는가'.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는, 그 어떤 경제적 풍요나 정치적 승리도 공허한 외침에 불과할 뿐이다. 이번 선거에서 낙선한 이들이 비록 제도 정치의 권력은 얻지 못했을지라도, 시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고민하는 인문학적 정치를 현장에서 실천해 나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자로 기억되는 길이다.
괴테가 여든 살이 훌쩍 넘은 노년이 되었을 때, 한 지혜로운 청년이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평생 문학과 과학, 정치를 넘나들며 수많은 성공을 이루셨는데,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과연 언제였습니까?" 괴테는 깊은 사유의 눈빛으로 잠시 생각에 잠긴 뒤,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아직 오지 않았네."
그는 노년의 나이에도 더 큰 세속적 성공이나 명예를 기다린 것이 아니었다.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내면의 가능성, 그리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인간다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배움의 희망을 믿었던 것이다.
2026년 대한민국, 그리고 선거의 참패로 깊은 슬픔에 잠겨 있을 수많은 낙선자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마주한 뼈아픈 위기와 좌절은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더욱 단단하고 깊게 만드는 또 다른 성숙의 과정일 뿐이다. 내면의 내실 있는 성장 없는 외형적인 성공은 모래 위에 세운 성처럼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나 위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성숙을 도모하는 인간과 사회는, 아무리 깊은 어둠 속에서도 끝내 희망의 씨앗을 발견해 낸다.
괴테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새로운 출발선에 선 정치인들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단지 눈앞의 성공과 당선을 위해 살고 있는가, 아니면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 더 인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 그 묵직한 질문 앞에서 우리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인문학은 차갑게 얼어붙은 우리 사회와 지친 낙선자들의 마음을 조금 더 따뜻하게 녹여주는 위대한 치유의 힘이 될 것이다.
/서울=정종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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