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두 번째 죽음을 유예하는 일… 남원의 삶을 껴안는 ‘기억의 집’

공유
기사 대표 이미지

[새전북신문] 죽음과 기억을 다룬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에는 전 세계인의 마음을 울린 명대사가 나온다. "인간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육체의 숨이 멎을 때, 그리고 또 한 번은 산 자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힐 때."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영원한 단절처럼 느껴지지만, 남겨진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는 불쑥불쑥 그들의 흔적이 살아 숨 쉰다. 비 오는 날 파전 냄새에서 어머니의 뒷모습이 떠오르고, 서랍장 구석에서 발견한 안경집 하나에 아버지의 생애가 스쳐 지나간다. 여기에 특정한 자극이 기억을 단숨에 끌어올리는 ‘프루스트 현상’이 결합하면, 일상의 아주 사소한 순간에도 고인과 나는 연결되게 된다. 그렇다면 흩어지기 쉬운 이 애틋한 그리움을 우리는 어떻게 붙잡아둘 수 있을까.



떠나간 이가 남겨진 자들의 일상에 지속적으로 머무는 현상을 심리학과 문화인류학에서는 ‘지속되는 유대’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과거의 애도란 죽은 자와의 심리적 연결을 완전히 끊어내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슬픔의 극복’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기록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조금 다르다. 남겨진 이들은 고인과의 추억, 유품, 특유의 습관 등을 매개로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죽음은 관계의 완전한 끝이 아니라, 남겨진 자들의 마음속 수장고에 애틋한 '기억 아카이브'가 세워지는 새로운 시작점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 일상에서 이 기억 아카이브는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까? 거창한 시스템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고인이 남긴 평범한 유품에 산 자의 온기가 담긴 '메타데이터'를 달아 작은 컬렉션을 구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아버지의 낡은 만년필, 어머니의 가계부 등을 사진 찍어 보관하면서 그 곁에 나의 기억을 한 줄 덧붙여보자. "아버지가 대학 입학 선물로 사주셨던 만년필", "시장을 다녀오시면 식탁에 앉아 적어 내려가시던 어머니의 가계부"처럼 말이다. 사물에 얽힌 사연과 감정을 텍스트나 음성 기록으로 남기는 순간, 차가운 유품은 고인과 나를 영원히 이어주는 따뜻한 접속사로 변모한다.



이렇게 갈무리된 개인의 기억은 사적인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회학자 모리스 알박스(Maurice Halbwachs)의 ‘집단 기억’ 이론이 뒷받침하듯, 한 사람의 생애와 그를 향한 기억은 결국 울타리를 넘어 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숭고한 정신적 유산으로 확장된다. 이 개인의 유품들이 남원의 지역 기록관인 ‘남원다움관’에 장기 보존될 때, 고인의 삶은 비로소 ‘남원 일상사’의 빛나는 한 페이지로 살아 숨 쉬게 된다.



실제로 남원다움관 수장고에는 세상을 떠난 시민들의 삶의 궤적이 짙게 배어 있다. 수십 년 전 광한루원을 배경으로 수줍게 찍은 빛바랜 가족사진, 옛 춘향제 인파 속에서 환하게 웃던 누군가의 청춘, 공설시장 후미진 골목에 평생을 바친 어머니의 손때 묻은 장부들. 장롱 속에서 잠들 뻔했던 사적인 유품들이 시민들의 기증을 통해 지역 아카이브로 모이는 순간, 한 가족의 내밀한 그리움은 남원 시민 전체가 껴안고 기억하는 시대의 사료(史料)이자 찬란한 자긍심으로 승화된다.

떠나간 이의 흔적을 망각하는 대신, 지역 기록관에 남겨 시대의 증언으로 삼는 것. 이것이야말로 기록학이 제안하는 가장 아름답고 공적인 애도의 방법론이다. 한 사람의 우주가 무너진 자리에 남겨진 슬픔을 걷어내고, 그 빈자리를 따뜻한 연대의 기억으로 채우는 일. 남원다움관이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평범한 시민들의 ‘두 번째 죽음’을 가장 다정하게 유예시키는 '단단한 기억의 집'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 밤, 그리운 이를 추억할 수 있는 낡은 사진 한 장을 꺼내어 보자. 그리고 그 뒷면에 당신만의 추억 한 줄을 조용히 적어 내려가 보자. 나아가 그 소중한 기억의 파편을 남원이라는 지역 사회와 함께 나누는 일까지 상상해 본다면 어떨까. 떠난 이를 잊지 않고 온전히 기록하는 일, 그것은 남겨진 우리가 먼저 떠난 이들의 두 번째 죽음을 막아내고 시공간을 넘어 건넬 수 있는 가장 애틋하고 위대한 안부 인사일 것이다.

/남원시 기록연구사 권순명

💬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
새전북 2026-07-10 10:25
기억의 집이란 말이 따스하게 다가옵니다. 남원 기억의 집, 남원다움관도 자주 갑니다. 매번 따스하게 느껴지는 공간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