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이재명 대통령과 교황 레오 14세의 만남은 갈등과 분열이 심화되는 국제사회 속에서 인류가 다시 붙잡아야 할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역사적 장면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공간이 있다. 바로 전북 완주의 「완주 남계리 유적」이다.
2026년 6월 17일 국가유산청은 「완주 남계리 유적」을 국가 사적으로 지정 예고했다. 이곳은 조선 최초의 천주교 박해인 신해박해 당시 순교한 윤지충과 권상연, 그리고 신유박해 당시 순교한 윤지헌의 유해와 관련 유물이 확인된 역사 현장이다. 단순한 묘역이 아니라 조선 후기 새로운 사상과 인간 존엄, 신앙의 자유를 둘러싼 충돌과 희생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기억의 공간이기도 하다.
완주 남계리 유적의 가장 큰 의미는 ‘한국 천주교 최초 순교자’의 흔적이 실제 공간에서 확인되었다는 점에 있다. 발굴 과정에서 출토된 백자사발 지석과 유전자 분석은 기록 속 인물을 역사적 현실로 복원해냈고, 이는 한국 종교사와 사회사 연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무엇보다 이곳은 박해 속에서도 인간의 신념과 존엄이 어떻게 기억되고 계승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오늘날 세계는 다시 갈등과 분열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전쟁과 폭력, 혐오와 배제의 언어가 국제사회를 흔드는 상황 속에서 문화유산은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기능을 넘어 인류 공동의 가치를 회복하는 역할까지 요구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완주 남계리 유적은 단순한 지역의 종교유산이 아니다. 인간 존엄과 평화, 화해의 가치를 품은 세계적 메시지의 공간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상상해 본다. 언젠가 교황이 대한민국을 방문해 완주 남계리 유적을 찾는 장면을. 핍박과 억압 속에서도 신념을 지키다 순교한 이들의 흔적 앞에서 세계 평화와 생명 존중, 종교 간 공존을 선언하는 모습을 말이다. 그것은 단순한 종교행사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희생을 미래의 평화로 연결하는 인류적 선언이자, 대한민국 문화유산이 세계와 소통하는 가장 상징적인 순간으로 기억될 수 있다.
이번 이재명 대통령과 교황 레오 14세의 만남은 이러한 상상력을 더욱 현실적인 가능성으로 확장시킨다. 한국 사회가 지닌 민주주의와 평화의 경험, 그리고 종교적 화해의 역사 위에 완주 남계리 유적이 새로운 국제 담론의 공간으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가 인권의 상징이 되고, 히로시마가 평화의 상징이 되었듯 완주 남계리 유적 또한 박해의 기억을 넘어 공존과 화해를 이야기하는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따라서 이번 국가 사적 지정예고는 지역의 역사적 기억을 국가적 가치로, 다시 세계적 가치로 확장해 나가는 중요한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학술연구와 보존정비는 물론 국제적 연대와 평화 콘텐츠 개발까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화유산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은 인간 존엄을 지켜낸 기억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교황의 만남이 남긴 평화의 메시지는 어쩌면 완주 남계리 유적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더 큰 울림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완주 남계리 유적은 이제 조선 후기의 순교 유적을 넘어 대한민국이 세계에 전할 수 있는 평화와 공존의 문화유산으로 새로운 길을 준비하고 있다. 순교의 땅에서 시작된 기억은 이제 미래 세대를 위한 평화의 언어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완주군 국가유산 전문위원 장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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