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K-민주주의, 600년 인의예지(仁義禮智)의 DNA에서 꽃 피다

현재 대한민국이 겪는 사회적 혼란은 헌법이나 제도 자체에 결함이 있어서가 아니다. 과거 성리학의 본질을 체득하지 못한 이들이 권력을 잡고 실정을 거듭해 폐단을 낳았듯, 오늘날 역시 제아무리 훌륭한 법과 제도가 있어도 이를 운용하는 사람의 철학이 부재하면 가치는 훼손되기 마련이다. 결국, 제도를 움직이는 핵심은 인간의 정신이다. 최근 세계는 한국의 정치, 경제, 문화, 정서를 넘어 우리 국민이 보여주는 역동적인 에너지에 경탄하며, 이른바 'K-민주주의'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탐구하고 있다. 그 답은 역설적이게도 조선 왕조 500년을 지탱했던 성리학의 핵심 가치인 인의예지(仁義禮智)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민족의 내면에는 타인의 아픔을 보면 따뜻하게 손을 내미는 인(仁)의 본성이 흐르고, 옳지 못한 부조리에 맞서 정의롭게 일어나는 의(義)의 기상은 그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않았다. 또한 상대방을 존중하며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는 예(禮)의 태도가 몸에 배어 있으며, 상황의 시시비비를 명확히 가려 지혜롭게 행동하는 지(智)의 본성을 갖추었다. 이러한 민족성이 오랜 역사적 시련을 거쳐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민성으로 표출된 것이다.



지난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민은 정부의 독단이 헌법적 가치를 훼손했음을 지(智)로서 판단하고 집단지성을 발휘해 즉각적인 저항을 시작했다. 사람으로서 당연히 행해야 할 의(義)로움은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수백만의 발길을 광장과 국회로 이끌었다. 위기 속에서도 서로를 격려하며 조화와 균형을 이룬 인(仁)의 연대를 보여주었고, 그 긴박한 집회 현장에서도 스스로 질서를 유지하고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예(禮)의 품격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 숭고한 정신이야말로 조선을 지탱했던 우리 민족의 뿌리이자, 지금의 K-민주주의를 꽃피운 진정한 국민성이다.



이처럼 인의예지(仁義禮智)는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언제나 바른길을 제시하며 공동체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되어왔다.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 투쟁과 동학농민혁명, 항일 독립운동이 그러했으며,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6·29 민주화 선언 역시 같은 맥락이다. IMF 외환위기 당시의 금 모으기 운동부터 촛불혁명, 그리고 최근 비상계엄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낸 국민적 저항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에는 늘 인의예지의 정신이 면면히 흐르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세계를 사로잡은 K-팝과 K-드라마, K-푸드 등 K-컬처 열풍의 바탕에도 조화와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예악(禮樂)'의 민족성이 자리 잡고 있다. 좁은 영토와 지정학적 한계 속에서도 우리가 이토록 우수한 민족의식과 역동성을 견지할 수 있는 이유, 그것은 바로 우리 내면에 600년간 유유히 흘러온 인의예지의 아름다운 정신적 유산이 굳건히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K-민주주의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성과가 아니라, 조선 왕조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진 정신적 유산이 국민성이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꽃핀 결과물이다. 우리는 이제 스스로 깎아내리던 낡은 프레임을 버리고, 우리의 뿌리가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지 자각하며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고석헌(우석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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