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두꽃 피다(지은이 강민숙, 펴낸 곳 생각이크는나무)'는 “무명 동학농민군의 제단(祭壇)에 바치는 노래”이다. 그래서 동학농민혁명사에는 영웅이 없다. 모두 하늘인 것처럼, 모두 빛나는 위대한 투쟁의 자취를 남겼다.
7부로 구성된 시는 동학 창도에서부터 동학농민혁명사의 전개 과정이 망라되었다. 시는 개인적 기억과 집단적 역사를 하나의 시적 흐름으로 엮어, 과거와 현재, 희생과 희망이 교차하는 서사를 완성하고 있다.
“양반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렇게 상놈 머슴으로 살아가라 한다/ 자식도, 또 그 자식의 자식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 내 손으로 끊어버릴 수는 없을까/ 그러던 차에/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가자, 대동세상으로」 (부분)
백성을 지켜주지 못하는 썩은 나라에서, 백성의 자각이 혁명의 씨앗이 되었다. 동학의 종지(宗旨) “사람이 곧 하늘”이다. 이 자각은 동학의 바람을 타고 큰 변화로 나타난다.
“제1부 병든 천하”는 구한말 백성이 더는 살 수 없는 세상이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한 정신혁명으로 동학이 제시된다. 그러나 외세의 간섭으로 동학농민혁명의 꿈이 좌절에 이른다. 전주성 입성으로 마침내 대동 세상을 열었지만 외세의 개입으로 민중의 꿈은 좌절을 맞고, 집강소 설치로 전주화약이 맺어진다. 일본군은 청일전쟁에서 최신 병기의 성능을 확인한 무라타 소총으로 대대적인 동학농민군 학살에 나선다.
“동학농민군들 머리띠 두르고/ 우금치 고개만 넘으면 된다지요/ 한울님 모시고 조화정 세계를/ 영원히 잊지 않는다면/ 천하만사를 꿰뚫을 수 있게 된다지요/ 제 나라, 제 백성도 모르고/ 총구 겨누던 관군들을 향해/ 불나방처럼 뛰어들면 된다지요/ 조선 땅에 태어난 울분 터뜨리며. 「동학농민혁명은 피다 - 우금치 전투」 부분
”1894년 12월 5일/ 우금치를 넘으려던 동학농민군들을 향해/ 언덕에서 일본군들이 개틀링 기관총으로/ 갑자기 불 뿜어대자/ 특공대를 뽑아 감영 뒷산으로 뒤를 뚫으려 했지/ 죽창과 낫, 구식 화승총을 든 동학농민군들/ 죽은 시신이 뒤덮여 핏물로 늪을 이루었지/ 지금도 논바닥을 갈다 보면/ 튀어나오는 뼈다귀들이/ 그날의 참혹상을 말해주고 있지/ 그래도 봄이 되면/ 개구리들이 모여 앉아 개굴개굴 울고 있지/ 못다 푼 한을 대신 풀어주겠다며. 「송장배미 동학농민군 매장지에서」 (부분)
위 2편의 시는 동학농민군이 공주 우금치와 송장배미에서 겪은 비극적인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동학농민혁명은 피다 - 우금치 전투」에서는 일본군의 신무기에 의한 학살 수준의 패배를 그리고 있으며, 동학농민군의 희생과 좌절이 비극적으로 표현된다. 특히 우금치 전투는 동학농민혁명의 분수령으로, 시는 깊은 한(恨)과 역사적 상처를 강조한다.「송장배미 동학농민군 매장지에서」는 이름 없이 죽어간 무명 동학농민군의 죽음을 애도하며, 집단적 기억과 추모의 의미를 되새긴다.
우리의 역사에서 우금치의 비극적인 참상이 근현대 분수령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넘어, 현대사를 맞이할 때 치르는 대가치고는 가혹한 피 값이었다.
도종환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사람이 하늘인 세상, 백성이 주인인 나라, 평등한 세상을 꿈꾸던 동학농민군의 넋을 기리는 초혼의 노래를 넘어, 슬픔이나 아픔을 넘어, 절로 터져 나오는 통곡”이며, 죽창이 되고자 몸부림치던 “대나무들의 합창이다,”라고 했다. “단순한 역사 서술을 넘어 민중의 고통과 저항, 그리고 좌절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씨로 타오르고 있다”고 했다.
신순철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도 “강시인의 동학농민혁명 시에서는 섬뜩한 피가 보이고 피비린내를 만난다.”며, 오늘 동학농민혁명의 아름다운 역사를 만 날 수 있다고 예찬하고 있다. 김주대 시인은 “우리는 그동안 동학농민혁명이 K-민주주의의 뿌리라면서도 머릿속에는 은유와 추상만 떠올리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 동학농민혁명 때 풀잎에 맺힌 것은 이슬이 아닌 민중의 피였다. 강시인의 시에는 풀잎에 피가 맺히고, 그 피비린내가 우리의 추상과 관념을 후려치”고, 동학농민혁명 당시 민중의 희생을 “뜨겁고 눈부시다고 예찬한다.
강민숙은 시인이자 문학박사로, 시 창작활동과 문학·역사·문화콘텐츠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집필해 왔다. 문학 사회단체 활동에 참여, K민주사회 건설을 위해 역사 왜곡과 반민주적 정권의 탄핵정국에 맞서 싸웠다. 이로써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위해 행동하는 문학인이 되고자 했다.
부안 백산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동학농민혁명의 성지 백산을 보면서 자랐다. 동국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석사, 명지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 현대그룹 문예 공모 시부분 최우수상을 받았고, 1992년 〈문학과 의식〉으로 문단에 나왔다. 그해 여름 둘째 아들이 태어나던 날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 기구한 운명을 시로 쓴 『노을 속에 당신을 묻고』(문학수첩, 1994)를 출간, 34만 부 베스트셀러가 됐다.
시집으로 『노을 속에 당신을 묻고』(문학수첩, 1994), 『그대 바다에 섬으로 떠서』(문학수첩, 1997), 『꽃은 바람을 탓하지 않는다』(문학수첩, 2005), 『둥지는 없다』(실천문학사, 2019), 『채석강을 읽다』(실천문학사, 2021), 『소년공 재명이가 부르는 노래』(생각이 크는 나무, 2025)가 있다. 현재 시를 쓰면서 〈아이클라문예창작원〉과 〈도서출판 생각이 크는 나무〉를 운영하고 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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