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지인 집에서 맛본 후 올봄 첫 시도
어머니 산소 길목에 머위 군락지서 채취
뜯어도 금세 성장… 봄철 내내 식탁 풍성
그림1 삼락원 주변에는 미나리와 쑥, 꼬들빼기 등 나물들이 많다. 잡초가 자리를 잡기 전이 나물을 캐는 적기이다.
<그윽한 섬돌엔 여린 풀이 돋아나고/향기로운 동산에는 꽃나무들 흘러 있네
비 내리자 살구꽃 드물고/밤들자 복사꽃 활짝 피었어라
붉은 앵두꽃은 향기로운 눈이 되어 나부끼고/하얀 오얏꽃은 은빛 바다가 들끓는 듯
뜨락을 거닐자니 달이 사람을 따라오고/매화꽃 언저리를 몇 차례나 돌았던고
밤 깊도록 오래앉아 일어나기를 잊었더니/옷깃에 향내 머물고 그림자는 몸에 가득해라.>(퇴계 이황 ‘감춘(感春)’)
봄이 한창이다. 옛사람들은 봄이 절정인 시기를 중춘(仲春)이라 말했다. 위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음력 2월, 봄의 중간 달로서 비가 내리고 복숭아꽃(복사꽃)이 피는 때로 본다. 하지만 전북 진안을 기준으로 보면 4월말~5월초(음력으로는 3월말) 쯤이 맞는 것 같다. 이때 벚꽃이나 복숭아나무, 라일락 등은 4월 중순에 꽃이 만개한 후 5월초면 거의 지기 때문이다. 어느 날 훅 다가온 봄은 바람처럼, 구름처럼, 물처럼 어느 순간 가뭇없이 사라지고 만다. 화사한 색깔과 그윽한 향으로, 여리고 부드러운 감촉으로 돋아난 봄의 속살들은 뜨거워지는 햇빛 아래 굳은살로 바뀐다. 어김없이 쉽사리 가버리는 봄을 잠시라도 잡아둘 순 없을까? 산과 들에서 봄기운을 듬뿍 받아 돋아나는 새순과 잎을 따서 담는 장아찌는 봄을 ‘일시 저장’할 수 있는 효율적인 음식이다.
올해 처음 내 손으로 장아찌를 만들어봤다. 계기는 지난해 맛본 머위장아찌였다. 1년 전 정읍 운암댐이 내려다보이는 마을에 사는 친구(정동윤) 누님의 집에서 하루 머문 적이 있다. 누님은 동생 친구들을 위해 차린 밥상 위에 이른 봄 고이 담아둔 머위 반찬을 올렸다. 달고 짜고 신 맛의 오묘한 조화 속에 쌉싸름하면서 개운한 뒷맛은 그 자체로 ‘봄맛’이었다. 내가 머위를 이렇게 좋아하는 줄 몰랐다. 이를 지켜본 누님은 내가 떠날 때 듬뿍 챙겨주었다. 이걸 먹는 동안 다른 반찬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난해 봄은 그렇게 내 곁에 머물러 있었다.
올해 새봄이 다가오자마자 본능적으로 그 맛을 찾아 나섰다. 마침 아버지는 머위가 모여 자라는 곳을 알고 있었다. 엄마 산소로 가는 길목 언덕편이었다. 나도 몇 번 씩 지나친 곳이지만 거기에 머위가 있는 줄은 몰랐다. 머위는 울타리, 흙담, 시냇가 등 어디서든 무리지어 자란다. 쓴 맛이 나기에 토끼나 소 등은 입에 대지 않는 반면에 겨울잠에서 깬 곰은 가장 먼저 즐기는 먹이라고 한다. 머위는 가시덤불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새봄에 첫 순을 내민 머위는 초등학생 손바닥처럼 앙증맞았다. 장아찌로 쓸 머위는 이렇게 여린 잎을 써야 한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섬유질이 많아지면서 억세다.
아버지와 나는 1시간 남짓 동안 3,4㎏ 정도를 뜯었다. 상당히 많은 양이다. 이를 깨끗이 씻어 데친 후 차곡차곡 쌓아 정리했다. 간장과 식초를 끓인 후 설탕, 매실액을 비율에 맞춰 섞은 후에 데친 머위에 부으면 끝이다. 작업은 단순하지만 여간 정성이 들어가고 시간이 소요되는 게 아니다.
이날이 마침 진안 장날이라서 읍내에서 두릅을 사와 두릅장아찌도 담아보았다. 두릅은 삼락원 주변과 동산에 있긴 하지만 그 양이 적어서 별도로 사야했다. 장에 나온 할아버지가 산에서 직접 따왔다는 것으로 5만원어치를 구입하니 족히 5㎏은 되어 보였다. 두릅장아찌를 만드는 방식도 머위와 동일하다. 이것도 씻어서 일일이 다듬고 물기를 말리는 과정이 오래 걸린다. 머위와 두릅 중에서 장아찌로는 머위가 더 나은 것 같다. 두릅은 소스가 첨가되면서 고유의 향이 줄어드는 반면에 머위는 특유의 맛과 향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른 봄에 장아찌로 만들 수 있는 나물로는 오가피, 엄나무, 옻나무 순도 훌륭하다. 모두 독특한 향이 있지만 그 근간은 쓴맛이다. 민들레 고들빼기 씀바귀 등도 쌉싸름한 봄나물로 어릴 때에는 왜 저런 걸 먹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음식들이다. 그런데 40대가 넘어서부터는 그 쓴맛을 즐기기 시작했다. 전통의 맛 같기도 하고 어른들의 맛으로 여겨진다. 올 연말에는 동산에 오가피와 엄나무 묘목을 심고 삼락원 뒤편 언덕에는 머위와 민들레씨를 뿌려볼 생각이다.
쓴맛은 동물이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불쾌한 맛이다. 대부분의 독이 쓴맛이 나기 때문에 독을 멀리하도록 진화된 결과라고 한다. 하지만 약과 독은 종이 한장 차이다. 독도 적절히 쓸 때 약이 된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머위에는 약이 될 정도의 독이 절묘하게 들어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식물은 포식자나 병원체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생성한 2차 대사물(알카로이드)를 잎사귀나 줄기에 축적해놓는데, 이게 바로 쓴맛의 정체이다.
단맛, 짠맛, 신맛, 감칠맛은 수용체가 1종 씩이지만, 쓴맛 수용체를 만드는 유전자가 25종이나 있다. 그래서 단맛 짠맛 신맛 외에 어중간하거나 다른 맛은 쓴맛으로 느껴진다. 특히 어린 아이들은 이 쓴맛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서 같은 쓴맛이라도 어른보다 더 예민하다고 한다. 머위를 먹고 난 뒤 물을 마시면 쓴 맛이 나는 건 쓴 맛을 내는 무기염이 대부분 물에 녹지 않기 때문에 입안에 오래 남기 때문이다.
고추장이나 된장 대신에 간장소스를 사용하는 장아찌는 기본 조미료인 소금 식초 설탕을 갖고 맛을 낸다. 그러니 달고 짜고 신 맛에 쓴 맛을 더한 머위장아찌에는 혀에서 맛볼 수 있는 모든 맛이 다 있는 셈이다. 또 쓴 맛을 느끼는 미각세포는 혀 가장 안쪽인 목과 가장 가까이에 있어서 코와도 금방 통한다. 인류가 후각을 통해서 유익한 쓴 맛과 해로운 쓴 맛을 구분하기 위해서라는 해석도 있다.
머위의 쓴 맛은 건강에도 매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혀 뒤쪽 수용체를 자극해 침과 소화 효소 분비를 늘릴 수 있고, 위산 분비를 촉진해 소화 과정을 돕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식사 후 더부룩함이나 팽만감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혈당 관리, 항산화 측면에서도 좋다고 한다.
옛날 시골에서는 집집마다 뒤란(뒤뜰)에 보통 머위를 심었다. 이른 봄에는 여린 잎을 따서 고기를 싸먹거나 데쳐서 된장에 무친 나물로 먹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다가오며 굵어진 머위대는 데치거나 삶아 껍질을 벗긴 뒤, 들기름 들깨가루 간장 마늘 등으로 볶아 고소하게 만들어 먹었다.
어릴 때만 해도 사람들은 봄만 되면 바구니 들고 냉이, 달래, 쑥, 미나리, 고사리 등을 캐러 다녔다. 봄철 4, 5월은 춘궁기라서 먹을 게 없는 철이니 산으로 들로 나가 뜯어온 나물로 배를 채워야 했다. 그래서 아흔아홉가지 나물 노래를 부를 줄 알면 3년 가뭄도 이겨낸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꼬불꼬불 고사리/ 이산 저산 넘나물(원추리)/가자가자 갓나무/오자오자 옻나무/말랑말랑 말냉이/잡아뜯어 꽃다지/배가 아파 배나무/ 따끔따끔 가시나무/바귀바귀 씀바귀/매끈매끈 기름나물>
이제는 이런 나물들을 일삼아 뜯으러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어쩌다 장에 내다 팔려는 할머니
그림 삼락원 주변에는 미나리와 쑥, 꼬들빼기 등 나물들이 많다. 잡초가 자리를 잡기 전이 나물을 캐는 적기이다.
할아버지들의 차지일 뿐이다.
봄볕이 따스한 날 들로 산으로 나가 머위를 뜯고 두릅을 따는 재미는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봄나물의 또 하나 특징은 캐고 따고 뜯어도 금세 자란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물 군락지만 몇 군데 알아두면 봄철 내내 식탁이 화려해진다.
2006년 돌아가신 엄마는 나물을 즐겨 들었다. 또 새봄이 오면 나물 캐러가는 걸 좋아했다. 쉰이 돼서부터는 종교적 이유로 육류를 입에 대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엄마의 밥상은 늘 나물 위주였다. 지난해(2025년) 우리 집에서 돌아가신 장모님은 장아찌를 좋아했다. 더덕, 명이나물, 마늘쫑 등으로 담은 장아찌는 사시사철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는 정월대보름이 지나고 매화가 피어나는 이른 봄날, 세상을 뜨셨고, 장모님은 봄의 절정이던 5월 중순에 가셨다. 두 분 다 봄을 좋아했건만 꽃구경을 하지 못한 채 떠나셨다. 엄마는 그 봄을 코앞에 두고 돌아가셨고, 장모님은 아파트 정원에 벚꽃과 라일락이 만발했건만 한발짝도 밖에 나가지 못하다가 의식을 잃었다. 공교롭게도 두 분 모두 생일이 4월이었다. 아직도 장모님이 담아놓은 장아찌와 엄마 산소 아래서 뜯어온 머위로 담은 장아찌로 오래도록 봄을 만나고 있다. 최진환(객원 논설위원)

삼락원 주변에서 캔 미나리. 이른 봄에는 줄기가 아주 연하고 향도 강하다.

엄마 산소에 오르는 길목 가시덤불 속에 자리잡은 머위 군락지. 뜯은 후 일주일만 지나면 그만큼 다시 자라는 머위 덕에 올봄엔 머위장아찌를 실컷 맛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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