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창]종교와 정치, 그리고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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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삶과 죽음, 선과 악의 대칭적 의문의 혼돈 속에서 살아 왔다. 그래서 그 삶 가운데에는 늘 종교와 정치가 있었다. 종교는 초월적 신성을 빌려 인간의 내면을 규율했고, 정치는 민주적 합의라는 절차를 통해 공동체의 외연을 다잡았다. 그러나 2026년 오늘, 우리는 신의 계시도, 시민의 함성도 아닌 ‘0과 1’의 숫자로 이루어진 알고리즘이 인간의 삶과 세계를 재편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새로운 경험을 겪고 있다.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는 SF스릴러영화 ‘아이, 로봇’(I, Robot, 2004년)라는 공상 과학 소설에서 로봇이 반드시 지켜야하는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첫째,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가할 수 없으며, 인간이 위험에 처했을 때 방관해서는 안 된다. 둘째, 로봇은 첫째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인간이 내리는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셋째, 로봇은 첫째와 둘째의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 선에서 로봇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이 원칙은 ‘아시모프’라는 개인의 상상에서 나온 개념이지만 우리나라도 이 세 가지 원칙을 산업 표준으로 쓰고 있다.

이제 AI는 인간의 행동과 선택을 구조화하는 ‘보이지 않는 설계자’로 군림하며, 기존의 종교와 정치가 가졌던 권위와 힘을 무섭게 잠식하고 있다. 종교는 “신은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했다(창세기 1:27)”며 인간 존엄의 근거를 무한의 초월적 존재에서 찾았고, 인간은 신의 섭리 안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었고, 종교는 믿음과 복종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인간의 정신을 지배해 왔다. 정치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2항)”라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사회 질서를 구축했다. 무한의 욕망으로 인하여 필연적으로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법과 규칙을 만드는 행위는 인간이 주체적인 삶을 영위한다는 자율적 의지의 표명이었다. 이처럼 종교적 영성과 정치적 권력은 오랜 시간 동안에 걸쳐 때로는 긴장과 충돌, 협력 속에서 인간 사회의 거대한 두 축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철옹성 같았던 이분법적 사회 질서 속에 ‘AI’라는 이질적인 인공지능 체계가 새롭게 등장하면서 종교와 정치가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며 현대 사회의 새로운 질서를 예고하고 있다. 2006년 수학자 ‘클라이브 험비’(Clive Humby)가 말한 “데이터는 새로운 석유”로서 무한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핵심 자원이 되었고, 나아가 ‘캐시 오닐’(Cathy O'neil)이 ‘대량살상 수학무기’에서 경고한 ‘불투명한 알고리즘의 권력’은 이제 ‘유발 노아 하라리’(Yuval Noah Harari)가 ‘호모 데우스’에서 명명한 ‘데이터교(Dataism)’라는 거대한 신앙으로 진화했다. 현대사회는 인간의 자유의지보다도 알고리즘의 연산 결과를 더 신뢰하고, 추천 알고리즘이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데이터에 기반한 예측이 국가 정책을 선점하는 ‘인공지능의 독점’ 시대를 열어가고 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날카로운 의문과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새로운 인공지능 해석 체계가 지닌 ‘정당성’의 근거는 무엇인가? 종교에는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전통과 신앙의 무게가 있었고, 정치에는 투표와 책임이라는 피로 얼룩진 처절한 민주적 장치가 있었다. 하지만 ‘AI’의 질서는 드러나지 않는 불투명한 설계자와 편향된 데이터에서 출발한다. 또한 심각한 오류가 발생해도 책임져야 할 주체는 증발하고, 오로지 ‘확률적 최적값’이라는 차가운 수치만이 남는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적 결함이 아니라, 인간이 쌓아 올린 도덕적·사회적 합의 구조를 송두리째 파괴해버린다.

이제 우리는 무엇이 위험한지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 ‘AI’가 인간을 물리적으로 타격하는 시나리오는 오히려 공학적 통제가 가능하나, 진짜 치명적인 위협은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맹신하는 ‘인지적 종속’이다. 세상을 해석하는 힘은 곧 세상을 규정하는 권력인데, 우리는 이 막강한 권력을 정체불명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에게 헐값에 넘겨주고 있다.

대한민국은 현재 기술의 속도에 규범이 따라가지 못하는 ‘AI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다. 우리는 데이터의 범람과 알고리즘의 독재를 초월하는 ‘AI’ 윤리 원칙을 시급히 정립해야 한다.

/송광섭(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법학박사, 수필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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