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최초 116권 ISBN 발급 독해 시리즈를 펴내
사교육 1번지 분당의 화려한 신화 뒤로하고 고향 전북으로 내려와
코로나19가 남긴 ‘교감 상실’과 문해력 붕괴 현장서 교육의 본질 깨달아
‘키워드 암기’와 ‘5단계 독해 프로세스’로 아이들의 독해 근육 복원해야
고독한 집필실 지켜준 지역 동지들의 신의…“은혜를 바위에 새기고 뚜벅뚜벅 갈 것”
대한민국 사교육의 심장부 분당에서 대형 학원을 이끌며 화려한 성공을 거두었으나, 돌연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전북 정읍 고향 땅으로 내려와 교재 집필과 교육 실험에 15년 인생을 바친 이가 있다.
바로 문해력 강화 프로그램 ‘키워드 마스터(KIMA·키마) 시리즈’를 세상에 내놓은 담연(湛然) 박규한 대표다.
인구 10만의 소도시 정읍에서 ‘힘찬학당’을 열고, 아이들의 무너진 자존감과 교감 능력, 그리고 학습 능력을 복원하기 위해 밤낮으로 원고지를 채워온 그의 여정은 한 편의 서사시다.
최근 중앙국립도서관으로부터 키마 116권 전 권이 공식 ISBN(국제표준도서번호)을 발급받았다.
문해력 강화 교육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박규한 대표를 힘찬학당에서 만나, 현대 독서·독해 지도의 문제점과 그가 제시하는 해법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Q. 수도권에서의 성공을 뒤로하고 고향 전북 지역으로 내려오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화려한 성공 뒤엔 가슴 한구석에 늘 갈증이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마주한 냉혹한 진실은, ‘자존감’과 독해력이 부실한 아이들은 ‘백약이 무효’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자존이 약한 아이들은'제한 신념'이라는 알 속에 갇혀 버립니다.
그래서 목표 설정이 불가능하고, 집중력도 없습니다.
여기에 문해력까지 부실하면 전혀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학원과 과외는 희망 고문일 뿐입니다.
그래서 자존감과 문해력 이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있는 교육을 실현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뒷받침할 프로그램 개발과 실험은 호흡이 가쁜 대도시에선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성공한다면 고향 후학들에게 먼저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그 결심 하나로 귀향을 선택했고, 제한 신념이란 알을 깨고 나오자는 의미에서, 프로그램 이름을 '깨알 강좌'라 칭하고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Q. 지방 소도시에서의 새로운 도전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초기 시련이 상당했다고 들었습니다.
"첫 6개월 동안 학당 원생이 단 3명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고향의 모든 것이 다 좋은데 입시 지도만큼은 수시체제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석기시대에 머물러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산업, 의료, 교육 셋 중 하나만 제대로 살려내도 인구 감소로 인한 지방 소멸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무엇보다 입시 교육 인프라가 탄탄해야 한다는 생각에 고독감이 매일 밤 밀려왔습니다.
가슴 아팠던 일은 ‘정읍시 창안 대회’에 수시체제에 관련 기관이 공동 대응하는 사업 설계도를 제출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심사위원들로부터 '지자체 지원금을 노린 타짜'라는 황당한 오해를 받으며 탈락했습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계획서 분량이 방대하고 세련되어서 생긴 비극적인 해프닝이었죠. (웃음) 아무튼 사방이 벽으로 가로막힌 듯한 절망 속에서, 파격적인 조건으로 분당 복귀를 제안하신 유력한 분이 있었습니다."
Q. 그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는데 극적인 인연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인간의 삶에는 참 기적 같은 타이밍이 있더군요. 저의 사업 계획을 무산시켰던 당시 담당 심사관이, 자녀가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수시체제가 너무 어지럽고 대응이 막막해서 고민이 되었는데, 2년 전 당시 제가 제출했던 ‘사업계획서’가 생각나 다시 읽어봤다고 합니다. 뒤늦게 진정한 가치를 깨달은 그 분은 아이의 손을 잡고 저를 직접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정중하게 거듭 사과하며, 정종인 논설위원님을 저에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정위원님은 저의 진심을 알아보시고 “원장님, 부디 분당으로 복귀하지 마시고 후학들을 위해 참아주십시오. 미력하지만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 돕겠습니다”라며 손을 꽉 잡아 주셨습니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13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정 위원님은 제 인생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이자 정신적 멘토가 되어 주셨습니다. "
Q. 그렇게 자리를 잡아 가던 중 '코로나19'라는 전 지구적 재앙을 맞이하셨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목격한 아이들의 상태는 어땠습니까?
“고향에서 ‘깨알 강좌’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전남 광양에 1호 분원도 안착하고, 전주 진출을 눈앞에 둔 시점에 코로나가 엄습했습니다. 공간을 상실한 아이들은 스마트폰 속으로 무섭게 빨려 들어갔습니다. 마침내 2~3년의 긴 격리가 풀리고 수업을 재개했을 때, 저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가 심각한 '교감 능력 상실과 문해력 붕괴 증후군'을 동시에 앓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10분도 강의에 집중하지 못했고, 질문을 던지면 돌아오는 답은 단답형이 전부였습니다. 코로나 이전 세대 선배들은 인생의 행운으로 여겼던 인문학 수업이, 코로나 세대 아이들에겐 허공을 맴도는 소음일 뿐이었습니다. 결국 개강 3개월 만에 프로그램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깊은 무기력증과 공황장애가 찾아왔고, 밤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울 정도로 깊은 절망의 늪에서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Q. 그 절망의 나락에서 어떻게 다시 일어나 116권 완간이라는 기적을 이뤄내셨습니까?
"자식 같은 아이들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책임감으로 버티던 어느 날, 유튜브를 통해 뇌과학자 박문호 박사님의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제 뇌리를 강하게 때렸습니다. '공부의 본질은 키워드 암기다. 암기를 적대시하는 현대 교육풍토가 아이들의 학습 능력 저하를 부른 주범이다'라는 통찰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빛나는 천재들이 쏟아져 나왔던 르네상스 시대의 교육 역시, 스승의 모든 것을 통째로 암기하는 도제식 훈련 덕분이었다는 말씀엔 온몸에 전율이 흘렀습니다.
거기서 새로운 희망의 빛을 보았습니다. 그날 이후 새벽 출근과 심야 퇴근을 반복하며 교재 집필에 착수했습니다. 밤낮없이 고독하게 원고지를 채워 나간 끝에, 마침내 초등 사회·과학에서부터 고등 수능 비문학의 바이블인 '불광불급'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총 116권의 거대한 ‘KIMA(키마) 시리즈’ 를 펴낼 수 있었습니다."
Q. 시중에도 수많은 독서 논술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대표님이 제시하는 KIMA 독해법의 핵심 차별성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KIMA는 보여주기식 '학습 퍼포먼스'를 철저히 배격합니다. 한때 500명 규모의 대형 독서 논술 학원장으로서 고백하지만, 많은 독서 교육이 '형식주의'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어휘력도 부족하고 문장 구성의 기본 원리조차 모르는 아이들에게 무작정 '네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쓰라'고 요구합니다. 이는 단단한 자갈과 시멘트 없이 모래만 가지고 3층짜리 건물을 짓겠다는 '사구삼층(沙構三層)'의 허망함과 같습니다. 결국 비논리적인 비문과 낙서에 가까운 형식적 글쓰기만 양산될 뿐입니다.
말장난에 불과한 토론 수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분 스피치 역량도 없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관심도 없는 주제로 토론을 강요하니, 목소리 큰 아이 몇 명만 일방적으로 떠들고 나머지 아이들은 들러리로 전락합니다.
또한 많은 이들이 독서 논술을 통한 '창의력 향상'이라는 환상에 속습니다. 창의력은 책 몇 권 대충 읽고 친구들과 자유롭게 떠든다고 쌓이는 기술이 아닙니다. 지식과 문해력이 축적되고 임계점을 넘길 때, 비로소 터져 나오는 '결과값'이 바로 창의력입니다. KIMA는 아이들을 즐겁게만 하는 '친절한 놀이터'가 아닙니다. 뇌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정교한 웨이트 트레이닝장'입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읽히고, 집요하게 키워드를 암기시키고,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모범 문장을 필사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문해력과 창의력의 토대라는 것을 굳게 믿습니다."
Q. 강사들에게 권하는 현장 수업 관리 원칙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KIMA 시스템의 핵심은 교사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교사가 말을 많이 할수록 아이들 '훈련 시간'만 빼앗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딱 세 가지 원칙만 엄격하고 따뜻하게 지켜주면 됩니다.
첫째,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해 주십시오. 사실 거의 모든 교과 학습에서 가르치는 기술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자존을 깨우는 것입니다. 자기를 믿어주는 스승의 따뜻한 눈빛과 말 한마디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사랑이 곧 실력입니다.
둘째, 자세와 태도를 바로잡아 주십시오. 엎드리거나 비뚤어진 자세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의 성적은 세월과 함께 사라지지만, 학습 과정에서 몸에 배어버린 자세와 태도는 평생을 가기 때문입니다.
셋째, '키워드 암기'를 철저히 점검해 주십시오. 키워드만큼은 확실히 머릿속에 집어넣어줘야 합니다. 뇌과학자 박문호 박사님의 말씀처럼, 이해는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입니다. 당장 이해를 못해도 키워드를 암기하고 기다리면 이해는 어느 순간 스스로 찾아옵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Q. 홀로 116권이라는 방대한 교재를 집필하는 과정이 외롭고 고단했을 텐데, 이 길을 함께 지켜준 이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동지들을 빼놓고는 KIMA의 역사를 논할 수 없습니다. 초기 고등부 '불광불급' 집필 당시, 원고가 나오면 곧바로 현장에서 실전 실험 수업을 해야 해서 1분 1초가 전쟁 같았습니다. 그 숨 막히는 산고의 타임라인 속에서 실무 편집을 기꺼이 도맡아 주고 실질적인 제작 기획을 함께해 준 군산의 변창섭 원장님이 없었다면 KIMA의 첫 출산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제가 지독한 몸살로 누웠을 때 눈보라를 헤치고 달려와 주었던 잊을 수 없는 동지입니다.
또한,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오직 '장인 정신'이라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까다로운 요구 조건을 모두 수용하며 KIMA에 시각적 영혼의 옷을 입혀준 김윤성 디자이너가 있었기에 지금의 아름다운 교재들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실물 교재가 나오기도 전에 저의 철학만 믿고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주며 현장에서 성적 향상의 기적을 증명해 준 울산의 김애남 원장님과 경남 거제의 반세웅 원장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순수한 인격으로 뜻을 함께해 준 구미의 남호희 원장님, 그리고 바탕이 선하고 열정적인 인재의 표본으로서 아산에서 정읍까지 세 번이나 찾아와 이심전심으로 뜻을 모아준 신승환 원장님이 계십니다. 이처럼 뜨겁고 순수한 동지들의 신의(信義)가 있었기에 오늘날 KIMA의 기적이 가능했습니다. '은혜는 바위에 새긴다'는 제 신념에 따라 이들은 제 평생의 동지들입니다."
Q. 마지막으로 KIMA를 통해 향후 전북 도민들과 대한민국 교육계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KIMA는 눈앞의 상업적 이익만 좇는 장사를 원치 않습니다. 오직 현장에서 교육 철학을 공유하고, 아이들의 무너진 문해력을 일으켜 세우는 데 인생의 절대적 책임감을 느끼는 진짜 교육자들과 함께 뚜벅뚜벅 걸어갈 것입니다.
코로나 세대를 지나며 우리 아이들의 뇌가 스마트폰의 짧은 자극에 중독되어 점차 읽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위기 앞에서, 우리 아이들의 마음에 자존을 올곧게 세워주고 두뇌에 진짜 단단한 독해 근육을 심어주는 일은 이제 시대적 사명입니다.
10년 뒤에도 제자들이 찾아와 '내 인생의 뼈대를 세워주셔서 감사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진짜 교육, 그 위대한 교육 공동체를 고향 전북에서부터 전국의 뜻있는 분들과 함께 올바르게 완성해 나가겠습니다."
/서울=정종인·정읍=박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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