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과학(지은이 김연희, 펴낸 곳 이음)은 과학을 기술의 발전으로만 보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이 세계를 이해하고 꾸려온 방식, 즉 ‘문화적 실천’이라 말한다. 우주의 질서를 삶의 기준으로 삼았고(천문), 우리가 사는 터전을 체계적으로 파악하려 했고(지리), 생명을 보호하고 공동체를 유지하고자 했다(의학). 이는 단순히 과거의 지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과학 교과서 속 원리들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하늘, 땅, 사람이라는 키워드를 따라 우리 과학의 문화와 역사를 읽어가다 보면, 창밖의 날씨나 발밑의 땅, 그리고 우리 자신의 몸이 예전과는 다르게 보일 것이다.
전통 시대에 하늘은 단순히 별을 구경하는 곳이 아니었다. 왕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나라를 다스리는 존재였기에, 별자리의 움직임과 일식, 월식 같은 천문 현상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왕의 권위와 직결되는 문제였다. 하늘의 변화를 읽는 것은 곧 백성의 마음을 읽는 일이었다.
또한 농경 사회에서 정확한 달력(역서)은 생존 그 자체였다. 언제 씨를 뿌리고 언제 추수를 해야 할지 알려주는 과학적 데이터가 곧 백성들의 배를 불리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조상들은 하늘이 보여주는 온갖 변화를 인간 중심으로 해석하며, 이를 먹고사는 실용적인 일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1부 하늘을 보면 세상이 보인다’에서는 왕이 왜 그토록 천문 관측에 총력을 기울였는지 그 속에 담긴 깊은 통치 철학을 들여다본다.
오늘날 우리는 GPS와 스마트폰 지도로 길을 찾지만, 옛사람들에게 지도는 그보다 훨씬 입체적인 의미를 지녔다.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면 가장 먼저 지도를 그려 나라의 기틀을 잡았고, 이를 통해 국가의 위상을 안팎으로 과시했다. 지도는 땅의 모양을 그린 그림을 넘어, 시대의 가치관을 담은 기록이었다.
지도의 선 하나, 산맥의 줄기 하나에는 당시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그리고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다. 한국 지리학의 정점이라 불리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이르기까지, ‘2부 지도를 보면 역사가 보인다’에서는 땅을 딛고 살았던 조상들의 치열한 고민과 지적 유산을 통해 지도가 품고 있는 진짜 역사를 읽어본다.
지은이는 순창출신 여암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의' 동국여지도'는 섬세하고 상세하다고 했다. 신경준이 1770년(영조 46년) 영조의 명을 받아 감수한 《동국여지도》는 국가의 지리 정보를 매우 섬세하고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조선 고지도의 걸작이다. 전국지도 1폭, 도별 지도인 《팔도도》 8장, 그리고 전국 330여 개 고을의 개별 지도인 《열읍도》로 이루어져 거시적 관점부터 미시적 관점까지 정밀하게 다루었다. 일정한 크기의 모눈종이(방안) 위에 각 고을의 모습을 정확한 비율로 정밀하게 그려내어 지도의 과학성을 높였다.
산맥(산줄기)과 하천(물줄기)의 흐름은 물론, 고을 간의 거리, 군사 요충지, 도로망, 행정 경계 등이 매우 상세하게 기록됐다. 국가(비변사)가 수집한 지리 정보와 정상기의 《동국지도》 성과를 최고 수준으로 종합, 국방과 행정 관리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신경준의 정교한 지도 제작 기술과 국토 인식은 19세기 김정호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김정호가 제작한 《청구도》와 《대동여지도》의 원형이자 결정적인 밑거름이 된 지도로 평가를 받는다.
옛 사람들에게 질병은 가족과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가장 큰 위협이었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두려움에 머물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약재(향약)를 연구해 우리 몸에 가장 적합한 치료법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것은 역병의 공포를 이겨내고 공동체를 살리려 한 간절한 사투였다. 이러한 독창적인 의약 전통은 단순히 병을 고치는 기술을 넘어, 사람의 몸을 돌보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3부 몸과 병을 보는 옛사람들’에서는 역병의 위기 속에서도 빛을 발했던 조상들의 지혜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한국적인 건강 관리의 뿌리를 생생하게 살펴본다.
지은이는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한국 과학사를 공부해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화재 위원과 국립고궁박물관 자문위원, 안산산업역사박물관 자문위원, 한국과학사학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한국 과학의 역사와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청소년과 어린이를 위한 과학책으로 『창덕궁에서 만나는 우리 전통 과학』, 『고종 시대 과학 이야기』, 『경복궁에서 만나는 우리 전통 과학』, 『수원화성에서 만나는 우리 전통 과학』, 『하늘, 땅, 사람을 담은 세종 대왕의 과학 이야기』, 『청소년을 위한 과학사 명장면』 등을 썼다.
이외에도 『한국근대과학형성사』, 『전신으로 이어진 대한제국, 성공과 좌절의 역사』, 『한역근대과학기술서와 대한제국의 과학: 근대 과학으로의 여정』, 『쉽게 읽는 서울사』(공저), 『위생의 시대』(공저), 『신문으로 보는 경성의 위생: 상수도와 위생정책』(공저), 『신문으로 보는 경성의 위생: 하수와 분뇨』(공저) 등을 집필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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