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은 박물관을 역사·고고·민속·예술·과학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보존·연구·전시·교육하는 시설로 규정한다. 또한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은 문서와 사진, 시청각 자료뿐 아니라 행정박물까지 공공기록물로 포함해 체계적 관리와 영구보존을 명시하고 있다. 즉 박물관과 기록관은 단순한 보관시설이 아니라 한 사회의 기억과 가치를 미래세대에 전달하는 공공문화기관이다.
현재 국립·공립박물관에는 고고학 유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근현대 생활자료와 산업유산, 교과서, 교복, 생활도구, 사진, 간판 등 우리 삶의 흔적들이 공공재로 수집·보존되고 있다. 그렇다면 학교와 교육의 기억은 누가 책임지고 남길 것인가.
1950년대 운동회의 인간탑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전쟁 직후 서로를 딛고 다시 일어서려 했던 공동체 정신이며 교육 현장의 역사다. 오래된 교과서와 풍금, 출석부와 졸업앨범 역시 한 시대의 교육철학과 지역사회의 삶을 담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수많은 교육자료들이 폐교와 학교 창고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교육의 기억이 체계적인 수집과 관리 없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은 2018년부터 전북교육박물관 설립을 추진했지만 교육부 중앙투자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며 좌절되었다. 이후 사업은 ‘가칭 전북교육기록원’으로 방향이 전환되었고, 기록관리 중심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설정되었다. 하지만 기록관만으로는 부족하다. 기록관이 기록의 관리와 보존 중심이라면, 박물관은 수집·연구·전시·교육·체험을 통해 시민과 소통한다. 교육의 역사와 공동체 기억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결국 박물관 기능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전북교육기록원은 단순한 문서보관시설이 아니라 박물관 기능을 융합한 복합문화기관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교육자료는 단순 보존에 머물 때 의미가 제한된다. 학생과 시민들이 직접 보고 체험하며 공감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자산이 된다. 특히 AI 기술과 디지털 문화가 급변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의 삶과 공동체 기억, 역사와 문화교육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미래교육은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교육의 뿌리와 정체성을 함께 지켜야 한다.
또한 교육박물관은 일반 박물관과 역할이 다르다. 일반 박물관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운영된다면, 교육박물관은 어린아이부터 고등학생까지 성장 과정에 맞춘 전문 교육과 체험을 제공할 수 있다. 교사와 학부모, 지역주민이 함께 배우고 성찰하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전북의 농촌교육과 산업화 과정의 학교 변화, 지역 공동체 교육문화 역시 중요한 교육유산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인력 확보이다. 기록관리사와 학예연구사, 전시·교육 전문인력은 건립 이후가 아니라 추진 초기부터 우선 확보되어야 한다. 자료 수집과 보존,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전시 콘텐츠 개발은 단기간에 완성될 수 없는 전문 영역이기 때문이다. 준비 없이 건물만 세운다면 결국 ‘비어 있는 공간’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알려진 전북교육기록원의 규모 역시 기록관과 박물관 기능을 함께 수행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검토해야 한다. 교육자료와 기록물은 시간이 갈수록 증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수장공간뿐 아니라 전시·체험·교육 공간까지 포함한 장기적 확장 계획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단기 사업이 아니라 미래세대까지 내다보는 단계적 계획과 실행이 필요하다.
다가오는 6.3 지방선거 교육감 후보들에게 요청한다. AI 교육과 학력 향상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교육의 역사와 기억을 어떻게 보존하고 미래세대에 전달할 것인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말하면서 정작 교육의 흔적과 공동체 기억을 지키는 일에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
학교가 사라지는 시대, 기록은 곧 공동체의 기억이다. 그리고 박물관은 그 기억을 현재와 미래로 연결하는 공간이다. 전북교육기록원은 단순한 기록시설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교육의 역사와 철학, 지역공동체의 삶을 함께 담아내는 전북교육박물관으로 나아가야 한다.
/노기환(온문화유산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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