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재발견]규제의 벽을 넘어, 역사문화권이 지역의 미래 가치를 키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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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문화유산 정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보존을 위한 규제’로 기억되어 왔다. 유적 주변에서는 건축이 제한되고, 주민들은 생활 속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문화유산은 분명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였지만, 지역 주민들에게는 때로 삶의 변화를 가로막는 벽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국회를 통과한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은 이러한 흐름에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번 개정은 단순한 행정 절차 개선이 아니다. 문화유산 정책의 방향 자체가 ‘규제 중심’에서 ‘지역과 주민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제 역사문화권은 개발을 제한하는 공간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다시 설계하는 성장 기반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역사문화권은 단순히 오래된 유적이 모여 있는 장소를 뜻하지 않는다. 한 시대의 기억과 문화, 삶의 흔적이 축적된 살아 있는 역사 공간이다. 그리고 오늘날 역사문화권 정책은 그 공간을 단순히 보호하는 데 머물지 않고, 주민의 삶과 연결하며 지역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는 이러한 변화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지역 가운데 하나다. 백제·가야·마한·후백제라는 다양한 역사 자원을 품고 있는 전북에서는 역사문화권 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익산의 백제문화권은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을 중심으로 세계유산과 도시의 일상을 연결하며, 유적 중심 공간을 시민의 문화·휴식 공간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남원과 장수의 가야문화권 사업은 유곡리 고분군과 동촌리 고분군 등 가야유적의 탐방 환경과 기반시설 개선을 통해 쇠퇴하던 농촌 공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또한 고창은 영산강 유역 마한문화와 연결되는 봉덕리 고분군 등을 중심으로 마한의 역사성과 해양 교류 문화를 재조명하며 지역의 역사적 자긍심을 높이고 있다. 전주와 완주의 후백제문화권 사업 역시 후백제 성곽 유적 등 역사 공간을 시민의 일상과 연결할 수 있는 공간 조성을 통해 지역정체성과 품격을 정립하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물론 그동안 현장에서는 아쉬움도 적지 않았다.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한 제도로 인해 오히려 건축물 신축이나 증축, 토석 채취 등이 획일적으로 제한되었고, 사업 추진 과정에서도 복잡한 행정 절차가 반복되었으며, 주민 불편과 사업 지연 문제 야기로 부담을 주기도 하였다.

이번 특별법 개정은 바로 그 지점을 개선하기 위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정비구역 내 행위 제한을 보다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중복되던 승인 절차를 국가유산청으로 일원화하면서 사업 추진의 효율성을 높이도록 했다. 이는 단순한 규제 완화를 넘어 역사문화권 정책을 주민과 함께하는 지역 발전 정책으로 바꾸겠다는 의미에 가깝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문화권 사업의 본질이다. 이 사업은 유적을 울타리 안에 가두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래된 시간을 품은 공간을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고, 주민 삶 속에 쉼과 문화, 그리고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되돌려주는 데 있다.

국가유산 체제로의 전환 이후 문화유산 정책은 분명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과거를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를 통해 오늘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미래의 지역 가치를 만들어 가는 방향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은 단순한 법률 개정을 넘어, 역사와 주민, 그리고 지역의 미래가 함께 공존하는 새로운 국가유산 정책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완주군 국가유산 전문위원 장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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