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권극중과 전주의 봄

1653년 8월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네덜란드 선박 스페르베르호는 제주도 해안에 내동댕이쳐진다. 승무원 64명 가운데 살아남은 36명 중 한 명이 '하멜 표류기'로 유명한 헨드릭 하멜이다. 난파당한 배 안에서 그들은 밀가루 한 포대, 베이컨 한 통과 더불어 스페인제 붉은 포도주를 찾아냈다. “포도주는 부상당한 선원들에게 매우 유용했다”고 하멜은 적고 있다. 19일 하멜은 “한 통의 붉은 포도주를 들고 가서 우리가 바위틈에서 발견한 회사용 은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들은 포도주를 맛보더니 좋은지 연거푸 술잔을 기울였는데 나중에는 대단히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고 했다.

‘효종실록’에 따르면 당시 행정책임자는 제주목사 이원진이며 그가 급히 현장에 파견한 지휘관은 대정현감 권극중과 판관 노정이었다. 이런 정황을 두루 고려해 볼 때 최초로 와인을 마신 영예의 주인공은 권극중과 노정, 두 사람으로 추정된다.

'이름난 고을 삼월이라 꽃들도 무성하고/꾀꼬리 제비 분주히 날면서 해가 저무네/말을 재촉하여 버들나무 늘어진 집을 찾아가니/비파소리는 들어 올린 주렴 사이로 흘러 나오네/흐르는 시냇물은 집마다 있는 우물에서 나오고/정원의 나무들은 서로 어울려 수백 가지 꽃을 피우네/초저녁 높은 곳에서 바라보니/밥 짓는 연기는 하늘가에서 노을과 접하네‘

청하자(靑霞子) 권극중(權克中 1585-1653)이 완산부(전주)의 봄날 경치를 노래한 작품(完山府卽景)이다. 그는 정읍 고부에서 태어난 조선시대 도교(道敎)사상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작품을 살펴보면, 삼월을 맞이한 완산부는 각종 꽃들로 화사하다. 예부터 완산부는 복숭아와 배꽃으로 유명하였다고 한다. 여기에 꾀꼬리와 제비가 분주히 날아다니는 가운데 하루가 저문다. 무릉도원이 천국이라고 하지만 완산부도 천국에 가깝다. 말을 재촉하면서 버드나무 늘어진 집을 찾는다.

'버드나무 늘어진 집'은 주막집을 말한다. 집집마다 있는 우물에서 흘러나온 물이 시냇물을 이룰 정도로 물이 많고, 초저녁 밥 짓는 연기로 하늘이 물들만큼 풍요로운 고장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심매경(尋梅逕)'은 완산팔경 중 하나인 한벽당 아래 바위에 새겨진 암각서이다. '매화 향기를 찾아가는 좁은 길'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등 전주는 지금도 꽃대궐을 이룬다.

'완산공원 꽃동산' 봄철 전주를 대표하는 관광 명소다. 약 1만5,000㎡ 면적의 완산공원은 매년 봄마다 분홍빛으로 물든다. 철쭉과 겹벚꽃 등 화려한 꽃나무 1만 여 그루가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일반 벚꽃보다 개화 시기가 늦은 탓에 오히려 더 유명해진 곳이다. 물론 이곳이 처음부터 이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한 시민의 노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이 시민은 선친의 묘가 있는 이곳에 꽃나무를 심고 정성껏 가꿨다고 한다. 무려 40년이란 긴 세월에 걸친 정성은 이 곳을 꽃동산으로 바꿔놨다. 전주시는 지난 2009년 이 꽃동산을 매입한 뒤 시민들을 위한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해마다 이 때 쯤이면 봄 꽃이 만개하는 전주 '완산공원 꽃동산'에 올해도 보름 동안 32만 여 명이 찾으면서 전주를 대표하는 봄철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으나 교통시설 개선 등의 과제를 남겼다. 현장에서는 체류시간을 늘릴 수 있는 콘텐츠와 편의시설 확충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와 함께 관광지 브랜드를 활용한 기념품(굿즈) 개발과 먹거리·관광판매시설 확충 등을 통해 체류형 관광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완산꽃동산과 같은 관광자원을 체류형 관광지로 전환해 방문객이 머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이종근(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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