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좋은 교실은 존경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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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는 평생 교단을 지키신 교육자이셨다. 가난 때문에 학업을 이어가기 어려웠던 제자들에게 학비를 보태 주고 상급학교 진학의 길을 열어 주기 위해 애쓰셨다. 훗날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제자들이 종종 집으로 찾아와 깊이 인사를 드리며 “선생님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습니다”라고 고마워하는 제자들을 보고서야 그 내막을 알게 되곤 했다. 어린 시절 나는 그 감동적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자라났다.



그런 모습은 우리 형제들의 진로에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주었다. 다섯 남매 가운데 네 명이 사범 계열 학과에 진학하여 교사의 길을 걸었고, 그들은 모두 배우자를 또한 교사로 맞이하였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여덟 명이나 교직에 몸담은 교육 가족이 되었다.



이런 연유로 스승의 날이 되면 언론사에서 교육 가족을 이끌고 계신 아버지께 인터뷰 요청이 이어지곤 하였다. 그때마다 아버지께서는 교육자의 삶이 비록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보람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직업이라고 말씀하시곤 하였다. 아울러 교사는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에 방향을 밝혀 주는 존재라고도 강조하셨다.



학교는 단순히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다. 협동과 배려, 사랑과 질서를 배우며 공동체 의식을 길러내는 소중한 삶의 현장이다. 예전에는 소풍 날이면 학생들은 선생님의 도시락을 준비해 와 함께 나누기도 하였다. 평소 가르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작은 정성이었다. 당시에는 이러한 풍경이 자연스럽고 따뜻한 교육적 미풍으로 여겨졌다.



그 뿌리는 아마 옛 서당의 ‘책거리’ 풍습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훈장 선생님이 책 한 권을 끝내시면 학생들의 부모가 떡을 준비해 와 선생님의 노고에 감사하며 아이들과 나누어 먹었다. 스승과 제자, 그리고 학부모가 함께 기쁨을 나누던 아름다운 전통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학교 풍경은 많이 달라졌다. 한때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라는 말로 스승을 공경하던 사회는 이제 음료수 한 병조차 마음 놓고 나누기 어려운 분위기가 되었다. 부정과 청탁을 막기 위한 제도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교사를 잠재적 의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교육의 따뜻한 온기마저 점점 식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문제는 법 자체가 아니라, 그 법이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신뢰까지도 함께 멀어지게 만든 우리의 사회적 분위기일지도 모른다. 교사를 스승으로 여기지 못하는 사회, 선생님을 존경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과연 좋은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오죽하면 교직 생활 40년을 하고 은퇴한 ‘장정희’ 소설가가 제자들과의 진솔한 소통을 위해 몸부림쳤던 교단에서의 안타까운 심정을, 피를 토하듯 적어낸 『존경 따위 넣어둬』라는 산문집이 교실을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며 서점가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다 아는 사실대로 교실은 지식만 전달하는 공간이 아니라 존중과 신뢰 속에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한 수상에게 전해지는 일화가 있다. 손자의 담임교사가 가정방문을 오는 날 그는 일부러 집에서 기다렸다가 선생님이 도착하자 대문 밖까지 나가 깊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며 맞이하였다고 한다. 이를 본 기자가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하였다. 자기 손자는 할아버지가 나라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텐데, 선생님을 더 높이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 ‘선생님이 할아버지보다 더 높은 분이구나’라고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에게 그것은 손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교육적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교사의 권위는 법이나 제도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존중 속에서 자연스럽게 세워지는 것이다. 부모가 교사를 존중하면 아이들도 선생님을 존중하게 된다. 선생님의 위상을 높여 주는 문화가 가정과 사회 속에 다시 자리 잡을 때, 교실은 비로소 지식만 전달하는 공간을 넘어 사람을 길러내는 따뜻한 배움의 공간이 될 것이다. /한준호(프리랜서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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