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물관엔 수 많은 물건이 있다. 손에 쥐고, 몸에 걸치고, 곁에 두며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물건들은 말없이 우리의 시간을 기억한다. 그것들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와 계절, 그리고 삶의 태도를 품고 있는 작은 세계이다. 그러나 그 모든 물건이 같은 방식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어떤 것은 오래된 시간의 무게로, 어떤 것은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때로는 낯선 형태의 흥미로 우리를 붙잡는다. 그리고 그중에는, 특별한 인연처럼 한 사람의 시선에 오래 머무는 물건들이 있다.
‘민속예찬: 큐레이터가 사랑한 민속품’은 국립민속박물관 직원들이 박물관에서 일하며 만나온 소장품 가운데, 각자의 마음에 남은 물건들을 직접 소개한 책이다. 학술적 가치나 시대적 대표성만으로 선별된 것이 아니라, 조사와 전시, 수집의 과정 속에서 개인적인 기억과 감정이 더해진 ‘선택’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기존의 소장품 도록과는 다른 결을 지녔다.
이 책은 2025~2026년 국립민속박물관 소셜미디어에 연재된 ‘내 마음속 민속품’이라는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 소개 콘텐츠를 재구성한 것이다.
오아란 학예연구사는 ‘해변으로 가요!’를 썼다. 생업의 공간이었던 바다가 휴양의 공간 해수욕장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10년대, 원산 · 인천 · 부산 등 개항장을 중심으로 해수욕장 개발 붐이 일었다. 이러한 흐름은 여름방학과 휴가 개념의 등장, 그리고 철도의 발달이 맞물리며 전국으로 확산됐고, 1930년대에 이르면서 충남 대천, 전북 부안 등 지금도 인기있는 해수욕장들이 속속 문을 열었다. 변산해수욕장은 서해안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으로 하얀 모래와 푸른 솔숲이 어우러져 '백사청송' 해수욕장으로도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해수욕장의 하나로 1933년에 개장됐으며, 곱디 고운 모래해변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서해안의 해수욕장치고는 물빛도 맑은 편이며, 평균 수심이 1m 밖에 되지 않고 수온이 따뜻해서 해수욕장으로서의 조건이 매우 좋다.
광복 이후에도 해수욕장의 인기는 식지 않았다. 고속도로 개통과 고속버스터미널의 등장으로 해변을 찾기가 더 쉬워졌고, 관광진흥법 제정과 휴양지 개발 정책은 ʻ여름=해수욕장ʼ이라는 인식을 대중화시켰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민박과 캠핑, 고속버스 여행이 일상화되며 해운대, 경포대, 송정, 낙산, 대천, 속초, 변산 등 전국의 해수욕장이대표적인 피서지로 자리잡게 된다.
‘채용신이 그린 김제덕 초상화’는 박수환 학예연구관이 소개한다. ‘추수초상(秋水肖像)’은 김학수 씨가 2007년에 기증한 추수 김제덕(金濟悳, 1855~1925)의 초상화이다. 초상화를 사실적으로 그리기로 유명한 석지(石芝) 채용신(蔡龍臣, 1850~1941)이 김제덕이 67세였던 1921년 10월 상순에 그렸다. 김제덕은 유학자로서 정체성을 지키고 살아온 지역의 선비답게 정자관(程子冠)을 쓰고, 학창의(鶴氅衣)를 입고, 『주자대전(朱子大全)』을 들고 앉아 있다.
채용신은 200여 점이라는 많은 초상화를 남겼다. 그 비결은 당시의 첨단기술인 사진에 있었습니다. ‘추수초상도’는 채용신 말년의 다른 그림들과 마찬가지로 사진을 보고 그린 것으로 보인다. 1910년대부터 이미 사진은 김제덕이 사는 전라도까지 널리 퍼져 있었기에 이 같은 사실적인 초상화를 그릴 수 있게 됐다
김윤정 학예연구관은 ‘도막아주고 지켜주는 호랑이 그림’을 썼다. 국립민속박물관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 커다란 개오동나무옆으로 장승과 돌탑길이 나온다. 길을 따라 조금 더 들어오면 갈래길의 가운데에 태인 허씨 효자 허권(許權, 1847~1895)을 기리는 작은 효자각이 있다.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에 있던 효자각을 2008년에 옮겨왔다. 1920년대 초에 건립된 이 효자각의 겉 문 처마 안쪽을 올려다보면 호랑이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어슬렁어슬렁 걸음을 옮기며 삐죽나온 큰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모습의 이 호랑이는 백 년 가까이 이 효자각을 지키고 있는 수호신이다.
백민영 전문위원은 ‘당신의 삶은 충분히 빛났습니다’를 썼다. 상여는 망자의 시신을 장지까지 운구하는 도구이자, 목조구조물에 다채로운 장식이 더해진 ʻ망자의 집ʼ을 의미한다.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관 3 《한국인의 일생》에서는 이러한 의미를 지닌 ʻ산청 전주최씨 고령댁 상여ʼ를 직접 만날 수 있다. 이 상여는 1856년 전주최씨 가문의 최필주를 위해 약 6개월에 걸쳐 만들었다. 이후 진주화단친목회에서 사용하다가 1994년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했으며, 1996년에는 국가민속문화유산 제230호로 지정됐다.
오랜 시간 정성 들여 완성된 상여는 장례 도구를 넘어서 하나의 완성도 높은 예술품으로 남아 있다. 상여 곳곳에 조각된 용과 봉황, 새와 꽃, 그리고 사람의 모습을 한 꼭두는 망자를 저승길로 인도하고 수호하며, 그가 외롭지 않게 마지막 길을 함께 한다. 삶의 끝을 두려움이 아닌 ʻ아름다운 마무리ʼ로 만들어낸 조상들의 지혜가 이 상여에 담겨 있다. 화려한 상여 앞에 서면,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또 다른 곳으로 향하는 여정처럼 느껴진다. 떠나는 이는 행복한 삶을 마쳤고, 남겨진 이들은 그 삶이 빛났음을 기억한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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