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망설임의 윤리

기사 대표 이미지

우리는 점점 더 빨리 답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질문은 짧아지고, 답은 즉각 도착한다. 몇 개의 단어만 입력하면 정리된 문장이 돌아오고, 묻는 순간 ‘그럴듯한’ 해답이 제시된다. 기술은 머뭇거림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더 빠르게 계산하고, 더 정확하게 예측하며, 더 효율적으로 결론에 도달한다. 인공지능은 그 정점에 있다. 흔들림도, 주저함도 없다.

이 시대에 망설임은 무엇인가? “망설임”은 흔히 약점으로 취급된다. 결정을 미루는 태도, 자신감이 부족한 상태, 혹은 용기가 없는 마음. 그러나 그렇게 설명하기에는 이 감정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우리는 때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쉽게 말하지 못한다. 답을 몰라서가 아니다. 어떤 선택이든 다른 가능성을 지워버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이때의 망설임은 결핍이 아니다. 판단을 유예하는 태도이며, 의미를 서둘러 확정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인공지능은 질문을 처리하지만, 질문 앞에 머무르지 않는다. 입력과 계산, 그리고 출력. 그 사이에는 정지가 없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우리는 말하기 전에 잠시 멈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정보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떠올리고 결과를 가늠하며, 그 말이 남길 흔적을 상상한다. 어쩌면 우리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통과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망설임은 느림이 아니라 윤리에 가깝다.

문학은 오래전부터 이 시간을 붙들어왔다. 인물들은 결정을 미루고, 말하지 못하고, 끝내 선택하지 못한 채 머문다. 그 미결의 상태 속에서 이야기는 깊어진다. 삶이 언제나 또렷한 결론으로 수렴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흔들림 속에서 우리는 세계를 더 정확하게 감각한다. 빠르게 말해진 문장은 종종 가볍게 소비되지만, 충분히 망설인 끝에 나온 말은 오래 남는다.

오늘의 우리는 점점 더 많은 답을 갖게 되었지만, 그만큼 더 적게 머문다. 속도는 빨라졌지만, 질문의 무게는 가벼워졌다. 무엇이 옳은가를 묻기보다, 무엇이 빠른가를 따지는 데 익숙해졌다. 그 사이에서 망설임은 점점 불필요한 과정처럼 취급된다. 그러나 정말 제거되어야 할 것은 망설임일까? 망설임은 비효율이 아니다. 하나의 선택이 다른 가능성을 지운다는 사실을 알기에 쉽게 결론 내리지 않는 태도다. 기술은 더 빠르게 답하겠지만, 인간은 그 답 앞에서 잠시 멈춘다. 무엇이 맞는가보다 그 답이 무엇을 남길지를 묻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에게 없고 인간에게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이 망설임이다. /강윤정(교수·원광대학교 자율전공학부)

💬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