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엔 ‘부성삼화(府城三花)’가 전해오고 있다. 이는 전주의 아름다운 꽃 3가지를 말한다. 동고산(승암산)의 진달래, 다가산의 입하화(立夏花, 입하는 절기), 덕진지당(연못)의 연화(蓮花, 연꽃)를 말한다. '입하화(立夏花)'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이팝나무 꽃을 의미한다. 지난 8일 천칠봉(千七峰, 1920~1984) 화백이 1977년 그린 '다가동 과수원 배꽃' 그림을 만났다. 전주 미술관 솔이 29일까지 4층 전시장에서 갖는 '고궁의 화신(花信) 특별전'에서다.
그는 하반영(河畔影, 1918~2015) 화백이 살았던 다가동에서 살았다. 이곳에서 완산칠봉이 보인 까닭에 이름이 칠봉이다. 그는 전주의 경기전과 한벽당, 덕진 연못을 그렸으며 다가공원에서 바라본 시가(市街)의 풍경을 그렸다. 다가동(多佳洞)은 '많은(多) 아름다움(佳)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전주천이 마을을 감싸고 도는 경치가 아름답고 평온한 지역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960년대 팔달로 개통과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도심이 확대되면서, 다가동을 포함한 인근 지역의 과수원이나 농지가 주택지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들어 전주시는 북측으로 시가지가 성장하면서 다가동, 고사동 일대의 기존 모습이 바뀌었다. 이 시기는 농촌 풍경이 점차 도시적인 경관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였다. 엠마오사랑병원 옆에 가지마다 촘촘하게 맺힌 꽃들은 순백의 색감으로 시선을 사로잡은 채 고목 특유의 굵은 수형과 어우러지며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청석동리(靑石洞里)의 '청석동(靑石洞)'은 오늘날 다가동을 가리킨다. 이곳은 간재(艮齋) 전우(田愚, 1841~1922)의 출생지로도 알려져 있다. 간재는 전주 서문 밖 청석동(지금의 다가동)에서 전재성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송경운전(宋慶雲傳)'은 17세기의 비파 연주자 송경운(宋慶雲)을 한문 산문으로 표현, 한국의 문학사와 음악사에서 공히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서귀(西歸) 이기발(李起浡, 1602~1662)은 송경운을 실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경험을 바탕으로, 이 빼어난 음악가의 생애를 재현했다.
그는 당시 전주의 어디쯤에서 살았을까? 이기발이 전주의 서쪽에 있던 빙치, 우리말로 하면 얼음 언덕에서 전주성 내에 복사꽃과 오얏꽃이 가득 핀 풍경을 감상하다가 송경운을 만난 장면을 묘사한다. '조선시대 전주에도 다가산 아래 얼음을 보관하던 빙고장이 있었다. 그래서 빙치는 다가산 부근으로 추측이 된다' 송경운은 전주성의 서쪽에 살았다. 지금의 서문 부근 인근에 살았던 것 같다. 다가동 우체국은 청석동 우체국으로 많이 불렸다. 마찬가지로 다가동 파출소도 청석동 파출소라고 많이 불렀다. 1945년 해방 당시 전주에는 우체국이 전주우체국을 비롯 청석동우체국, 동산우체국 등 3곳이었다. 청석동우체국은 그 뒤 다가동우체국으로 이름이 바뀐다. 다가동 우체국은 몇 년 전 우체국 통폐합으로 문을 닫았다. 이곳은 현재 전라북도 무형유산 제10호인 박계호 선자장은 전주 다가동에서 전주부채연구소를 운영하며 2대에 걸쳐 전통 합죽선의 맥을 잇고 있는 장인이 살고 있다.
변경환 전북 무형유산 배첩장(기린산방 대표)이 '다가산방(多佳山房)' 편액을 갖고 있다. 효산 이광열과 신석정 시인의 예술혼이 엿보이는 편액이다. 신석정(辛夕汀, 1907~1974)이 이름을 지어준 '다가산방' 편액에 효산 이광열 붓글씨를 더한 것으로 확인됐다. 시인은 1963년 가을 '송다가산방(頌多佳山房)’ 시를 지었다. 편액은 효산(曉山) 이광열(李光烈, 1885-1966)의 말년의 예서체 작품이다, 1960년 음력 7월 상순에 만들었으며, 전주 서쪽의 다가산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앞부분엔 ‘경자(庚子)’년으로 돼 있는 바, 편액을 만든 것은 ‘지일경자(之日庚子) 조추(肇秋) 상한(上澣)’으로 읽어지는 바 1960년이다. 뒷부분 한문을 번역해보니, ‘전주의 서쪽 다가산 아래는 맑은 물이 흐르는 곳으로 대나무를 꺾어 물고기를 낚는 즐거움이 있었다. 주인이 은자(隱者)를 즐거워했을 따름이지 이름을 남기기 위함이 아니었다’고 나온다.(全州之西看多佳山其下淸流採茹釣鮮爲起居之樂主人隱者不欲名爲 曉山幷題)
1960년대 전주 '다가산방'은 표구점으로, 지금의 서울소바 자리에 있었다. 당시 다가산방은 임종석, 오병길, 서재영씨 등 3명이 일했다고 한다. 이 편액은 이광열이 나무의 전체적인 틀을 보고 여기에 맞추어 글씨를 써준 것으로 보인다. 한눈에 보아도 효산의 농익은 글씨와 함께 자연스러운 포치, 그리고 예술성이 절정에 이른 작품이다. ‘다가(多佳)라는 말은 아름다움이 많다는 뜻으로, 이곳에 올라 전주부성을 굽어보는 경치가 일품이어서 붙여졌으리라.
석정전집에 '송다가산방(頌多佳山房)'이란 시가 발표했던 바,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다가산방 자린 비록 시정(市井)이어도 고려 이조에 묻혀 사는 그 뜻을 뉘라서 아는 이 있어 찾아와서 즐기리. 청자 파릇한 무늬 상감(象嵌) 한결 산드랍고 백자 무뚝뚝한 듯 아련히 두른 선이 곱다 추사(秋史)의 남긴 먹내음 더욱 향기로워라. 소연한 세상이사 석파난병(石坡蘭屛)으로 멀리하고 심전(心田) 월전(月田) 묵로(墨鷺) 운보(雲甫) 한자리 앉아 연연한 선과 빛깔로 주고받는 이야기 듣다.(1963. 초가을)’
흥선대원군이 남긴 자취 가운데 하나가 석파란(石坡蘭)이다. 석파는 대원군의 호이다. 심전(心田)은 안중식, 월전(月田)은 장우성, 묵로(墨鷺)는 이용우, 운보(雲甫)는 김기창 화백을 말한다. ‘산방(山房)’은 산촌 집의 방, 스님이 거처하는 산사(山寺)의 방을 말한다. 산속의 작은 집이 다가산 밑에 있으므로 그냥 집이 아니다. 산방(山房)으로 불러야 하는 까닭이다.
작은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는 산방(山房)에 들어서면서부터 귀를 시원스레 적시기 시작해, 산방을 뒤로하고 사립을 나섰을 때까지 쉼 없이 들렸으리라.
깊은 산속, 그날 뻐꾸기는 푸른 계절을 노래하고 있었겠지만 왜 그런지 구슬프게만 들렸으리라. 지난 5일이 입하(立夏)였다. 계절은 선선하고 온후하지만, 여름 문턱에 들어 농사의 손길이 분주해지는 절기다. 현대에는 초여름 날씨에 가깝지만 전통적인 계절 감각으론 봄에 속한다. 입하는 24절기 중 일곱번째 절기로, 곡우와 소만 사이에 들어 있으며,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여름이 들어섰다’는 뜻이다. 보리가 익어가는 날씨라 하여 맥량(麥凉)이나 맥추(麥秋)라고도 불렀다.
무엇보다도 입하의 주인공은 청개구리들이다. 바야흐로 만물이 요란하게 생동하는 계절이다. 연두에서 녹색으로 넘어가는 그 짧고 근사한 찰나처럼, 우리 몸도 봄에서 여름으로 조용히 중심을 옮겨야 할 때이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그저 차 한 잔 앞에 가만히 앉아, 이 계절이 건네는 인사를 천천히 받아들이면 된다. 다가산의 여름이 시작됐다. 이팝나무가 신록으로 무성하다. 호반새는 호로로로롱 호로로로롱 하고 운다. 전주 다가동 입하화를 널리 알릴 방법 찾는다면 금삼첨화가 아닐 수 없다.
[데스크칼럼]전주 다가동 입하화를 알릴 방법 찾아야
이종근 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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