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재발견]천둥처럼 외치더니 안개처럼 사라진 정치적 책임

침묵으로 넘길 수 없는 정치적 책임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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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말은 바람에 흩날리는 깃털이 아니다. 특히 “정치생명을 걸겠다”, “책임지겠다”는 발언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국민 앞에 남기는 공적 계약이다. 그런데 요즘 전북 정치권을 바라보는 도민들의 시선에는 허탈함과 냉소가 짙게 배어 있다. 칼을 뽑아 들 듯 결연하게 외치던 정치적 책임론은 정작 상황이 바뀌자 안개처럼 흐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원택 의원은 김관영 지사의 계엄 방조 의혹과 관련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며 정치적 책임을 언급했다. 이후 특검과 수사가 이어졌고, 결국 무혐의 판단이 내려졌다. 그러나 문제는 결과 그 자체보다도 그 이후의 태도다. 정치적 책임을 그토록 강조했던 인물이 정작 결과가 나오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침묵하거나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언행불일치”의 전형으로 비춰지고 있다.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이런 모습을 두고 “조삼모사(朝三暮四)”라 했다. 아침에는 세 개를 주겠다고 했다가 저녁에는 네 개를 준다며 말장난으로 본질을 흐리는 행태다. 본질은 변하지 않았는데 말만 바꾸며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또 다른 사자성어로는 “양두구육(羊頭狗肉)”이 떠오른다. 겉으로는 정의와 책임을 외치지만, 실제 행동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모습이다. 정치는 본래 “신뢰”를 먹고 사는 영역이다. 법적 무혐의와 정치적 책임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법적으로 죄가 없다고 해서 정치적 발언의 무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국민은 판결문 이전에 정치인의 태도를 본다. 더욱이 스스로 강한 언어를 사용하며 상대를 몰아세웠다면, 결과가 반대로 나왔을 때는 최소한의 유감 표명이나 정치적 입장 정리가 뒤따르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마치 “구렁이 담 넘어가듯” 상황을 슬쩍 피해 가려는 인상만 남긴다. 정치인의 침묵은 때로는 웅변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책임을 말할 때는 천둥처럼 요란했지만, 정작 책임을 돌아볼 순간에는 안개처럼 사라지는 태도에 시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다.



역사를 돌아봐도 진정한 정치인은 책임 앞에서 숨지 않았다. 영국의 처칠은 실패한 작전의 책임을 스스로 떠안았고, 일본의 몇몇 정치인들은 단순한 발언 실수에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옳고 그름을 떠나 “내 말에 책임지겠다”는 최소한의 정치 윤리를 보여준 것이다. 반면 오늘날 일부 정치인들은 책임이라는 단어를 선거용 무기로만 사용한다. 공격할 때는 칼이 되고, 자신에게 돌아오면 솜방망이가 된다. 지금 도민들이 느끼는 분노의 핵심은 단순히 특정 사건 때문이 아니다. “또 말뿐이었구나”라는 배신감이다. 정치인의 말이 가벼워질수록 시민의 냉소는 깊어진다. 그리고 그 냉소는 결국 정치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한 사람의 무책임한 태도가 공동체 전체의 민주주의 신뢰를 갉아먹는 셈이다. 맹자는 “군자는 그 말에 부끄러움을 안다”고 했다. 자신이 한 말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 군자라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날 일부 정치인들은 말은 화려하지만 책임은 없다. 필요할 때는 정의를 외치고, 불리해지면 침묵 속으로 숨어든다. 이것이야말로 “적반하장”이며, 국민을 우롱하는 정치의 민낯이다.



정치는 쇼가 아니다. 더욱이 책임이라는 단어는 일회용 소모품이 아니다. 도민들이 바라는 것은 거창한 변명이 아니다. 최소한 자신이 했던 말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설명하고 책임지는 자세다. 그것이 없다면 결국 시민들은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정치인의 말은 왜 항상 선거철에만 무겁고, 결과 앞에서는 깃털처럼 가벼워지는가.” 침묵은 때로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반복되는 침묵은 비겁함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국민은 생각보다 오래 기억한다.

/고려대학교 김상근연구교수 (기초과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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