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발걸음]투쟁이란 구호 보다 애민과 애사를 선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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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노조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기업 내부의 임금 갈등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가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기업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는지, 그리고 국가 경쟁력을 어디까지 공동체적 가치와 연결할 것인지가 충돌하는 거대한 거울에 가깝다. 누군가는 이를 “귀족노조의 이기주의”라고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노동기본권의 정당한 행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정치경제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삼성 노조 문제는 한국 산업문명이 새로운 단계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구조적 진통에 더 가깝다.

우선 분명히 해야 할 사실이 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시각은 이미 시대적 설득력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ILO가 규정하는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은 단순한 선택적 제도가 아니라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기본적 노동권이다. 더욱이 오늘날 글로벌 공급망 체계 속에서 ESG, 인권경영, 지속가능성 기준은 기업의 국제 경쟁력과 직결된다. 과거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압축 성장기의 효율성과 조직 통제의 상징으로 기능했을지 모르나, 오늘날 세계 시장에서는 더 이상 절대적 미덕으로만 평가되지 않는다. 글로벌 초일류 기업이라면 기술력뿐 아니라 노동 인권과 조직 민주성까지 함께 요구받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국민은 삼성 노조를 마냥 신뢰하지 못하는가. 핵심은 노조의 존재가 아니라 노조가 보여주는 방식에 있다. 오늘날 대중은 노동권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당한 권리 보장에는 상당 부분 공감한다. 그러나 동시에 공정성과 공동체 책임 역시 요구한다. 특히 반도체와 AI 산업처럼 국가 전략산업과 직결된 영역에서는 이러한 시선이 더욱 강해진다.

현재 삼성전자는 단순한 민간기업의 범주를 넘어선다. 삼성 반도체는 대한민국의 수출, 환율, 외교, 공급망 안보와 연결된 전략 자산이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경쟁 속에서 반도체는 사실상 현대판 원유로 불린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 노조의 장기 파업이나 생산 차질 우려가 단순한 사내 문제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제정치경제 관점에서 보면, 이 문제는 “노동권 대 자본”이라는 전통적 구도를 넘어 “노동권과 국가 경쟁력을 어떻게 동시에 유지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여기에 최근 심화되는 이른바 ‘노노 갈등’ 역시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복수노조 체제 속에서 교섭 대표성 문제와 내부 배제 논란이 발생하면, 국민은 노동운동의 이상보다 조직 권력화의 모습을 먼저 보게 된다. 역사적으로 노동운동이 사회적 존경을 받았던 시기는 약자의 권리를 대변했을 때였다. 그러나 조직 스스로 기득권처럼 보이는 순간, 대중의 신뢰는 빠르게 흔들린다. 노동운동이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내부 민주주의를 잃는다면, 그 정당성 역시 약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기업 또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삼성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기업으로 성장했지만, 동시에 성과배분 구조의 불투명성과 조직 내부의 상대적 박탈감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수직적 조직문화만으로는 초고급 기술인력이 중심이 되는 시대를 유지하기 어렵다. 오늘날 반도체 산업의 핵심 자산은 공장 설비만이 아니라 사람의 두뇌와 창의성이다. 연구자와 엔지니어의 신뢰를 잃는 순간, 초격차 경쟁력도 빠르게 흔들릴 수 있다.

결국 삼성 노조 문제를 바라보는 가장 성숙한 시각은 극단을 거부하는 데 있다. 노조를 무조건 악으로 규정하는 시선도 위험하지만, 반대로 노조를 언제나 정의의 상징처럼 바라보는 태도 역시 현실을 놓칠 수 있다. 기업은 국가경제를 이유로 노동권을 억압해서는 안 되며, 노조 역시 노동권이라는 명분 아래 국가 전략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지금 산업화 시대의 노사관계에서 지식문명 시대의 노사관계로 넘어가는 거대한 전환기에 서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과거식 투쟁의 구호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신뢰의 설계다. 삼성이 넘어야 할 것은 무노조 신화이며, 노조가 넘어야 할 것은 특권노조라는 국민적 불신이다. 진정한 선진국형 노사관계는 어느 한쪽의 승리로 완성되지 않는다. 국가 경쟁력과 노동의 존엄을 동시에 지켜내는 균형 속에서만 비로소 탄생할 수 있다.

/배문철(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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