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미래]인구 방어라는 환상, 이제는 ‘적정 규모 사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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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데이먼 주연의 영화 ‘다운사이징(Downsizing)’은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노르웨이의 한 과학자가 인류의 생존을 위해 신체를 5인치로 줄이는 기술을 개발한다. 몸이 작아지면 소비 자원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어 환경을 복원할 수 있고, 지금보다 120배 정도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계산에 주인공은 우여곡절 끝에 다운사이징을 선택한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소인국의 현실은 이전 세상과 다를 바 없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인구 소멸 위기에 처한 우리의 현실이 묘하게 겹쳤다. 그간 우리가 내놓은 대책들은 이른바 ‘업사이징(Upsizing)’이었다. 구호만 요란할 뿐 철학적 토대가 없는 직관적인 정책에 매년 수조 원의 예산을 쏟아부은 꼴이다. 성과는 참담했다. 합계 출산율은 0.7명대 이하로 떨어졌고 귀농·귀촌은 정체되었다. 오죽하면 일론 머스크가 미래에 북한군이 “그냥 걸어서 국경을 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을까.

돌아보면 그간의 정책은 ‘인구 방어’에 급급했다. 하지만 소멸의 속도를 늦추지는 못했다. 저출산, 초고령화, 지역 간 인구 불균형, 생산 가능 인구 감소 등 기형적인 인구 구조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졌다. 2024년 0.7명대 초반까지 추락했던 출산율이 2026년 상반기 기준 약 0.85명 수준으로 반등한 것이 유일한 위안이지만, 추세의 반전을 예단하기엔 아직 이르다.

2021년 정부는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 중 89곳을 인구 감소 지역으로 지정했다. 전국 82개 군 지역 중 약 85%(70곳)가 여기에 해당하며, 이 수치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2023년에는 인구 5만 명 미만 지역의 고령화율이 41%이다. 생산 가능 인구 한 명이 노인 한 명 이상을 부양해야 하는 구조다. 인구 방어의 임계점을 넘어섰다.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한 까닭이다.

그 전환의 첫 번째 원칙은 ‘확장’과 ‘성장’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인구 감소를 오직 국력 약화와 경제 몰락의 프레임으로만 본다면 또다시 정책 실패를 반복할 뿐이다. 인구를 억지로 수혈하려는 관성적 대응을 멈춰야 한다. 이제는 ‘성장’이 아니라 ‘적응’의 틀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 국력의 척도 또한 ‘사회적 신뢰 자본’을 축적하는 방향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두 번째 원칙은 다음 문명에 맞는 지역 공간 구조의 설계다. ‘적정 규모 사회(Right-sizing Society)’에 초점을 맞춰 지역을 최적화하자. 지역 고유의 결은 살리되, ‘햇빛소득마을’ 같은 포용 경제와 순환 경제 모델을 시대에 맞게 변용하자. 도시와의 다양한 연결 및 연대 고리도 창안하자. 지금이 바로 그 전환을 위한 ‘진실의 순간’이다. 중요한 것은 백년대계의 긴 호흡이다. 그래야만 도시와 농촌을 상극에서 상생으로, 공동체의 호혜적 연대로 바꿀 수 있다. 그 결과로 도농 격차도 줄어들 터이니.

‘공동체의 회복’과 ‘인간 관계 정상화’는 다음 문명의 필수 요소다. 두 원칙이 받아들여진다면 향후 정책의 지표는 ‘지역 공동체가 얼마나 회복되었는지’, ‘주민 간의 신뢰가 어떠한지’가 될 것이다. 인구가 줄더라도 구성원 개개인의 삶의 질이 높아지는 사회를 상상해 보라. 행복의 ‘지산지소’가 실현된다. 소멸과 생성을 연대의 힘으로 받아들이자. 하드웨어를 ‘다운사이징’하고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는 길을 찾는 ‘집단 지성’이 깨어날 것이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수도권 일극 체제의 거품을 걷어내는 장기 플랜이 병행되어야 한다. ‘분산이 곧 경쟁력’이다. 물리적 밀도가 아닌 디지털 연결성을 통한 경쟁력, ‘생활 인구’와 ‘관계 인구’를 수용하는 유연한 행정, ‘햇빛소득’으로 기본적 삶이 보장되는 구조가 다음 문명을 결정지을 것이다. 주민 자치와 지역 자치는 ‘건강한 탈중앙화’를 지탱하는 심장이 되고. 일론이 말한 ‘기본 고소득’의 피동적 풍요보다 주민이 주도하는 ‘철학의 지산지소’라니.. 36.5℃, 뜨거운 열정이 산야에 콸콸 쏟아지리라. /로컬칼럼니스트 신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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