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장애라는 벽을 허무는 가장 아름다운 언어입니다”

<새전북이 만난 사람>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 문성하 대표…24년 한결같이 장애인 예술 주체성 확립과 자립 모델 구축에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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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의 예술 현장에는 언제나 ‘희망’을 말하는 주인공이 있다.

사단법인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을 이끄는 문성하 대표(정읍선교교회 담임목사).

지역사회에서 그는 ‘장애우들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정작 본인은 그들을 ‘동등한 예술적 동반자’라 칭한다.

​단순한 시혜와 동정의 대상을 넘어, 장애인이 당당한 예술적 주체로 서야 한다는 신념으로 달려온 24년.

불모지였던 지역 장애인 문화예술계에 거대한 이정표를 세운 문 대표를 만나 그가 걸어온 인생 드라마와 미래의 비전을 들어보았다.



IMF의 시련 속에 핀 ‘희망’의 멜로디



​문성하 대표의 시작은 화려한 무대가 아니었다.

모두가 힘들었던 IMF 시절, 생활 정보 신문사를 운영하다 실패의 쓴맛을 본 그는 기구한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연로한 노모와 세 아이, 그리고 노숙인들과 함께 비닐하우스에서 연명하던 시절, 그에게 찾아온 한 노숙인 청년의 간절한 눈망울이 인생을 바꿨다.

​“드럼을 연주하고 싶다던 그 청년의 눈빛에서 저는 어떤 소명을 보았습니다.

매달 적자에 허덕였지만 생활비를 털어 중고 드럼을 장만했죠. 밤마다 같이 노래하며 찬양했던 그 시간들이 바로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의 태동이었습니다.”

​당시 사회 안전망조차 없던 시절이었지만, 그의 곁에는 든든한 동지인 아내 박춘아 시설장(나눔빌 원장)이 있었다.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고달픈 삶이었지만, 노래를 멈추지 않자 재능 있는 장애인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렇게 2002년, 마침내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이하 희노사)’이 공식 창단됐다.



​시혜를 넘어 존엄으로, 예술가 인큐베이팅의 성공



​문 대표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장애인을 ‘복지 수혜자’로만 바라보는 시각이다.

그는 장애인들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예술적 자아를 찾을 수 있도록 2010년 ‘정읍문화학교’를 설립했다.

​이곳의 커리큘럼은 체계적이고 방대하다.

밴드와 난타 같은 동적 장르부터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클라리넷 등 섬세한 클래식 악기에 이르기까지 개인 맞춤형 교육이 이뤄진다.

전문 강사를 초빙하고 엄격한 연습 시스템을 도입한 결과, 이들은 단순한 아마추어를 넘어 전문 공연단으로 성장했다.

​“장애 유형에 따라 교육 방식은 다르지만, 예술을 향한 열정에는 장애가 없습니다. 문화적 소외 지역인 정읍에서 피어난 이들의 선율은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강력한 언어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2004년부터 시작된 ‘장애인과 함께하는 열린음악회’는 매년 3,000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지역의 대표 축제로 자리 잡았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매년 9월이면 지역 청소년들이 가장 기다리는 행사로 손꼽힐 만큼 대중성까지 확보했다.



‘직업 예술가’의 탄생, 복지 패러다임을 바꾸다



​문 대표의 성과는 단순히 무대 위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예술이 어떻게 삶의 기반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경제적 자립’이라는 혁신적 답안을 제시했다.

​현재 희노사는 장애인 공공형 일자리 위탁기관과 기업 연계 일자리를 통해 장애인을 ‘직업 예술가’로 고용하고 있다.

이들은 매달 안정적인 수입을 얻으며 당당한 경제적 주체로 살아간다.

취미로 시작한 음악이 실질적인 직업이 된 것이다.

​“장애인이 예술을 통해 급여를 받고 사회의 일원이 되는 모델은 우리 지역 복지의 패러다임을 바꾼 중대한 사건이라 자부합니다. 이는 그들의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것은 물론, 기업과 공공기관에 장애인 고용의 새로운 대안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전문성을 인정받아 희노사는 2022년부터 3년 연속 한국장애인개발원의 ‘문화예술특화형 장애인식개선교육’ 운영기관으로 선정됐다.

단순한 이론 교육이 아니라, 공연을 통해 자연스럽게 장애 인식을 개선하는 프로그램은 보건복지부와 전국 공공기관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야학교와 환경 캠페인…지역사회와 동반 성장



​그의 헌신은 무대 밖에서도 빛난다.

배움의 기회를 놓친 이들을 위해 16년째 무보수로 운영 중인 ‘정읍시장애인샘골야학교’는 장애인들의 지적 자립을 돕는 보금자리다.

문해 교육과 검정고시 지원은 물론 인문학 교육을 병행하며 예술적 소양의 밑거름을 다지고 있다.

희노사의 주축 멤버들이 기자로 참여해 장애인들의 권익신장을 도모하기 위해 한국미디어복지신문도 창간해 알차게 성장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기후행동 ESG 실천’ 캠페인을 주도하며 사회적 책임에도 앞장서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을 맞아 지역 장애인 시설들과 연대해 쓰레기 줍기 등 환경정화 활동을 펼치는 그의 모습에서 지역을 사랑하는 진심이 읽힌다.

​“정읍의 자랑인 동학의 정신은 결국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우리 장애인들도 그 정신을 이어받아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작은 실천을 시작한 것이죠. 텀블러 사용하기, 일회용품 줄이기 같은 작은 행동이 탄소 중립 사회로 가는 큰 걸음이 될 것입니다.”



​멈추지 않는 도전, 더 넓은 세계로



​지난해 사단법인 나눔의집 ‘나눔빌’이 보건복지부 평가에서 전 분야 A등급을 받으며 지역사회에 화제가 된 것 역시 문 대표와 아내 박춘아 원장이 일궈온 진심 어린 운영의 결과다.

부족한 인력 환경 속에서도 입주자들과 사회복지사들이 한마음으로 뭉쳤기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이제 문 대표는 더 큰 꿈을 꾼다.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전국을 순회하는 ‘신나는 예술여행’을 넘어, 장애인 예술가들의 국제적 교류와 지속 가능한 예술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장애를 넘어 ‘너와 나’가 아닌 ‘우리’로 살아가는 사회, 장애인 예술가가 자신의 끼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많은 분의 응원이 있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문 대표는 이번주 떠날 몽골 선교를 위해다시 악기 소리가 울려 퍼지는 연습실로 향했다.

그가 지휘하는 희망의 교향곡은 이제 정읍과 대한민국를 넘어 지구촌으로 울려 퍼지고 있다.



문성하 대표는 누구인가?

현직: 사단법인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 대표, 정읍선교교회 담임목사, 정읍시장애인샘골야학교 교장

<주요 경력>

2002년 장애인문화예술단체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 창립

2004년~현재 ‘장애인과 함께하는 열린음악회’ 기획 총괄 (22회 개최)

2010년~현재 (사)국제장애인문화교류 전라북도협회 및 ‘정읍문화학교’ 운영

2022년~2025년 문화예술특화형 장애인식개선교육 프로그램 총괄 운영

<주요 포상>

2001년 전라북도지사 표창 (일자리 창출 및 자립 지원)

2018년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장애인 인권 및 복지 증진)

/서울=정종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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