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의 시계추가 빨라지고 있다. 거리마다 화려한 현수막이 걸리고, 후보자들은 저마다 지역을 바꿀 적임자임을 자처하며 지지를 호소한다.
전북도지사 선거전은 '몰염치'를 넘어 진흙탕 싸움판이 됐다는 도민들의 비아냥을 듣고 있다.
말그대로 화택(火宅)이 따로 없다.
유권자들의 마음은 여전히 차갑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거창한 공약과 장밋빛 미래가 실제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그 진정성을 신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최근 이태석리더십스쿨을 찾은 한 외국인 교수의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워싱턴대학교 의과대학 부학장인 트레이시 허먼스타인(Tracy Hermanstein) 교수의 이야기는 ‘표심’을 쫓는 우리 정치인들에게 리더십의 본질이 무엇인지 묵직한 교훈을 던진다. 소위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의사’인 그가 왜 자신의 안락한 연구실을 벗어나 세인트루이스 지역 아동들의 학업과 진로를 위해 1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두 팔을 걷어붙였는가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바로 ‘행동하는 지성’의 실천이다.
거창한 구호보다 ‘실현 가능한 변화’가 우선이다
트레이시 교수가 활동했던 세인트루이스는 청소년 학력 저하와 범죄 등 다양한 사회문제로 신음하던 곳이었다. 그는 여기서 ‘정치적 해결사’를 자처하며 거대 예산을 끌어오겠다고 큰소리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쉬운 것부터, 그리고 내 주변의 아이들부터 챙기기 시작했다.
이번 6.3 지방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의 공약집을 살펴보면 눈이 부실 정도다. 수천억 원 규모의 산단을 유치하겠다거나, 지역의 지도를 바꾸겠다는 대형 프로젝트들이 즐비하다. 물론 지역 발전을 위한 비전은 중요하다. 그러나 정작 주민들이 체감하는 고통—골목길의 가로등 하나, 아이들의 방과 후 돌봄 공백, 무너져가는 지역 소상공인의 생계—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고민은 뒷전인 경우가 많다.
트레이시 교수가 학생들에게 건넨 조언은 선거 출마자들에게도 유효하다. "봉사는 내 주변에서부터, 그리고 쉽고 실현 가능한 것부터 시작하라."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거대 담론에 매몰되기보다, 주민의 삶에 즉각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小確幸)’ 정책들이 쌓일 때 비로소 지역사회는 변화의 계기를 맞이한다.
14년의 진정성, ‘선거용 행보’와는 격이 다르다
트레이시 교수의 활동이 세인트루이스를 변화시킬 수 있었던 핵심 동력은 ‘지속성’에 있다. 1~2년 생색내기식 활동이 아니라 14년이라는 세월을 묵묵히 견뎌냈다. 지역사회는 그의 ‘지위’가 아니라 그의 ‘시간’에 감동했고, 그 진정성을 믿었기에 변화의 물결에 동참했다.
반면, 우리 지방정치의 현실은 어떠한가.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이들이 선거철만 되면 전통시장을 찾아 어색한 손을 맞잡는다. 당선만 되면 사라질 ‘일회성 관심’임을 주민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주민들의 삶을 바꾸는 리더십은 화려한 연설문이 아니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역의 현안을 붙들고 씨름해온 시간의 축적에서 나온다. 6.3 지방선거 출마자들은 스스로 물어야 한다. 과연 나는 선거라는 목적지 없이도 주민들의 곁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임팩트랩’이 보여준 미래, 정치는 ‘과정’이다
이태석리더십스쿨의 강의 후 진행된 ‘임팩트랩(Impact Lab)’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학생들이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달성 방안을 모색하는 이 프로젝트 수업은, 리더십이 단순히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길을 찾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지방자치시대의 정치는 후보자 한 명의 독단적인 리더십으로 운영될 수 없다. 주민들이 스스로 지역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을 설계하고 조력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지방 정치인의 역할이다. 트레이시 교수가 세인트루이스에서 했던 일도 결국 주민들이 청소년 문제에 스스로 관심을 갖게 만든 ‘촉매제’ 역할이었다.
결론: 이태석 정신과 트레이시의 실천
이태석리더십스쿨이 트레이시 교수를 초청한 이유는 명확하다. 고(故) 이태석 신부가 남수단 톤즈에서 보여준 무아봉공(無我奉公)의 정신이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다음 주에는 스웨덴의 올레 토렐 의원이 강연을 이어간다고 한다. 세계의 리더들이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공통적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책임감’과 ‘연대’다.
6.3 지방선거에 나서는 후보자들에게 권한다. 당선을 위해 유권자의 비위를 맞추는 기술을 익히기보다, 트레이시 교수가 14년 동안 세인트루이스의 아이들을 바라봤던 그 진심 어린 시선을 먼저 배우길 바란다. 정치는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실현 가능한 변화를 쉼 없이 만들어가는 ‘고된 노동’이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행동하는 지성’의 정치다.
/서울=정종인논설위원
[여의도논단-일주명창] 6.3 지방선거 출마자들에게 던지는 ‘트레이시교수’의 질문...'행동하는 양심, 행동하는 지성'
정치적 수사(修辭)보다 빛나는 ‘현장의 발걸음' 리더십의 본질은 ‘가난한자의 곁’을 지키는 '배려와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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