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동학(지은이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한국현대철학분과, 펴낸 곳 동녘)'은 20세기 전후의 한국철학을 새로운 관점으로 재해석하며, 동학을 단순한 종교나 사상, 운동이 아닌 ‘전통과 개화라는 이분법을 넘어서는 한국 근현대의 사유와 실천’으로 다시 파헤친다.
흔히 한국의 ‘근대’는 서양과의 충돌과 개항을 기점으로 설명되어왔다. 전통과 근대,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라는 이분법 속에서 우리의 근대는 주로 ‘수용과 변화’의 과정으로 정리되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 근현대의 사상과 사유가 지닌 복합성과 긴장을 충분히 포착하지 못한다. 한국 근현대의 시작은 무엇인가? 시대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내적 요청, 서양 문명이라는 외적 충격은 조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우리는 어떻게 대응했는가? 동학은 바로 이 질문들에 답하고 있다.
그 시대적 응답을 추적하기 위해 한국 근현대철학을 연구하는 6인이 모여 '다시, 동학'을 펴냈다.
동학은 동서(東西)의 경계, 전통과 근대의 균열 위에서 탄생하여 시대의 파고에 맞서온 근현대의 기록이다. 19세기 중반 최제우의 시천주 사상에서 출발해 만물시천주로 확장되고, 이후 손병희에 의해 천도교로 명명되며 근대적 사상체계로 계승됐다. 여기에 동학은 외부의 문명에 맞서 제도를 정립하고, 내부의 종교성과 공동체성을 재정렬하는 과정 또한 거친다. 나아가 일제강점기를 지나 20세기 해방정국에 이르기까지, 동학은 시대에 맞춰 스스로를 재구성해왔다. 이 책에 담긴 동학의 궤적은 한국 근대를 이해하는 하나의 소중한 이정표다.
이 책이 그리는 동학은 하나의 사상이나 운동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단편적인 분류만으로는 동학 그 본연의 역동성을 포착하기 어렵다. 동학은 기존 세계가 붕괴하던 시대에 새로운 질서와 삶의 형식을 요청했던 사유와 실천의 결합이었으며, 억압받던 민중의 삶과 공동체의 윤리, 그리고 정치적 실천이 맞물린 역사적 시도였다.
‘내 안에 하늘을 모신다’는 존재론적 각성은 개인의 수양에서 사람을 공경하는 공동체의 윤리로 확장되었고, 나아가 서양 문명의 충격과 내부의 혼란에 맞서 평등한 세상을 꿈꾸던 민중이 일어서는 동력이 되었다. 이처럼 교조신원운동과 동학농민전쟁, 그리고 천도교의 문화운동에 이르기까지, 동학은 사유와 현실이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전개되었다.
결국 이 책이 제시하는 동학은 과거의 역사적인 사건에 머물지 않는다. 동학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공동체의 해체, 민주주의의 위기, 분단 체제라는 오늘의 조건 속에서, 새로운 공공성과 인간, 그리고 사회를 다시 상상할 수 있는가를 묻는 일이기도 하다.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찾았던 동학의 발자취를 통해, 우리는 현재의 위기에 응답할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동학을 끊임없이 되물어야 할 질문으로 남겨둠으로써 우리 시대를 새롭게 성찰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그렇다면 동학이 현실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근대의 사상과 시대는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동학이 창도된 1860년을 기점으로, 1840년대 동아시아의 격변기부터 1940년대 해방정국에 이르기까지 동학이 기존의 시대의식과 만나 어떻게 그 사상을 정립해 나갔는지 각 장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살펴본다.
1장 ‘최제우의 동학, 새로운 기원으로서의 ᄒᆞᄂᆞᆯ’은 최제우의 동학에 대해 알아본다. 최제우는 전통적인 ‘천天’을 균열시켰고, 이 천의 균열은 이전과는 다른 세계와 인간의 조건을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내 몸에 한울님을 모신다’는 ‘시천주’는 인간의 조건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2장 ‘최시형의 한울, 넓어지고 깊어지다’는 최시형이 최제우의 동학을 이론적으로 확장하고 제도적으로 변화시키며 계승했다고 본다. 최시형에 의해 동학의 ‘시천주’는 한울에서 나로, 나에서 내 마음으로, 나아가 모든 사람과 만물로 확장되어간다. 동학의 제도와 이론이 변화하고 확장하는 모습을 살펴본다.
3장 ‘동학공동체와 공공의식’은 동학공동체를 기존의 공동체 문화가 균열하고 분열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과정을 다룬다. 처참한 민생에 공감하며 평등한 삶을 고민하던 최제우가 제안한 동학공동체는 신분제 아래 불평등과 차별의 잣대를 지녔던 유교 공동체를 대체하는 대안으로서 모든 이들의 평등을 추구하는 공동체였다. 이는 기존의 조선 공동체와 어떤 다른 특징을 지녔을까? 4장 ‘동학운동, 새로운 혁명의 장으로’는 새로운 혁명으로 전화된 동학농민전쟁을 살핀다. 동학의 평등관을 통해 동학농민군의 봉기와 항쟁을 파헤친다.
5장 ‘손병희의 동학, 동학 계승과 인민 계몽’은 손병희의 동학을 문명의 전환이라는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며 최제우·최시형의 동학과 동학농민전쟁을 계승했다는 시각에서 읽는다. 손병희의 동학은 한편으로는 동학이라는 근대를 계승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양의 근대를 수용해 동학을 천도교로 변화시킨다. 한국의 어느 사상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 특징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본다.
6장 ‘문화운동으로 열망하는 근대적 문명 실현과 식민지 국권 회복’은 천도교 문화운동을 새로운 사상을 수용해 봉건성을 극복하려 한 반봉건 운동이며, 식민 지배를 극복할 토대를 구축하고자 한 반식민 운동이라고 설명한다. 한반도의 이 자생적 종교사상이 제국주의라는 거대한 파도에 맞서 어떻게 스스로를 혁신하고 시대의 과제에 응답하려 했는지, 그 고뇌의 과정을 따라간다.
7장 ‘한국 근현대사상의 거울,'개벽'’은 '개벽'을 탐구한다. '개벽'은 20세기 초 한반도에서 서구 이론 및 사상의 수용과 전파를 이끌었던 가장 주요한 창구였다. 그렇다면 당시 계몽·문화운동을 포함해 다양한 갈래의 항일운동 및 사회 변혁운동 등 실천적 움직임과 얼마나 조응하고 있는지 알아본다.
8장 ‘해방공간의 천도교 민주주의론’은 해방 이후 ‘천도교청우당’과 1946년에 재발간한 '개벽'에 주목, 해방정국에서 천도교가 꿈꿨던 자주적 민주국가의 청사진을 확인한다. ‘인민주권’ ‘좌우합작’ ‘남북통일’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려 천도교가 펼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살펴본다.
'다시, 동학'은 이처럼 ‘동학의 탄생’부터 ‘천도교의 민주주의론’까지의 동학이 걸어온 100년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시대의 격랑에 맞선 동학의 고뇌를 되짚는 이 책은 파편화된 한국 근현대철학의 지형을 잇고, 선명하게 그려낸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동학의 주체적인 사상을 확인하는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든든한 지적 토대를 얻게 될 터이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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