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논단-일주명창] '우리는 자랑스러운 알이랑(아리랑) 민족'

기사 대표 이미지

'아리랑을 아십니까?'

​우리 민족의 영혼을 관통하는 하나의 소리를 꼽으라면 단연 ‘아리랑’이다.

남북이 갈라지고 사상이 대립하는 극단의 시대에도 아리랑은 우리를 하나로 묶는 강력한 접착제였다.

1886년 이 땅을 밟은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 선교사가 “조선인에게 아리랑은 쌀과 같은 존재”라고 평했던 것처럼,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를 넘어 한민족의 정신적 혈맥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이 노래의 정확한 뜻과 유래를 상실한 채 부르고 있다.

​최근 유석근 교수(겟세마네신학교)가 그의 저서 '우리는 알이랑 민족'(국민북스, 2022) 등을 통해 제시한 ‘아리랑의 성경적·언어학적 해석’은 우리 민족사의 뿌리를 찾는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유 교수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아리랑의 본래 의미는 우리말 연음법칙을 통해 복원했을 때 비로소 그 거룩한 정체가 드러난다고 밝히고 있다.



아리랑의 어원은 한자가 아닌 순우리말 ‘알이랑’이다.

우리말에는 자음으로 끝나는 음절 뒤에 모음이 오면 앞의 끝소리가 뒷소리의 첫소리가 되는 ‘연음법칙’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알이랑’은 자연스럽게 '아리랑'으로, ‘알알이요’는 '아라리요'로 발음된다.

​여기서 ‘알’은 고대 우리 조상들이 유일신을 일컬었던 신명(神名)이다. ‘알’은 생명의 모체이자 근원을 뜻하며, 여기에 ‘크다’는 의미의 관형사 ‘한’과 존칭 어미 ‘님’이 붙어 ‘한알님’이 되었고, 이것이 음운 변화를 거쳐 오늘날의 ‘하느님’이 되었다.

이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을 뜻하는 ‘엘(El)’ 혹은 ‘엘로힘(Elohim)’의 어원이 ‘알아(alah)’인 것과 궤를 같이한다.

또한 ‘이랑’은 ‘~와 함께’를 뜻하는 순우리말 조사다. 즉, ‘알이랑’의 원의(原意)는 “하나님과 함께(With God)”라는 임마누엘 신앙의 고백인 것이다.

​가사 속 “고개를 넘어간다”는 대목은 인류 대홍수 이후 유일신 신앙을 지키기 위해 동방으로 천동(遷動)했던 욕단 가계의 대장정을 암시한다.

성경 창세기 10장 21절에서 30절에 기록된 셈의 후손들은 ‘동편 산’으로 옮겨갔다.

이들이 파미르 고원(파마루), 천산산맥, 알타이산맥을 넘어 한반도라는 땅끝에 당도하기까지 부른 노래가 바로 아리랑이라는 해석이다.

​실제로 중앙아시아의 파미르(Pamir) 고원은 한자로 ‘총령(蔥嶺)’이라 불리는데, 이는 ‘파(蔥)가 자라는 산마루(嶺)’라는 우리말 ‘파마루’에서 유래한 언어 유물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험준한 산맥들을 ‘하나님과 함께’ 넘으며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런 맥락에서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가 아니라 현존하는 인류 최고의 찬송가이자 민족의 역사 노래인 셈이다.

​흔히 1절의 “발병 난다”는 표현을 떠나는 이에 대한 저주로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유 교수는 이를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에 대한 안타까운 연정과 회귀의 촉구로 해석한다.

여기서 ‘나’는 하나님과 함께 좁은 길을 걷는 성민(聖民)이며, ‘님’은 세속의 길을 선택해 대열에서 이탈한 이들을 가리킨다.

​저주였다면 ‘가시는 님’이 아니라 ‘가는 놈’이라 했을 터이다. ‘발병’이라도 나서 더는 죄의 길로 가지 말고 다시 하나님 신앙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경천애인(敬天애人)의 정신이다.

2절의 “가슴에 수심도 많다”는 고백 역시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거룩한 근심(고후 7:10)’으로 이해할 때 비로소 그 깊은 슬픔과 사랑의 정서가 맞닿는다.

​아리랑은 이제 한국인만의 노래를 넘어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70억 세계인이 함께 보존해야 할 인류의 자산이다. 우리가 아리랑의 원의를 회복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것이 곧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며, 마지막 시대에 동방의 땅끝에서 하나님이 숨겨두신 제2의 이스라엘로서 사명을 깨닫는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이랑 민족’이다.

시련의 역사 속에서도 우리가 꺾이지 않았던 것은 우리 피 속에 “하나님과 함께”라는 신앙의 유전자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아리랑의 곡조에 담긴 거룩한 찬송을 복원하여, 이 땅을 넘어 세계를 향해 평화와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해야 할 때다.

/서울=정종인 기자

💬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