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여 년 전 우아한 시와 풍류가 오갔던 전주 덕진 연못

■[옛 이야기에서 전북을 만나다] 전주 덕진 연못 승금정(勝金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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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70여 년 전 우아한 시와 풍류가 오갔던 전주 덕진 연못으로 떠난다.시를 짓고 그림으로 그날의 감흥을 남겼던 자리, 그 장면이 한 폭의 긴 두루마리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국립전주박물관과 전주문화원은 지난해 12월, 학술총서 ‘승금정시회화첩(勝金亭詩會帖)’을 공동으로 펴냈다.

이 학술 총서는 고(故)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인 ‘승금정시회화첩’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여러모로 조명한 연구 성과를 수록한 책이다.

‘승금정시회화첩’은 184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라감사 이시재가 전주의 명승 덕진연못에 승금정과 취소정을 짓고 고을 수령과 시인들을 초청, 낙성식 겸 시회를 열었던 장면을 그려냈다. 그림은 제목으로 시작해 13미터에 이르는 시회 장면이 펼쳐지고, 이어 승금정과 취소정의 상량문, 시회에 참여한 이들의 시를 엮은 서문이 더해진다. 전체 길이는 무려 19미터. 한 지역의 풍경과 사람, 당시 문화가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그림은 승금정과 취소정 두 정자를 중심으로 물길을 따라 참석한 인물과 시를 배치하였는데, 중국 왕희지의 ‘난정수계도’ 구성을 따르고 있다.

덕진 연못은 덕진 공원의 중심부를 이룬다.

단옷날 연못 부근 덕진교 아래에 부녀자들은 부끄러움도 잊은 채 웃옷을 벗고, 몸을 씻고 머리 감는 보기 드문 장면이 펼쳐졌던 곳이다.

‘덕진채련(德津採連)’은 완산8경의 하나로, 풍월정에 앉아 저녁 노을과 달빛을 끼고 뜸부기 우는 호면(湖面)의 피리 소리 실은 어화에 젖은 채 맞은 편 승금정을 내다보는 던진 연못의 풍경을 이름한다.

완산가'엔 '덕진지 상(上) 넓은 정자 금릉에서 나단 말가'라 면서 가을의 덕진지를 묘사했다. 춘향가에도 '승금정'의 경치가 드러난다. 동국사 소장 엽서 '전주부 승금정'은 전주부 덕진지로 표기돼 사라진 기억을 되뇌게 하고 있다. 이세보(李世輔,1832∼1895)는 한벽당보다 승금정을 높이보고 승금지(勝金池)라고 하며 동국의 금릉(金陵)이라고 시조로 읊었다.

덕진공원 후문 건너 건지산 줄기에는 전주이씨 시조묘를 모신 조경단 등 왕실과 관련된 자취들이 남아 있다. 과거 왕실의 기를 북돋는다는 의미로 지어졌던 승금정(勝金亭)은 지금은 전주 이씨 종친회 건물로 쓰이는 화수각(花樹閣)으로 바뀌어 공원을 굽어보고 있었다.

승금정은 '중국 금릉(金陵)보다 낫다'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이곳은 건지산이 본래 전주 이씨 선산이라 승금정은 이를 받들어 살피며 쉬는 곳이다.

갑오병란 때 무너져 경자년(광무4, 1900)에 중건하면서 화수각(花樹閣)이 됐다. 괴정(槐亭) 이창신(李昌新. 1852~1919)의 '승금정(勝金亭)' 시가 전한다.

'성루 허물어져 천부가 기울었으나/단각은 높이 솟아 지령을 보호하네/여름에는 솔숲 서늘한 기운이 탑상을 휘감고/가을에는 연못 향기가 옷깃을 적시네





이창신의 '승금정중건기'



'승금정중건기 (경자년. 1900년 4월 어느 날)



완산(전주)의 땅에 덕진제(德眞堤)가 있으니, 이는 순치(淳治, 순창과 전주 사이) 건산(乾山)의 물길이 모이는 못이다. 제방 위에는 승금정이 있다. 이곳은 건산의 아름다움이 모인 곳이다. 건산은 우리 국가(전주 이씨 문중을 뜻함)의 선조를 모신 숭봉(崇奉)의 땅으로, 지세가 지극히 중요하고 엄격하게 보호되어야 할 곳이다. 정자가 있는 것은 단순히 경치를 구경하기 위함이 아니라, 선조의 묘역을 지키고 관리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세월이 흘러 법도가 느슨해지고 나무를 함부로 베거나 묘역을 침범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산천의 형세가 변하고 정자가 퇴락해가는 것을 보고 종중(문중 사람들)이 개탄하며 마음을 모아 다시 세우기로 했다. 우리 문중 사람들이 단상(壇上)에 모여 선조의 은혜를 기리고 종족 간의 우애를 다지니, 백세토록 꽃나무가 같은 봄을 맞이하듯 영원하길 바란다. 연못 가득 핀 연꽃은 붉은 화장을 한 듯하고, 깃털을 다듬는 물새들은 성스러운 은택 속에 헤엄치니 그 즐거움이 끝이 없다. 맑은 향기는 멀리까지 퍼지고, 푸른 소나무는 울창하게 정자를 둘러싸 시원한 바람이 절로 일어난다. 수면 위로는 배들이 오가고, 언덕 위에는 정자와 집들이 가지런히 들어서 있다. 아침 햇살이 봉우리에 비치고 산안개가 골짜기를 감싸니, 푸른 병풍이 정자를 둘러친 듯하다. 제방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향기로운 풀꽃 사이에서 노닐며 즐거워한다.그러나 이 정자를 지은 뜻이 단지 경치를 구경하는 데(景物)에만 있는 것이 어찌 충분하겠는가. 우리 문중이 대대로 힘을 합쳐 무너진 곳을 보수하고 이 정자를 썩지 않게 보존하는 것은, 조상을 사랑하고 임금을 공경하는 마음(愛君慕族)이 여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1899년 전주이씨 시조 묘인 조경단이 세워졌다. 재신(宰臣) 이재곤(李載崐)을 중심으로 조직된 화수회는 전주 덕진공원 옆 승금정에 화수각(花樹閣)을 지은 뒤 현재까지 매년 고종황제 탄신일인 음력 7월25일을 기념하며 황궁다례와 축연을 베풀어왔다.

'화수(花樹)'란 말은 '꽃나무'라는 뜻이지만 특별한 사연이 전해진다. 1350여 년 전에 당(唐)나라 위장(韋莊)이란 데서 일어난 고사(故事)에서 그 시원이 됐다. 원외랑(員外郞)벼슬의 위(韋)씨 집안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땅을 아들들이 서로 사양하며 물려받지 아니하므로, 놀리게 된 땅에 꽃나무가 무성해지자 이내 '꽃나무(紫荊樹) 아래에 사람들을 모으고 즐거이 지냈다'는데서 연유한다. 그것을 잠삼(岑參)이 위(韋)씨 집안을 경모하는 시 한 수를 읊은 '위원외장화수가(韋員外莊花樹歌)'가 전한다.



'그대 집의 형제우애를 당할 수 없나니/열경(列卿)에 어사(御史)며 상서랑(尙書郞)들 일세/조회에서 돌아오면 꽃그늘 아래 늘 손님을 모으니/꽃은 옥동이에 날리고 봄술은 마냥 향기로워라'





이렇듯 같은 나무에 가지마다 꽃이 핀 그늘 아래서 펼쳐진 광경을 읊은 시가 형제우애를 통해서 집안의 화목과 단란함이 세상의 아름다운 풍속을 이루게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진 일이 '화수회(花樹會)'의 근원을 이룬다.

'중건승금정기(重建勝金亭記)'에 화수각은 승금정의 옛 주춧돌에 새롭게 건물을 올려 조경단 관리 재사(齋舍)와 별사(別樹)로 소속시키고, 매년 고종황제 탄신일에 문중 사람들이 정자 위에서 잔치를 열어 북쪽을 향해 만수를 축원하는 것을 상례(常禮)로 됐다고 한다.

이에 화수각은 종족(宗族)들이 조상을 존중하고 친족 간에 화목하게 하는 구심의 전당이다. 즉 '화수(花樹)'는 ‘숭조돈종(崇祖敦宗)'을 일컫는 깊은 뜻을 가졌다.

덕진 연화정도서관에 서서 넓게 펼쳐진 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저절로 찾아든 상쾌한 기분은 하루 일과를 다시 시작하는 청량제이다. 연꽃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이며, 이슬 맺힌 청초함을 느끼기 위한 새벽 발걸음도 이어지고 있다. 이때면 호수 절반을 채우고 있는 홍련은 붉디 못해 빨갛고 꽃밑을 바치고 있는 푸른 연잎은 뜨거운 햇빛을 가리는 가림막이다. 백제의 이 땅에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연꽃들은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멋진 합창이 일제히 시작된다. 천 년의 세월을 품고 고고하게 핀 연꽃의 아련함으로 그렇게 천년의 시간을 오가면서 향기를 피워낸다. “세상 밖으로 나가볼까?”/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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