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길목]환대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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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5월이 되면 초록 물결이 파도치는 청보리밭과 안면도의 꽃박람회에 어머니와 거닐던 산책길과 꽃길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어린아이였을 때 지독한 척추결핵과 싸우는 필자에게 단 한 번도 약 먹이는 시간을 어긴 일이 없이 헌신하신 모성애로 살리셨고, 40대에 두 번의 암 수술이라는 어렵고 위험했던 순간들을 “ 우리 딸보다 제가 먼저 주님 곁으로 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살려 주세요 우리딸 !” 눈물이 범벅이 된 창백한 얼굴로 어머니의 부르짖는 절박한 기도와 신선한 재료와 무한한 사랑으로 버무려 정성껏 차려주시던 녹두빈대떡과 왕 만둣국은 나를 다시 살게 했던 환대의 식탁이었다.

환대는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함을 뜻하며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환대”한다는 말은 대체로 예의 바른 접대와 정중한 초대, 혹은 적절한 비용을 지불한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의미하곤 한다. 그러나 알제리 태생의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친절이나 에티켓의 차원을 넘어선 “무조건적 환대”를 관통하는 통찰을 가르치고 있다. 사실 현실 세계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낯선이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은 위험하거나 불가능해 보일 수 있지만 자크 데리다는 바로 그 불가능성 이야말로 환대의 본질이라고 강조하고 “환대”는 오직 불가능한 것(무조건성)을 지향할 때만 환대일 수 있다고 했다. 비록 우리가 법과 규칙. 제도 즉 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어떠한 계산도 없는 “무조건적 환대”라는 이상을 품고 있어야만 세상이 조금 더 인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논리이다. 더군다나 낯선 이를 맞이한다는 것은 첫 번째 주인의 권리를 내려놓아야 하고 두 번째 예측 불가능성을 환영하기 즉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을 나와 결코 같아질 수 없는 그 낯선 차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용하기이며 세 번째로 불가능을 향한 가능성으로 무조건적인 환대라는 불가능한 이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법과 제도는 그저 배타적이고 차가운 계산기로 전략 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도달할 수 없을지라도 그 완벽한 환대를 꿈꿀 때 만 우리는 현실의 경계선을 조금씩 넓혀서 더 많은 타자를 품을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필자가 초등학교 다닐 대로 기억되는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쌀가게를 하시며 힘들게 살던 시절이었는데 어머니께서 초라한 우리 집 모퉁이에서 구걸하시는 어느 장애인 여자분께 조그만 쌀자루를 건네주시는 것을 목격하며 “우리도 힘든데 왜 주시는 걸까?” 하며 머리를 갸우뚱 했던 의아심이 제가 공직자가 되었을 때 우리 집으로 찾아온 어렸을 때 쌀자루를 건네받으셨던 장애인 엄마와 함께 온 아들의 진심어린 땅바닥에서의 감사 큰절은 나를 부끄럽게 하였으며, 아무런 계산이 섞이지 않은 무조건적인 환대는 죽어가는 생명을 살릴수 있음을 깨닫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우리 어머님은 그리운 고향을 북녘 땅에 두신 실향민으로 월남하신 후 먹을 것이 없던 배고프고 가난했던 시절을 어린 저에게 자주 말씀하시면서 음식을 만들 때마다 뒷집 혼자 사시는 노인 어르신께 우리 가족이 먹기 전에 정성껏 한 그릇 담아서 심부름을 자주 시키셨다. 필자의 남은 여생은 아주 소박한 국 한 그릇이라도 인간의 계산이 들어가지 않은 조건이 없는 환대의 식탁으로 초대하는 것이 필자의 희망 사항이다. /안승현(지속가능발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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