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21일 해남땅끝마을로 봄 맞이를 떠난 고교 친구들이 완도로 가는 카페리를 탔다. 왼쪽부터 문우진 황유연 이기봉 김해영 김선재 필자 이형일 이석주 윤진 이동만 친구.
봄이 기지개를 펴고 있다. 자두나무와 앵두나무 가지마다 다닥다닥 붙은 꽃눈이 이른 봄을 희롱한다. 메마른 잡풀 사이에서는 아지랑이가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멀리 보이는 산은 아직 푸르름보다는 진달래의 연분홍빛으로 단장하고 있다. 자두나무 아래선 앙증맞은 풀들의 자리다툼이 한창이다. 삼락원의 봄은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다가온다.
초보농부에게 봄은 기다림이고 조바심이다. “올해는 제때 할 일을 빠트리지 않고 해야 할 텐데, 작년보다는 결실이 좋아야 할 텐데…” 마음속으로 이런 저런 걸 정리해보지만 뭐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른다. 괜히 마음만 바빠진다.
서너달 만에 삼락원에 온 아버지와 나는 나무마다 퇴비와 유박을 듬뿍 주었다. 원래는 지난 초겨울에 감사거름을 주어야 했다. 이 거름은 한해 수확물을 거둔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다음해에도 잘 부탁한다는 차원에서 주는 보너스이자 뇌물이다. 하지만 게으른 탓에 날씨가 풀린 후에야 친한 척하며 인사하는 것이다. 그래도 안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그래서 이맘때쯤이면 시골 곳곳에서 구릿한 거름 냄새가 진동한다.
아버지는 우리의 게으름도 편하게 합리화한다. “그거 뭐 얼마나 먹겠다고 그려~ 오히려 수확물이 너무 많으면 보관하기도 힘들어~”
나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먹을 만큼만 있으면 되죠, 뭐”

자두나무 가지에 다닥다닥 붙은 꽃눈이 이른 봄 햇빛을 받으며 움트고 있다.
아버지는 올해에도 연밭에 유박을 뿌렸다. 작년에도 그걸 주어서 그런지 연잎은 사람 키보다도 더 컸다.
자두나무에 농약도 뿌렸다. 벌레약, 진딧물약, 전착제를 20리터 짜리 농약통에 넣어 두 차례 살포했다. 아버지는 “농약사에 가서 약 치는 시기를 물어봤는데 꽃이 나오기 전에 한 번, 꽃이 지고 열매가 나오기 전에 한번 쳐야 한다고 하더라”고 했다.
꽃이 피기 전에 농약을 치는 것은 따뜻한 날씨에 기어나오는 벌레들을 잡기 위해서다. 하지만 살포한 농약은 줄기와 가지로 가기보다는 공중에 흩어지는 게 더 많다. 바람 방향에 따라서 내 얼굴로 오거나 엉뚱한 곳으로 가버린다. 처음엔 바람이 어디서 불까 머리를 굴리며 이리저리 피해 다니다가 나중엔 신경쓰지 않았다. 이날 나는 농약 좀 마셨다.
“아버지~ 원룸에 사는 사람들이 농약이나 거름 냄새 때문에 좀 괴롭겠는데요.”
“시골 사람들이니 이해하겠지만, 미안하기는 하네. 자두 열리면 좀 갖다 줘~”
사실 원룸에 사는 사람들과는 아직 제대로 마주친 적도, 인사를 한 적도 없다. 인근 관공서와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임차해서 살고 있다. 18가구가 빈 집 없이 다 입주했다고 하니 시골에서는 웬만한 마을 하나 정도 된다. 아무래도 가을에 집을 지을 때에는 원룸 건물쪽에 있는 나무를 옮겨야 할 것 같다. 어차피 그쪽은 과실수보다는 조경수를 두는 게 낫겠다.
올해 초 산림조합에서 나누어준 나무구입쿠폰(2만원짜리)으로는 황금회화나무 묘목 두 그루를 사와서 입구 쪽에 나란히 심었다. 줄기가 정말 샛노란 이 나무는 잎까지도 노랗게 달려서 금세 눈에 띈다. 행운과 부를 불러온다니 얼마나 좋은가. 예부터 회화나무를 집에 심으면 가문에 큰 인물이나 큰 학자가 나온다고 하여 선비나무로 불렸다.
이 좋은 봄날에 어찌 일만 할손가? 진안 가기에 앞서 서울과 전주에 사는 고교친구 10명과 함께 1박 2일 봄맞이 여행을 떠났다. 여행지는 제주도 다음으로 일찍 봄을 만날 수 있는 곳, 바로 해남 땅끝마을와 보길도, 청산도였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밀리언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남도답사 일번지’에서 맨 처음 4개 장에 걸쳐 소개한 강진·해남편의 현장이다. 1997, 8년 쯤인가. 그의 책이 엄청난 화제가 되던 시절 나는 문화부기자로 문화 예술인, 정치인 등과 일행이 되어 그의 해설을 들으며 이곳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의 책 가운데 백미는 역시 1편이고 그중에서도 강진·해남편이 최고로 꼽히는데 그의 입담은 글보다 더 재미있고 구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길도 예송갯돌해변에 있는 동백나무 숲에 동백꽃이 떨어져 붉은 꽃길을 만들어 놓았다. 이동만 시인 촬영
그래도 여행은 친구들과 가는 게 가장 재미있고 편하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청산도였다. 보길도가 윤선도와 송시열 등 조선시대 양반들과 인연이 깊은 정원문화를 볼 수 있다면 청산도는 서민들의 소박한 멋과 정겨운 풍경이 있어서 좋았다. 돌담과 구들장논 등 오랜 전통과 문화가 살아있었다. 특히 청산도는 영화‘서편제’에서 유봉 일가가 황톳길을 내려오며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을 촬영한 곳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영화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명장면으로 꼽히는 이곳에 도착하는 순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만큼 뇌리에 깊이 박혀있는 풍경이다.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친구중 하나가 바로 그곳에서 초등학교 여자 동창생을 만났다. 세련된 옷차림의 중년 여성이 친구에게 다가왔다. "혹시 ㅇㅇ 아니니?" 맞았다. 이런 인연이 있을 수 있나. 두 사람이 얼마나 반가워 하던지, 옆에 있는 우리는 부러울 뿐이었다. 영화촬영지에서 영화처럼 옛 친구를 만났으니 우리에게는 좋은 안주감이었다. 옛친구는 알고보니 우리와 같은 열차를 타고 내려와 내내 같은 버스로 이동하다가 같은 열차로 상경했다. 그들이 곳곳에서 마주쳤고 덕분에 우리는 여행 내내 깔깔댔다.
지나간 젊음을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는 한시가 있다. ‘노인 머리 위에 내린 흰 눈은 봄바람 불어와도 녹지를 않네(老人頭上雪, 春風來不消·노인두상설 춘풍래불소).’ 조선 선조때 우홍적(禹弘績)이 일곱 살 때 지었다는 시라고 하는데 믿기지 않는다. 아무튼 이 구절은 이태백의 시 ‘엎지른 물은 다시 거둘 수 없고, 지나간 구름은 다시 찾기 어렵다(覆水不可收 行雲難重尋·복수불가수 행운난중심)’와 함께 세월의 무상함을 훌륭하게 보여주는 댓구이다.
우리 인생의 봄날을 같이 보냈던 고교 친구들과 함께 떠난 여행은 더없이 유쾌하고 흐뭇했다. 하지만 머리 위에 내린 흰눈은 아무리 따스한 봄바람이 와도 그대로이니 어찌 덧없지 않은가?

나는 봄노래로는 엄정행의 ‘목련화’와 희자매의 ‘실버들’을 가장 좋아한다. 목련화는 ‘추운 겨울 헤치고 봄길잡이’로 다가오는 그 화려함과 순결함이 좋다. 또 김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실버들’은 세월(임)에 순응하는 자세가 처절하게 아름답기 때문이다.
‘실버들을 천만사 늘여놓고도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이내 몸이 아무리 아쉽다기로 돌아서는 임이야 어이 잡으랴.’
기왕에 시를 노래한 김에 하나 더 찾아보았다. 조선 중기 문신 상촌 신흠의 칠언절구 '오매월류(梧梅月柳)'라는 한시다.
<오동나무는 천년이 되어도 곡조가 같고(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노항장곡)
매화는 일생 동안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달은 천 번 이지러져도 본 모습이 똑같고(月到千虧 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
버드나무는 100번 꺾여도 새 가지가 나온다(柳經百別又新枝·유경백별우신지)>
남은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에 만난 새봄은 이렇게 왔다. 머리의 눈은 녹지 않지만 마음은 여전히 청춘!
/최진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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