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세계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전쟁 자체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보편적 인권과 평화의 원칙을 선택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죽음은 크게 애도되지만, 어떤 고통은 외면된다. 어떤 폭력은 즉각 규탄되지만, 어떤 폭력은 침묵 속에 방치된다. 이러한 선택성과 이중성은 오늘의 국제질서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인권의 보편성을 스스로 훼손한다.
이란을 둘러싼 전쟁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폭력 영상을 공유하며 보편적 인권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그 발언을 둘러싼 외교적 논란과는 별개로, 우리가 직시해야 할 본질은 분명하다. 인권이 진정으로 보편적이라면, 적과 동맹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인간의 생명과 존엄은 동등하게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오늘의 국제 인권 체계는 역사의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어 침략과 복수를 정당화하는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가장 깊게 희생되는 이들은 어린이와 민간인이다.
국제사회는 오래전부터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해 인권과 평화의 보편 원칙을 세워 왔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고 선언하였다. 1993년 세계종교의회가 발표한 「세계보편윤리」는 비폭력, 생명존중, 정의, 상호책임이라는 최소한의 윤리를 제시했다. 유네스코 또한 「문화다양성 선언」을 통해 문화다양성을 인류의 공동유산으로 규정하며, 다양성의 존중이 평화의 기초임을 밝혔다. 오늘의 인권 문제는 법과 선언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선택적으로 집행되고 구조적으로 불평등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근대 한국이 축적해 온 평등과 개벽의 지혜를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학의 수운 최제우는 “사람을 하늘과 같이 섬기라”는 사인여천의 가르침을 통해 신분차별과 남녀차별이 일상화된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고자 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폐정개혁안에 담긴 노비 문서 소각, 신분차별 금지, 과부 재가 허용 등은 당시 조선사회의 신분차별, 적서차별, 남녀차별을 혁파하려는 선언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제도개혁이 아니라 인간 존엄의 회복을 향한 절절한 외침이었다. 이후 천도교로 계승된 개벽사상은 신여성, 농민, 어린이, 청소년을 새로운 인간 주체로 세우려는 문화운동과 사회운동으로 확장되었다.
소파 방정환을 중심으로 전개된 어린이운동은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유산이며, 세계사적으로도 선구적 의미를 지닌다. 그는 잡지 《어린이》를 창간하고, 색동회를 조직하며, 동화구연과 소년운동을 통해 어린이를 존중받아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게 하였다. 1923년 5월 1일 조선소년운동협회가 발표한 「소년운동의 기초조건」과 「어른에게 드리는 글」은 그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동아일보』는 그날을 두고 “어린이에게도 사람의 권리를 주는 동시에 사람의 대우를 하자”고 썼고, 「어른에게 드리는 글」은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보드랍게 하여 주시오”라고 요청하였다. 또한 「소년운동의 선언」은 어린이에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요구하였다. 이 선언은 어린이를 단순한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존엄과 권리를 지닌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강력한 사회적 요청이었다. 오늘도 전쟁 속에서 어린이와 민간인의 죽음이 ‘부수적 피해’로 취급되며 보편적 인권이 훼손되는 현실 앞에서, 이 오래된 선언은 우리 시대가 다시 새겨야 할 생명과 인권 존중의 윤리적 책무를 밝힌 것이다.
지속 가능하고 정의로운 평화와 인권은 결코 무력의 우위나 보복의 논리 위에 세워질 수 없다. 그것은 오직 상호 존중, 책임 있는 대화, 그리고 화해의 실천을 통해 가능하다. 평화는 전쟁의 승리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그 다름이 공동의 삶을 해치지 않도록 조화의 규범을 실현하는 데서 자라난다. 차이를 제거하려는 문명은 결국 폭력을 낳지만, 차이를 존중하는 문명은 공존의 길을 연다. 오늘 우리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 인권사회란 힘과 무기에 의한 질서가 아니라, 서로 다름에 대한 이해와 존중, 그리고 타자의 생명을 자기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사회일 것이다.
/박광수 원광대학교 명예교수(K-전통문화학술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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