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나 지금이나 청계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중 하나가 버드나무다. 청계천 버드나무가 기억하고 있는 예전과 지금의 서울은 얼마나 다를까. 청계천 상류(上流)의 버드나무는 18세기 우리 산천(山川)을 고유의 화풍으로 표현한 정선(1676~1759)의 진경산수화 ‘백운동도(白雲洞圖)’와 그의 손자 정황(1735∼?)의 ‘청풍계도(淸風溪圖)’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림 속에서 연둣빛으로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시선을 옮기면 맑은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청계천 본류(本流)의 버드나무는 주로 ‘준천사업(濬川事業, 천을 깊게 파서 홍수를 막은 사업)’과 관련돼 등장하는데, 개천(開川, 청계천의 조선시대 명칭)의 홍수를 막기 위해 버드나무를 심은 이유와 장소 등이 나타난 기록과 회화작품을 통해 알 수 있다.
영조가 1760년 대대적인 준천사업을 마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화첩인 ‘준천첩’ 중 오간수문(五間水門)의 준천 현장을 영조가 직접 관람하는 모습을 그린 ‘상관역우동문도’의 버드나무와 현존하는 지도 중 오간수문 근처의 버드나무를 생생하게 남긴 ‘한양도성도(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외에 ‘옥계십이승첩(삼성출판박물관 소장)’과 유본학(1770~?)의 문집 ‘문암집’ ‘동국세시기(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등을 통해 버드나무가 봄놀이 장소로 손꼽혔다는 사실과 일제강점기 신문자료를 통해 봄을 알리는 소재로 버드나무가 자주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이전엔 왕버들·버드나무 등을 홍수 방지에 활용하는 일이 흔했다.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제35권(1701년 기록)을 보면 홍수 피해를 입은 함경도 지역의 복구와 관련해 병마절도사 홍하명이 이렇게 건의한다.
“느릅나무·버드나무를 심어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을 돌·흙으로 메우면 느릅나무·버드나무가 뿌리를 내려 서로 연결돼 버티는 방법이 될 것 같다"
숙종은 이를 실행토록 한다.
조선왕조실록이 피신했던 정읍 내장산 원적암과 벽련암 사이에는 기괴한 수형의 왕버드나무가 있다. 이는 실록을 지켜낸 역사를 증언하는 상징물로 여겨진다.
실록을 내장산으로 옮긴 과정을 기록한 임계기사에는 당시 선비들이 버드나무 아래에서 제를 지내거나 당산나무인 버드나무를 각별히 여겼다는 민속적 배경이 담겨 있다.
조선 말기 완주지역에서 활동했던 유병량(柳秉養, 1864~1940) 선생은 시와 예학에 밝았던 대표적인 한학자이다. 그는 '어리석고 누추한 집'이라는 뜻의 우루재(愚陋齋)를 사용했다.
'어리석을 우(愚)'와 '더러울/비루할 루(陋)'를 사용,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이라 여기며 끊임없이 수양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영양 우루재(경상북도 영양)는 조선 중기 학자인 우루재 조희(趙暿)의 호에서 유래했다. 그는 광해군 시절 정치가 혼란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학문에만 전념하며 스스로를 '우루'라 칭했다.
안동 우루재(경상북도 안동)는 안동 권씨 문중 등 선비들이 세거지에서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재실의 이름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는 완주군 삼례읍 유리 출신으로, 아버지 사후 3년 시묘살이를 마친 효자로 알려져 있다. 낮에는 농사, 밤에는 공부에 매진하여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1905년 창화재(昌化齋)라는 강당을 세워 문중 자제와 후학들을 교육하면서 유학 진흥에 힘썼다.
창화재(昌化齋)는 한자 뜻을 풀이하면 '번성하고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우는 집(또는 재실)'이라는 의미이다. 1913년 과거제 폐지 후 실의에 빠진 선비들을 위해 사재를 털어 만경강 둔치에서 대규모 백일장을 열었으며, 당시 구경꾼만 1만 5,000 명에 달했다고 한다. 1913년 4월 19일자 매일신보에 나온다.
그는 백일장에서 뽑힌 시들을 모은 '우루재창화편(愚陋齋唱和編)'과 본인의 저술인 '우루재원고(愚陋齋原稿)'를 남겼다.
그는 유리마을의 느티나무와 관련된 인물로, 과거 이 나무 아래에 창화재가 있어 그곳에서 지내며 시를 남겼다고 전해진다.
그는 느티나무 인근 창화재에 머물며 시 ‘만흥(晩興)’을 지었다고 한다.
'만흥(晩興) - 늙은 느티나무 아래서 느끼는 늦은 흥취
老槐陰下置茅堂 (노괴음하지모당) : 늙은 느티나무 그늘 아래 초당을 짓고
白首看書意自長 (백수간서의자장) : 흰머리로 책을 보니 뜻이 절로 깊어지네
最是晩來多感致 (최시만래다감치) : 늙어 갈수록 느끼는 바가 참으로 많으니
一竿風月伴漁郞 (일간풍월반어랑) : 낚싯대 하나 들고 풍월 읊으며 어부와 짝하리라'
이창신의 '우루재서(愚陋齋序)'가 '괴정집'에 실려있다.
'어리석음(愚)이란 지혜로움(賢智)의 반대말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도 때로는 어리석을 때가 있고, 공자의 제자 안연(顔淵)처럼 겉으로는 어리석어 보이나 실제로는 지혜로운 경우도 있다. 또한 제나라의 영무자(甯武子)처럼 나라에 도가 없을 때 어리석은 척하는 지혜로운 어리석음도 있다. 그러니 '어리석을 우(愚)'라는 글자 속에는 사실 지혜로움의 뜻이 담겨 있는 셈이다. 나의 벗 류병양(柳秉養) 군은 어릴 때부터 학문에 뜻을 두어 그 성품이 순박하고 성실하다. 그가 스스로 (서재 이름을 '우루재'라 짓고) 그 뜻을 지키려 하니, 참으로 말과 뜻이 참으로 가상하다.(중략) 나 또한 그 시험 자리에 참석하여 보고는 개연히 감동하여 돌아와 그 사실을 기록하며 말한다. "류 군(류병양)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온 세상이 이익만을 좇아 욕망의 물결이 하늘을 찌르는데, 오직 그대만이 집안의 형편도 계산하지 않고 남의 비웃음도 개의치 않은 채, 마음속으로 단호히 결단하여 한 가닥 문맥(文脈)을 붙들고자 이런 거사를 치렀으니, 어찌 그대 혼자만의 힘이겠는가. 옛날 우공(愚公)은 지성으로 하늘을 감동시켜 산을 옮겼다. 이제 그대 또한 지성으로 하늘을 감동시켜 한 시대의 문운(文運)을 열지 않겠는가. 그대의 후손 중에는 반드시 문장으로 이름을 떨칠 자가 있을 것이다. 내가 축하하는 바가 바로 여기에 있다. 뜻이 저기에 있지 않으니, (제 미천한 글이) 장독 덮개로 쓰인다 해도 개의치 않고 송구한 마음으로 원운(原韻)을 따라 시를 짓는다'
유리(柳里.버드리) 앞 냇가에 버드나무가 많아 생긴 이름인데 공교롭게도 유씨가 많이 살아 유리인 듯이 느껴진다고 한다. 유리마을은 '버들 유'자를 쓰는 전주 유씨 집성촌으로, 과거 버드나무가 매우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우루재는 마을 뒷산의 고개 이름으로, 비가 오면 눈물처럼 흐른다 하여 '우루(雨淚)'라 불리거나 유씨들이 울며 넘었다는 설이 있다.
과거 마을 입구와 냇가에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많았으나, 현재는 대부분 사라지고 기록과 농장 이름('버들피리') 등으로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버드나무는 사라지고 현재는 돌담길을 따라 조성된 차분한 분위기의 마을이다. 유리 마을을 지나 만경강 제방으로 가는 길 주변으로 비닐하우스가 길게 늘어서 있다.
삼례의 특산물로 자리 잡은 딸기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다. 열린 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보니 벌써 딸기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만경강 제방 도로에 오르면 신천습지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신천습지는 회포대교부터 하리교 사이 구간 습지를 말한다. 지금, 완주 등 전북 곳곳이 봄을 맞아 화사한 벚꽃과 연둣빛 버드나무가 어우러진 장관을 이루며 상춘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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