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옥마을에 자리한 교동은 예부터 청수정(淸水町)이라 불릴 만큼 좋은 물맛을 자랑했다. 게다가 전주는 김제와 만경 등 비옥한 전북의 쌀 생산지를 옆에 두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 년 전 청수정이라 불리던 전주 한옥마을에 맑은 샘물이 흐르고 있었다. 청수정에 살던 사람들은 맑은 샘물로 빨래도 하고 머리도 감고 길어다 마시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 전통공예품전시관 자리에 있었던 오일주조장은 청수정의 맑은 샘물로 술을 빚었다. 샘물이 좋아서일까? 술맛도 아주 좋았다.
간재 전우선생은 전주시 완산구 다가동(당시 전주부 부서면 청석동 靑石洞)에서 태어났다. 최명희는 1947년 전주시 화원동(花園洞. 현 경원동)에서 출생했다. 풍남동은 일제 강점기 시대 인근 중앙동과 더불어 행정 및 상업의 중심지였다. 당시에는 일본식 행정구역 명칭인 '통·정·정목'에 따라 '풍남정' '청수정' '화원정' 등으로 불리었다.
화원정(花園町)은 본래 전주군 부동면(府東面) 지역인 사계리(砂鷄里)와 육계리(陸鷄里)의 일부를 병합해 만들어진 지역이다. 당시 화원정은 지금의 전주 한옥마을 및 경원동 일대인 풍남동 지역에 위치했다.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왜식(일본식) 동명인 '정(町)'을 붙여 화원정이라 불렀다. 1946년 일제식 동명 변경에 따라 화원정에서 화원동으로 변경됐다.1957년 동 대개편 때 경원동 3가로 편입됐다.
전주 풍남동은 전주의 오랜 역사의 중심이다. 풍남동의 지명은 그 이름대로 전주부성 성곽중 풍남문을 포함한다는데서 불리었다. 1767년 정해년 대화재로 소실된 전주부성의 남문과 서문을 재건. 풍남문(남)과 패서문(서)으로 명명했다. 태조 이성계의 고향(풍패지향)을 의미하며, 이후 1775년 동문(완동문), 북문(공북문)이 중건되며 4대문 체제가 완성됐다.
풍남문(豊南門)은 전라감사 홍낙인이 남문을 중건하며 '풍패지향(豊沛之鄕)의 남문'이라는 뜻으로 명명했으며, 패서문(沛西門)은 정해년 대화재 후 중건하며 서문을 '풍패(豊沛)의 패(沛)'자를 따서 이름했다. 완동문(完東門)은 1775년(영조 51년) 서호수 관찰사가 중건하며 '전완(전주)의 동문'이라는 의미로, 공북문(拱北門)은 북쪽 문으로 불렀다.
한옥마을 일대는 전주향교, 경기전, 오목대, 풍남문, 교동미술관, 그리고 전라감영 등 역사 및 문화 답사 시설이 밀집해 있다. 다음달 16일 전라감영 마당에서 2026년 불기 2570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전주 전라감영에서 대규모 연등문화축제를 갖는다. 올해 행사는 '다시 꿈이 시작된다'를 주제로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즐길 수 있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봉축 기원탑 점등식은 이달 25일 전주역 앞에서 열린다./이종근(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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