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중근 의사(1879~1910)가 1910년 2~3월 뤼순감옥에서 순국 직전 남긴 친필 유묵은 200여 점으로 추정, 유묵 가운데 현재 60여 점이 확인됐다. 보물 31점은 단일 인물로는 최다 보물 지정 기록이다. 이들 유묵들은 독립에 대한 열망과 동양평화론을 담고 있다. 이에 서각으로 담으면서 안의사의 숭고한 정신을 담았다"
17일 오후 고창군 상하면 구시포안길 자신의 '안중근의사 유묵 서각 갤러리'에서 만난 송천 염영선 작가는 "일본에서는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그의 유묵을 보존하고 있었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유묵(遺墨:생전에 남긴 글씨나 그림)을 서각으로 새겨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고창읍내에서 30여㎞ 떨어진 상하면 자룡리 10평 남짓 조립식 건물의 '안중근 의사 유묵서각 갤러리' 마당에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다.
작가는 교육계에 몸담았을 때부터 15년 여간 직접 조각한 서각 작품과 유묵을 보관한 것은 물론, 2010년 안중근 의사 서예대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면서 안 의사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누구보다도 공부하고 알리는데 앞장섰다. 국가 존망과 민족의 자존을 위해 희생도 마다하지 않은 애국선열들의 숭고하고 강건한 정신이 입혀진 ‘각(刻)의 예술’은 당연 보는 이에게 미적 감흥과 더불어 진중한 민족혼을 환기하는 정신적 이색 체험 기회를 제공할 터이다.
안중근 의사의 깊은 신앙심을 보여주는 작품은 '경천'(敬天)이다. 하느님을 공경하라는 뜻으로, 안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사형을 집행당하기 전에 썼다. 네 번째 손가락 한 마디가 잘린 손도장이 찍혀 있다.
도무지 죽음을 앞두고 감옥에서 이런 글을 남겼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글씨에서 흔들림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후세에 이렇게 기억될 것을 몰랐을 텐데 본분을 잊지 않고 일필휘지로 본인의 생각을 남기고, 신념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인 점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안의사는 1909년 10월 조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지키기 위해 하얼빈 의거 이후 1910년 순국을 앞두고 여러 글씨를 남겼다. 그의 유묵은 31점이 보물로 지정에 이어 국내 소재 미지정 유묵 12점, 국외 소재 유묵 16점, 사진으로만 존재하는 유묵 6점, 미확인 4점 등이다.
안의사가 쓴 글귀에는 '논어'를 비롯한 유가의 경전이나 군인으로서 국가에 대한 충성심 같은 내용이 많다.
그가 쓴 모든 문장과 글귀는 사(私)보단 철저하게 공(公)을 추구하고 아울러 애국충절의 마음을 토로하고 있다. 현재 안의사의 작품은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것은 안의사의 서예작품이 예술차원에서 뛰어났다는 점에 대한 평가가 아닌, 애국충절에 대한 평가의 결과다. 안중근의 서예 작품에 담긴 항일의지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이 요구된다.
그는 6.3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까닭에 선거 후 개인전을 갖고 싶다고 했다.
작가는 단순히 유묵을 서각으로 남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최근 이를 알리는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2024년 이곳 공방에서 안중근 의사 순국 114주기 추모 행사를 진행했으며, 2025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 115주년을 맞아 추모 행사를 가졌다.
“2024년 처음으로 개인적으로 행사를 열었는데, 관객들이 ‘매년 정기적으로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었다. 2025년에 이어 감사하게도 한빛원자력본부에서 도움을 줘 올해에 순국 116주기 행사를 진행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안의사의 유묵 가운데 보물 31점(보물569-1호~31호) 등 다양한 작품을 전시할 생각이다.
2018년 강호항공고등학교(전 강호상업고등학교)의 행정실장으로 퇴직한 그는 2005년부터 목치 정찬민선생을 만나 서각에 입문, 안의사 유묵 서각 전시를 계획하고 서각 작업에 몰두해왔다.
"안 의사의 옥중 유묵은 단순한 글씨가 아니라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철학과 신념의 기록이다" 그는 퇴임후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진 하루 3~4시간의 고된 서각작업을 하면서도 "힘든 줄 몰랐다"고 했다.
작가는 "안의사의 옥중 유묵을 서각으로 새기는 과정은 단순한 예술 작업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위대한 정신을 제 마음속에 다시 새기는 시간들이었다" 나무에 새겨진 글씨는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이자, 후대에 전하는 메시지다. 작가는 안의사의 유묵을 서각으로 재현하며 그 정신을 오늘날에 되살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서각을 통해 안의사가 남긴 글씨를 보존하고 널리 알리는 데 집중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젊은 세대가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이라는 글씨는 사형 직전 감옥에서 쓴 마지막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이 순국직전 안의사의 공판정 왕래에 경호를 맡았던 일본 헌병 지바도시치 간수에게 써서 준 것으로 일본에서 보관되다가, 안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후손에 의해 한국으로 돌아온 사연을 들려주었다.
그는 일본에서도 안의사를 존경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그의 유묵을 보존하고 있었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더군요. 그래서 유묵을 서각으로 새겨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다"
서각 작품중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유묵 작품은 보물 569-28호 '황금백만냥 불여일교자(黃金百萬兩 不如一敎子)'이다. '황금이 가득한 바구니는 아들에게 하나의 경서를 가르침만 못하고 아들에게 천금을 줌은 하나의 기예를 가르침만 못하다'는 뜻의 유묵이다.
중국 여순감옥에 투옥 중이던 안 의사가 1910년 3월에 여순감옥의 경수계장이던 나카무라에게 써준 명심보감 글귀다.
" ‘장부수사심여철의사임위기사운(丈夫雖死心如鐵義士臨危氣似雲)’은 지난 1972년 8월 16일에 보물 569-12호로 지정된 작품이다. 작품의 뜻은 ‘장부는 비록 죽더라도 마음은 쇠와 같으며 의사는 위태로움에 닥치더라도 기운은 구름과 같다’로 안중근 의사의 유묵으로 알려져 있다"
안의사가 남긴 붓글씨 중에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 곧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것도 있다. 심지어 의사가 사형 직전 자신을 데리러 온 간수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5분만 시간을 달라. 책을 다 읽지 못했다'였다고 한다. 나라를 위해 그 어떤 이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안의사. 의사는 죽는 순간까지 책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서각은 단순한 조각 작업이 아니다. 글씨의 의미를 이해하고, 적절한 목재를 선택하며, 수십 번의 조각과 염색 과정을 거쳐야 한다. “유묵은 크고 작은 다양한 작품이 있다. 글씨의 크기와 분위기에 맞는 목판을 구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서각 작업은 칼과 망치를 사용해, 하나하나 새겨야 하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기계로 작업하는 현대 서각과 달리, 저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작업한다. 오직 칼과 망치만 사용해서 새기는 과정은 힘들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다"
그는 “안중근 의사님의 글씨는 단순한 서예 작품이 아니다. 사형이 임박한 순간에도 철학과 신념을 담아 쓴 글씨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는 이를 위해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면서 후세에 안의사의 정신을 전하는 데 힘쓰고 있다. 안의사의 유묵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그는 글씨의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원본 크기를 그대로 옮기기는 어렵기에, 작품의 비율과 구성은 작가의 경험과 철학에 따라 결정된다. 유묵을 서각으로 새기는 작업은 단순한 조각이 아니라 역사적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현재 확인된 유묵 59점을 모두 서각으로 제작, 전시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작가는 앞으로 더 많은 유묵을 서각으로 남겨 ‘안중근 서각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작가는 "올해 치러지는 전시가 관람객들에게도 안중근의사의 숭고한 뜻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오늘의 삶 속에서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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