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가 송경호씨가 두 번째 작품집 ‘안녕, 가리비(인간과문학사)'를 펴냈다. 계간문예지 ‘인간과문학사’ (2022 여름·제38호)에 늦깎이 수필가로 등단, '걷고 싶은 길'을 출간한지 2년만이다.
2025년 5월 25일 주위 사람들의 염려와 응원을 받으며 산티아고 순례 프랑스길를 걷기로 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스페인 북서부에 있는 도시이다.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는 야고보 성인의 유해를 알현하러 가는 길이다. 이 길을 걷기로 마음 먹은 것은 기독교에 대한 믿음이 강해서도, 남은 생을 위해 새로운 다짐을 하는 계기로 삼으려 한 것이 아니다. 우선 걷고 보자는 단순한 생각으로 길을 나섰다.
콤포스텔라 까지의 길에는 170여개의 마을과 300여개의 크고 작은 성당이 있다. 스페인과 천주교 역사에 대한 나의 얄팍한 상식으로는 중요한 문화유적을 무심히 스쳐 지나치기 십상이다. 걷기의 어려움 보다 더 염려되는 일이다. 800여Km를 걸으려면 백 만보 이상의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순례길에서 발이 제일 먼저 기도를 한다고 한다. 물집은 질문이고 통증이 대답이다. 단순한 도보 여행이나 고행이 아니라 내면에 자리잡은 어리석은 생각을 흔들어 보고 싶은 바람이었다.
순례길은 루르드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편지를 떠올리며 시작되었다. 생장 피드포트에서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부의 4개 자치주를 가로질러 가는 여정이다. 길이 사람을 시험하는 시작의 땅 나바라주, 땅의 풍요가 신의 은총이 되는 곳 리 리오하주, 침묵 속에서 신을 만나는 광야의 카스타 이 레온 주, 끝이자 완성 그리고 새로운 시작인 가리시아 주에서 만난 소소한 인연을 정리해 보았다.
용서의 언덕엔 19세기 중엽까지 ‘용서의 성모’를 모셨던 작은 성당이 있었다. 현재는 성당은 없고 순례자 12명의 모습을 형상화한 철제 조형물이 서 있다. 조형물엔 ‘바람의 길과 별의 길이 교차하는 곳’이라는 문구가 있다. 언덕 아래 왼쪽에 둥글게 세워놓은 비석들이 있다. 안내판에 새겨놓은 ‘기억은 건설의 진전을 위해 필수적인 도구이다‘ 라는 글귀가 가슴에 와 닿았다. 용서의 언덕에서 하느님에게 용서를 구하는 공간이라 짐작했었다. 바람의 길과 별의 길이 교차한다는 의미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바람처럼 이곳에 온 내가 별이 된 용서의 의미를 깨닫는 곳’일까는 나 혼자의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작가는 철의 십자가(Cruz de Ferro)’앞에 왔다. 십자가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심장은 두근거리는데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5m 높이의 나무 기둥위 꼭대기에 철로 만든 십자가 서 있다. 세상을 밝히는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는 장엄한 순간에 십자가를 보고 또 바라 보았다. 기둥 아래에는 순례자들이 두고 간 돌멩이들이 무더기로 쌓여있다. 고향에서 가져온 돌이나 순례길을 걸으며 주운 물건을 내려놓으면서 마음의 짐을 내려 놓는다고 한다. 가족의 곁을 일찍 떠나신 아버님을 그리는 마음, 사소한 일로 소원해진 몇몇 친구들에게도 사과의 말을 담아 나무로 만든 조그만 오리 한 마리를 얹어놓았다.
콤포스텔라는 산티아고(성 야고보)무덤이 있던 곳으로 ‘별의 들판’이란 뜻이다. 성전에 들어가 엄숙하면서도 아름다운 선율의 성가를 들으며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수사들이 보타푸 메 이로(향로 의식)를 준비하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보따푸 메이로 강복 의식이 시작되었다. 성 야고보 찬가 울림과 동시에 8명의 수사들이 정교하게 흔드는 황금빛 대 향로가 대성당의 천장을 날렵하게 날아다니는 감동적인 광경을 숨 죽여 보았다. 향의 연기는 기도가 하늘로 오름을 상징한다. 사제나 봉사자는‘기도가 하늘에 닿게 하소서’라는 마음으로 향을 사른다고 한다. 성전 안에 가득 펴지는 향내는 이곳에 온 사람들의 염원을 하늘에 닿게 할 것 같다.
순례길을 걸으며 귀하고 특별한 인연을 만나 담아 온게 있다. 루르드의 식당의 에서 가져 온 가리비 껍데기는 든든한 길잡이가 되었다. 생장을 출발하여 피레네산맥에 오르며 만난 등산화처럼 생긴 작은 돌멩이는 기적처럼 물집이 하나도 생기지 않게 해주었다. 용서의 언덕을 내려와 밀 밭과 양귀비꽃이 어울어진 길목에서 만난 연꽃잎 닮은 돌멩이 위엔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 놓았다. 메세타 고원을 걸으며 얼굴을 내민 호리병 닮은 돌멩이는 보는 것 만으로도 갈증을 잊게 했다.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착하기 전 날 숙소의 침대에서 바늘 두 개를 주웠다. 누군가의 발에 난 물집을 달래기 위한 도구로 쓰였을 것 같다. 나에겐 필요없는 물건이라 지나치려다 생각을 달리했다. 물집은 질문이고 통증은 대답이라니 오늘 만남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보관 방법을 궁리한 끝에 명함에 꽂아 놓으니 은빛 십자가로 태어나 환하게 빛이 났다. 무려 40일을 쉬지 않고 밤낮으로 걸었다. 작가는 이번 여행을 오래오래 간직할 생각이다.
작가는 단순한 여행기를 넘어 걷는 과정에서 삶을 돌아보고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성찰의 기록이다. 책은 독자에게 조용한 질문을 남긴다.
작가는 "스페인 북부를 가로지르는 세계적인 순례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 세계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져 온 이 길은 단순한 여행 코스를 넘어 인간의 삶과 신앙, 성찰이 겹겹이 쌓인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이 길 위에서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기록을 남겼다.
이어 "이번 책이 독자들에게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갈수록 힘들고 복잡해지고 있지만, 서로에 대한 친절과 배려를 잃지 않았으면 한다”며 “성찰을 통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는 전주 출신이다. 전라북도보건환경연구원 총무과장직으로 정년을 맞고 ‘인간과 문학’으로 등단했다. 현재 인간과문학 동인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이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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