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 전 장수에서는 ‘녹반석(綠斑石)’이라는 돌로 벼루를 만들었다. 초록색 돌 속에 다른 성분의 점이 박혀 있어 ‘녹반석’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담금질을 마친 쇠라면 자귀(짜구)로도 가공이 가능할 정도로 비교적 무른 돌이며 점처럼 박힌 다른 돌 성분으로 인해 정밀 조각이 어렵지만 먹이 잘 갈리고 물이 마르지 않는다. 연마 후에는 검은색 기운을 띠는데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일반적인 벼루와는 색과 성질이 다르다"
전통 벼루를 만들어온 고태봉 장인이 전북무형유산 '장수 녹반석 벼루장' 보유자로 지정됐다. 이번 인정은 장수 녹반석 벼루의 전통성과 예술성을 공적으로 재확인한 것으로, 지역 전통문화의 위상을 높였다.
‘장수 녹반석 벼루장’은 곱돌계열 석재 가운데 녹색반점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인 장수 녹반석을 활용, 벼루를 제작하는 전통기술이다. ▲전통벼루 공예기법을 전승하고 보존하고 있다는 점 ▲벼루의 원석인 ‘녹반석’ 산지가 장수 침령산성, 번암면 등지에서 확인돼 도 무형유산으로 지정하게 됐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울산 벼루장, 충남 보령 남포 벼루제작, 충북 자석 벼루장, 경기도 벼루장에 이은 5번째 벼루장으로 종목을 인정받았다.
백제시대의 장수는 ‘백이군(伯伊郡)’또는 ‘백해군(伯海郡)’이라 했다. 물, 바다의 어른이라는 뜻이다. 장수는 예전부터 산이 깊고 금강, 섬진강, 낙동강의 발원이 되는 지역이라서 오지(奧地)였다. 덕분에 산림자원이 풍부하지만 아픈 역사도 있다. 장수지역에는 광물이 많은데 일제강점기 시절, 수은을 캐기 위해 광산에 들어가 작업을 했던 광부들은 열악한 작업환경 때문에 일찍 세상을 등져야 했고, 많은 자원을 수탈당했다. 지금은 문 닫은 광산이 많지만, 차돌, 곱돌이 특히 많이 채굴됐다. 장수에서는 국내 최초로 곱돌로 그릇을 만들어 다양한 요리에 활용했고, 공예품도 만들었다.
그는 "명맥이 끊긴 채 기록에만 남은 장수 녹반석 벼루는 고려시대 이후 주로 돌로 만들어 사용하였지만, 전에는 물푸레나무나 흑단 등 나무로 만든 벼루도 사용하였고, 흙으로 구운 ‘도자 벼루’나 ‘징니연(澄泥硯)’이 있었으며 청동으로 만든 벼루도 있었다. 벼루장인 나는 벼룻돌에 관심이 많아 고향인 장수지역의 기록을 통해 벼룻돌을 구하게 됐다. 벼루를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기술을 습득하고 있던 1997년 어느 날 뜻밖의 논문을 발견했다. 전북지역으로서는 유일하게 벼룻돌 산지가 기록되어 있었는데 녹반석이라고 했다"
이후 장수에 터를 잡고 벼루를 만들면서 녹반석을 찾아내기 위해 수소문을 한 결과 곱돌로 벼루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실제로 벼루 뚜껑으로 보이는 돌판을 구하기도 하였다. 다만 현대에 사용되고 있는 곱돌은 단단하고 회색에 가까운 색깔 때문에 녹반석으로 볼 수 없었다. 현지에서 6개월여 돌 작업을 같이하면서 지인들을 만났지만, 녹반석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1997년 이후 18년 동안 녹반석 산지를 확인하기 위해 장수의 산을 찾아다녔으며 2015년 결국 장수읍 ‘싸리재’ 기슭에서 장수녹반석 산지를 확인했다.
장수의 녹반석은 초록색을 띠며 하얀 얼룩이 있다. 시골에서는 이런 돌을 ‘쑥돌’, ‘꽃돌’이라고도 하는데 석영이 섞여 있다. 석영이 고르게 분포하면 먹 갈림이 우수하며 물이 마르지 않는 바 장수 녹반석은 이러한 조건을 고르게 갖추고 있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석등(石燈)을 주로 만들었다는 폐광된 지역을 찾아보기 위해 장수의 싸리재를 오르게 되었다. 주변 골짜기와 산을 여러 차례 오르내리던 어느 날, 높은 산, 가파른 음지 골짜기에 담장을 이루듯 쌓여있는 녹반석 산지를 발견했다. 습도가 높아서인지 모든 돌이 이끼와 함께 초록빛이 선명하였으며 여기저기 채굴을 위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다음 날 지게를 지고 몇 개의 돌을 가져다 지인들께 확인한 결과 녹반석 돌이 맞았다. 벼루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일정량의 원석 확보가 필요했지만, 필요예산이나 환경문제로 인해 광산을 개발할 수는 없었다. 우연히 지인의 석기공장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야적장 모퉁이에 둥글둥글한 작은 돌들을 보는 순간 녹반석임을 알아차렸다. 일일이 정으로 다듬은 손길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오래 전, 산에서 다듬어 지게로 져 날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 구입을 요청하고, 흔쾌히 승낙받았다.
많은 돌은 아니었지만, 그날 이후 장수의 벼룻돌인 녹반석으로 벼루를 만들기 시작했다. 녹반석은 중간중간에 점이 박혀 있어 고르고 정밀한 선을 새기는 것이 어렵지만 오히려 투박하고 단아한 문양을 새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연마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녹반석은 물을 묻힐 때 초록색이 선명하지만, 연마할수록 빛이 나면서 초록색이 엷어지고 검은빛을 띠게 된다.
녹반석(綠斑石)은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에서 주로 생산되는 희귀한 석재로, 표면에 녹색 계열의 석영 반점이 흩어져 있어 독특하고 단아한 문양을 자아낸다. 쇠를 담금질한 도구로 가공이 가능할 정도로 비교적 무르지만, 물을 잘 흡수하지 않고 먹이 잘 갈리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벼루 제작에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는 "장수 녹반석 벼루의 전통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앞으로도 지역 무형유산의 체계적인 보존과 전승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어 "이제야 그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지만, 벼루를 사용하는 사람이 급격히 감소하고 미래의 가치가 존재할 지조차 잘 모르는 상황에서 묵묵히 이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은, 벼루가 전통예술이며 어쩌면 탁본 예술과 인연이 닿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부디 이 마음이 미래에도 전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1996년 충북 진천 자석으로 벼루에 입문, 1997년 장수에 정착한 이후 김진한 선생님(충남 무형문화재 벼루장)을 만나게 된다. 선생이 직접 구해준 '백운상석(白雲上石)'으로 벼루를 제작하면서 기능을 전수했다.
장수에서 태어났으며, 장계초등학교와 장계중학교, 금오공고와 금오공대를 졸업했다. 경성대 산업대학원을 졸업한 후 해군 소령(ROTC 22기)으로 전역했다.
다시 원광대 일반 대학원 서예학과를 졸업, 전역 후 줄곧 고향에서 살아 온 그는 한국의 미래가 농촌에 있다는 확신을 갖고 생활하고 있다.
고향에서 '장안문화예술촌'의 설립을 통한 '도깨비 축제' 개최, '먹빛찾기 행사', 전통문화예술 교육을 갖고 있는 등 우리 문화예술의 창안과 활용을 전하고 있다.
그는 최근 들어 전주향교 앞 갤러리한옥, 전주 한옥마을 역사관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이 전시회엔 머루 일월연(日月硯), 용연(龍硯), 초엽연, 팔궤연 등 손수 장인정신으로 만든 벼루 등을 소개한 바 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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