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만 세상사 적막하네.“.
판소리 단가 <사철가>의 첫 대목으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화창함을 노래하면서 덧없이 흘러가는 인생과 변해가는 세상을 한탄하는 노랫말이다. 전주 지천에 화려한 꽃이 만발한 요즘 나무가 베어진 전주 곳곳의 모습이 연상되면서 가슴 한쪽이 시리게 다가온다.
전주 곳곳에 봄꽃들이 만개하고 있지만, 그 꽃을 받쳐주던 나무들이 잘려 나간 천주천, 삼천천의 버드나무를 비롯하여 덕진공원의 소나무, 완산공원의 삼나무가 꽃샘 추위보다 서늘한 톱날의 흔적이 눈 앞에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전국이 봄꽃 나들이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는 요즘 전주에도 봄 꽃 나들이 명소가 여러 곳 있다.
전주 완산칠봉 꽃동산, 전주 동물원의 벚꽃 터널, 전주도로공사의 전주 수목원, 전주 삼천천의 벚꽃길, 전주 덕진구청 앞 벚꽃 등으로 이 곳을 찾는 상춘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그 중 한 곳인 완산칠봉 꽃동산은 필자가 매년 찾는 곳이다.
전주완산칠봉 꽃동산은 1970년대부터 전주 토박이 김영섭님이 아버지 묘를 쓴 사유지 야산에 철쭉, 벚나무, 황매화 등 꽃나무를 심기 시작하여 40여 년간 가꾸어 온 곳을 2009년 전주시가 매입하여 공원으로 조성한 것이 꽃동산의 시발점이다.
40여 년간 가꾸어 온 곳을 2009년 전주시가 매입하여 공원으로 조성하였으며, 약 4,500평 규모인 꽃동산에는 1만여 그루에 달하는 철쭉, 겹벚꽃, 황매화 등이 만개하는 봄날이면 많은 사람들이 꽃동산을 찾는 꽃 구경 명소 중 한 곳이다.
4월 중순부터 일반 벚꽃이 진 후에 겹벚꽃과 철쭉이 만개하면 완산칠봉 꽃동산이 마치 불이라도 난 듯 붉은 빛으로 물들어 우리들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김영섭 한 사람의 노력과 집념은 수십 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 이뤄낸 ‘기다림의 미학’의 본보기기라 할 수 있다.
2024년에는 전주의 전주천과 삼천천에서 수십 년 동안 자란 300여 그루의 버드나무가 주민 의견 수렴 없이 잘려나가 생태계 파괴와 조류 개체 수 감소, 수질 악화 등의 문제로 논란이 되었다.
전주천 버드나무 군락은 천연기념물인 수달 등의 포유류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조류에게는 둥지를 틀 공간을 제공하였으며, 곤충류와 양서류에게는 산란 및 서식지 역할을 했다. 기후 위기 시대에 꼭 필요한 생물 서식처를 무분별하게 훼손하는 행위는 지역 생태계의 자정능력과 회복력을 악화시켜 결국 인간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오랜 시간 동안 전주시민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했던 덕진공원의 소나무들 또한 조망권 보호와 연꽃 생육 환경 개선이라는 명목하에 오래된 수십 그루의 소나무가 제거되어 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무더운 여름날 덕진공원에서 시원한 그늘을 제공했던 소나무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운 마음이다.
또한, 지난 해에 전주시는 완산칠봉 아래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폐 군사시설인 방공호를 우주와 심해, 판타지 세계를 구현하면서 문화 재생 공간인 ‘완산벙커 더 스페이스’로 새롭게 개관했다.
오랫동안 방치된 어두운 흔적을 현대적인 콘텐츠로 재탄생시킨 시도는 완산 꽃동산의 자연미와 연계하여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완산벙커 주변을 지키던 수십 그루의 삼나무가 벙커 진입로 확보와 주변 경관정비 등을 이유로 흔적도 없이 그루터기만 남긴 채 베어 나갔다.
현재, 완산벙커 출구 주변은 거의 90도에 가깝게 깍아 내린 산에 그루터기만 자리하여 삭막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완산공원 삼나무 벌목은 전주천의 버드나무와 덕진공원의 소나무 벌목과 궤를 같이하는 반생태적 행정이며, 진정한 천만그루 정원도시를 외치는 전주시의 두 얼굴을 가진 부정적인 행정이라 할 수 있다.
전주시는 수년 전부터 전주시에 초록의 숨결을 불어넣고, 시민 모두가 정원사가 되어 아름다운 생태 도시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도심 곳곳에 정원을 조성하고, 정원 산업 박람회를 개최하는 등 '천만 그루 정원도시'를 홍보해 왔다.
개인이 40년 이상 묵묵히 꽃동산을 일군 사례와 수십 년간 자리를 지키던 거목을 잘라내 버린 전주시 행정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새로 심은 묘목이 전주천의 버드나무만큼, 덕진공원의 소나무만큼, 완산공원의 삼나무만큼 풍성한 모습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수십 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사철가’에서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만 세상사 적막하네"라는 노랫말에서 나무가 베어진 전주 곳곳의 모습이 연상된다.
진정한 정원도시는 새로 심는 것보다 이미 성장한 나무를 보호, 보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전주시가 진정으로 ‘꽃의 도시, 정원 도시’를 원한다면, 전기톱을 내려 놓고 ‘기다림의 행정’을 배워야 할 때다.
/미래경영연구소 대표 정진생
💬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