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개심사의 청벚꽃과 망해사 겹벚꽂

충남 서산 개심사로 발길을 돌리면 천년의 침묵을 깨우는 연둣빛 설레임으로 넘쳐난다. 서산시 운산면의 울창한 숲길을 따라 오르면 ‘마음을 씻는 절’ 개심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개심사(開心寺)의 연못을 건너는 외나무다리는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마음을 가다듬어 수행의 공간으로 들어간다는 '무욕(無慾)'과 '성찰'의 의미를 담고 있다. 봄꽃 여행의 성지로 불리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청벚꽃에 있다. 일반적인 벚꽃이 지고 난 뒤인 4월 20일부터 말일 사이, 명부전 앞 단 한 그루의 나무에서 연둣빛이 감도는 신비로운 꽃잎이 피어난다.

고풍스러운 김제 망해사 단청 위로 연둣빛과 분홍빛 꽃잎이 내려앉는 순간, 속세의 시름은 어느덧 사라지고 눈앞에는 신선이 사는 듯한 선경(仙境)의 기록이 펼쳐진다. 망해사는 1300년 전 절터(백제 의자왕 2년 서기 642년)에 지어진 사찰이다. 이달말부터 5월 초순경엔 절집 마당 한가운데 겹벚나무가 화려하게 핀다. 바람 때문이었다. 어느날, 화(花)들짝 꽃으로 피어나 소란스러운 봄, 그날 후미진 곳에 숨었던 마음을 툭 치는 바람이 불어왔다. 온 세상이 한꺼번에 깨어나 만나고, 속살거리고 있었다.

고산 윤선도가 노래했듯이 망해사 서쪽 바다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세상사를 모두 떨어내고 버리고 자유로워진다. 이제 호수가 되어버린 바다. 눈보다 가슴이 먼저 놀란다. 후두두 떨어지는 봄 햇살을 받으며 땅은 끝도 없이 몸을 늘이고 펼쳐져 있다. 벌판이 바다라면 벌판 바다와 해가 넘는 서쪽 바다의 경계를 이루며 서 있는 것은 야트막하게 솟아나 있는 진봉이다. 산 정상 부근 망해사 전망대(진봉망해대)는 서해와 만경강이 만나는 곳으로, 탁 트인 시야와 함께 시원한 해풍을 맞을 수 있는 명소이다. 걸어서 올라오다보면 순간 시원스레 쭉쭉 뻗어오른 소나무들이 눈에 들어오고, 소나무에서 뿜어나오는 솔향기에 정신이 곧 맑아진다.

진봉산을 오르는 길이 망해사로 이어진다. 오래된 사찰로 가는 길이건만 입구에는 소박한 푯말만 하나 서 있다. 굳이 사람을 부르고 싶지 않다는 듯 변변한 안내문 하나 없는 언덕길인데 양옆으로 수백 년 그 길을 지킨 듯한 소나무들이 늘어 서 있었다. 아름드리 우아한 소나무들이 하늘까지 큰 키로 자라있다.

바다만 그리며 파도를 듣는 집. 망해사 마당을 채우는 것은 불경 소리도 목탁 소리도 부처상이나 탑신도 아니다. 벚나무의 춘정이 가득하고 자유로운 망해사. 서해 낙조를 즐기기에 최고로 좋다는 낙서전은 아예 절집 마당을 외면하고 뚝 떨어져 있다. 바다 말고는 모두 잃게 되는 곳이라고 했던 망해사는 사람들에게 잃어버림으로써 무위의 해방과 기쁨을 찾게 해줬을 터이다.

새만금 방조 사업으로 이제 호수가 되어버린 그 바다를 이제는 마음으로만 볼 수 있다. 눈을 감으면 망망한 바다가 들려주는 거칠고 때로 잔잔한 파도 소리가 들린다. 지평선과 수평선이 만나는 유일한 곳, 외진 서쪽 바다 절벽에 기댄 절간에서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모두를 잃어버리고 바다만 들이는 시간, 내가 오롯이 나하고만 보내는 봄날이 간다. 아무도 없는 바로 그곳, 바다 보이는 망해사로 지금 떠나고 싶다./이종근(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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