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학파를 대표하는 미술사가 알로이스 리글의 '홀란트 단체 초상화(지은이 알로이스 리글, 옮긴이 정유경, 펴낸 곳 갈무리)'는 미술을 개인적 표현이나 자연의 모방으로 설명하는 대신 한 시대의 예술의욕이 시각적 형식으로 조직되는 방식을 탐구한 고전이다. 리글은 장식문양과 공예 같은 ‘순수미술’이 아닌 분야에 대한 연구를 통해 예술을 집합적 역사 경험의 산물로 이해했고, 이 책은 그러한 문제의식이 가장 구체적으로 실현된 후기 저작이다.
리글은 이 책에서 17세기 홀란트 단체초상화에 대한 연구로 ‘예술의욕’ (Kunstwollen)이라는 개념을 입증한다. 17세기 홀란트 사회에서는 자경단을 포함한 길드 같은 단체들이 활발하게 결성되었고 그 구성원들을 한 화면에 담은 단체초상화가 다수 제작되었다. 리글에 따르면 17세기 홀란트의 단체초상화는 개인의 위신이나 영웅적 서사를 강조하지 않고 병렬적 구성과 공공적 정체성을 시각화함으로써 시민 사회의 미감과 세계관을 형식화했다. 리글은 이 장르야말로 17세기 홀란트의 예술의욕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영역이라고 보았다. 또 『홀란트 단체초상화』는 관람자를 미술사 분석의 핵심 요소로 진지하게 고려한 선구적 작업이기도 하다. 리글이 제시한 ‘주의’(Aufmerksamkeit) 개념은 그림 속 인물들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그림 밖의 관람자와 맺는 시선의 관계를 분석 대상으로 끌어들인다.
리글의 관점은 이후 발터 벤야민의 미학과 역사철학, 나아가 안또니오 네그리의 미학, 정치철학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이 책은 미술사 연구를 넘어, 예술과 사회 및 집단적 삶의 형식이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사유하게 만드는 이론적 고전으로 다시 읽히고 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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