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물관은 단순한 유물 전시장이 아니라, 과거의 문화를 현재에 되살려 삶을 풍요롭고 입체적으로 만드는 공간이다. 필자는 ‘우리에게 박물관은 필요한가’와 ‘공동체와 박물관의 미래’라는 지난 두 차례의 칼럼을 통해 박물관의 제도적 정체성과 사회적 책임, 그리고 지역 주민과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를 재조명한 바 있다. 박물관은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형성하는 거점이며, 이를 위해서는 전문성을 갖춘 인적 인프라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특히 문화 향유권 확대와 교육 기능 수행을 위한 인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북 공립박물관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매우 심각하다. 시설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나, 이를 전문적으로 운영할 학예연구사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는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닌 박물관 기능의 본질적 왜곡으로 이어진다. 박물관은 수집·보존·연구·전시·교육이라는 기능을 수행해야 하나, 1인의 학예직원이 이 모든 것을 감당하는 구조에서는 각 기능의 완성도가 현저히 낮아질 수밖에 없다. 전시실은 있으나 기획전이 없고, 공간은 있으나 체험이 사라진다. 결국 관람객에게도, 지역주민에게도 박물관은 매력 없는 공간이 되고 마는 것이다.
2023년 기준 전북도에는 43개의 박물관이 있으며, 그중 공립박물관은 25개관이다. 그러나 박물관 수 자체도 전국적으로 하위권이며, 특히 인구 백만 명당 박물관 수, 기초지자체당 박물관 수, 그리고 1관당 학예직원 수와 학예직원 비율 등에서 모두 전국 평균을 밑도는 수치를 보인다. 전북 공립박물관의 학예직원 수는 평균 1.8명, 비율은 21.7%에 그쳐 전국 평균 32.0%에 비해 크게 낮다. 심지어 6개관은 학예직원이 전혀 없고, 일부는 교육프로그램과 전시가 동시에 부재한 상황이다. 이는 박물관의 외형만 존재할 뿐 실질적인 작동은 멈춰버렸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문제는 이것이 단지 전북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전국 다수의 중소도시 공립박물관이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특히 전북은 시설 확충과 전문인력 확보 간의 불균형이 가장 심한 지역 중 하나다. 국제기준에 따르면 전시공간 350~500㎡당 1명의 학예직원 배치가 권장된다. 전북 공립박물관의 총 전시면적은 약 30,387㎡에 달하며, 이에 따르면 최소 61명에서 최대 87명의 학예직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 인력은 46명에 불과하여, 기준 대비 최소 15명에서 최대 41명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는 박물관의 전문성과 자율성, 지속가능성 모두를 위협하는 수준이며, 지역의 문화 향유권 보장이라는 공공 정책의 본질을 위배하는 결과다. 특히 학예인력이 부족하면 기획전시 준비나 학술연구는 물론, 지역의 역사와 삶을 반영한 교육 콘텐츠 개발조차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 명의 학예연구사에게 과중한 역할이 집중되면 창의성과 실천력 모두가 저하되며, 이는 박물관의 장기적 신뢰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특히 박물관 교육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지역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전시와 교육 콘텐츠는 주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외부 방문객에게는 지역의 깊이와 가치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교육전담 학예연구사는 거의 전무하며, 그 결과 박물관 교육은 일회성 체험이나 단편적 전시에 그치기 쉽다. 이는 결국 박물관이 수행해야 할 사회적 책임의 부재로 이어지며, 주민의 박물관 체감도 역시 낮아진다. 교육이 없는 박물관, 전문성이 약한 박물관은 더 이상 지역사회로부터 지지받을 수 없다.
따라서 전북 공립박물관의 발전과 지역문화 진흥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학예연구사 확충’이다. 필자는 박물관당 최소 2명 이상의 학예전문 직원이 배치되어야 하며, 이상적으로는 3명 이상 확보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문화는 선언이 아니라 실행이다. 말로만 문화를 외치고, 실제론 박물관에 전문 인력을 배치하지 않는 기초자치단체의 문화정책은 공허하다. 박물관은 콘텐츠와 사람이 있는 곳에서 진정한 문화 플랫폼이 될 수 있다. 활력 있는 박물관, 관람객이 다시 찾는 박물관, 배움과 감동이 살아 숨 쉬는 박물관은 오로지 전문 인력을 통해 실현된다./노기환(온문화유산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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