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수필]영화 같은 삶

박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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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라는 단어는 귀엽게 생겼지만, 마리나 해구만 한 심연이다. “어떤 영화가 재밌다”라고 말할 땐 그 안엔 여러 감흥이 있다. 최근의 난 제대로 슬픔에 집중하게 해주는 영화에 대해 자주 ‘재밌다’라고 한다. 언제부터 예술의 도움 없이 후련히 울지도 못하는 바보가 되었나?

'끝과 시작'이란 영화가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비가 발목까지 적시는 날 혼자 보았다. 극장밖엔 폭우가 퍼부어대는데 극장 안은 괴괴할 정도로 고요했다. 어둠 속에 푹 잠겨 있는 사람들. 영화란 어떤 장르이든 관객의 호불호가 크게 나뉘기 마련이지만, 사람들은 가끔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는 이런 부류의 영화가 보고 싶어질 때가 있는가 보다.

영화는 소설보다 시에 가까웠다. 내용이 기승전결에 따라 흐른다기보다는 시를 읽는 사람마다 제 각자 다른 감정을 갖는 것처럼. 이 영화도 그렇게 열린 채로 내게 다가왔다. 무엇이 옳고 그르고의 문제도 아니었으며, 영화가 꼭 친절해야 하는 것도 아님을 말하기도 했다. 어쩌면 다소 불친절하게도 느껴졌지만, 그 불친절함이 절대 무례하지 않았다. 시가 꼭 메시지를 주려거나 교훈을 담고자 하지 않듯 이 영화도 어떤 의미를 전하기보다는 그저 느낌을 선사하고 있었다. 그래선지 영화가 끝나도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영화 OST를 멍하니 앉아서 들어야만 했다.

영화를 보면서 일희일비하며 몰입하는 것은 영화 속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엔딩 크레딧이 오르면 자리를 떠나는 관객마다 영화에 대한 느낌이나 여운이 다르다. 사물이나 현상은 보는 이의 가치관과 철학에 따라 형상과 느낌의 진폭에 차이가 있듯,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예술이든 일상이든 예외가 없다. 초현실주의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림에 대한 지식과 감각이 필요하다. 형상화된 이미지 속에서 작가의 생각을 읽어내는 감각이 훈련되지 않는다면 피카소의 그림이라도 하나의 전단에 불과한 것이다. 인생도 그와 같지 않을까.

우리는 종종 영화 속 주인공의 삶을 꿈꾸곤 한다. 그들의 삶은 아름답고 즉흥적이며 반전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엑스트라거나 조연처럼 산다. 남이 원하는 길을 걷고, 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대사를 잊는다. 영화는 주인공이 중심이다. 그가 결정하고, 그가 책임지며 그가 변화한다. 그러니 내 삶의 각본도 내가 직접 짜야 한다. 어떤 장르가 될지, 어떤 결말을 향할지는 나에게 달려 있다. 누군가가 내 삶을 평가하고 박수쳐주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연출하고 맛과 멋을 부여해야 한다. 갈등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칠 때 비로소 인생은 명장면이 된다.

물론 현실은 영화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완벽하거나 화려하지도 않다. 대사는 더듬거리고 조명은 어둡고 편집도 엉성할 때가 많다. 하지만 어쩌란 말이냐, 인생에 그 불완전함마저 없으면 앙꼬 없는 찐빵처럼 허전한 것을…. 자, 이제 조명은 켜졌고, 관객이 없다고 해도 상관없다. 나는 내 인생의 주연이니까. 컷 소리가 들릴 때까지 나는 내 이야기를 멋지게 완성할 것이다.



박경숙 수필가는



전주 출생. 2016년'계간수필'에서 수필 추천 완료

전북문인협회, 전북수필문학회, 행촌수필문학회 회원

수필집 '미용실에 가는 여자' 발간

2021년 전북수필문학상 수상 2022년 산호문학상 수상

전북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역임, 현재 전북문인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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