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아침]한국 판소리의 뿌리는 중국의 고사계강창(鼓詞系講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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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는 18세기 영조 정조 시대에 출현한다. 이 시기에 강창사(講唱師)라는 신종 직업이 있었다. 강창사는 어떤 이야기(詞)를 노래(唱) 방식을 빌어 설창(說唱)하는 소리꾼을 말한다. 설창은 판소리가 이야기를 노래로 구연(口演)한다는 공연방식이다. 조선후기 영정조대에 민중예술이 꽃피우면서 사대부들의 양반문학이 퇴조하고 서민문학이 발달하였다. 한문소설보다 한글소설이 성행하였고 서민가사, 민화, 풍속화 등 민간예술이 유행하였다. 또한 소설도 실존인물보다는 실존하지 않는 의인화된 허구의 소설들이 유행하였다. 수십수백편의 한글소설가운데 춘향전, 흥보전, 심청전, 별주부전 등이 신재효(1812&;1884)에 의해서 판소리계 소설로 재편집되었을 뿐 나머지는 사장(死藏)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한글소설이 판소리로 불려져진데에 강창사들의 역할이 컸다. 판소리계 소설은 한글로 쓰여졌지만, 소설 내용을 들여다보면 중국 한시 및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지명 등과 고사성어, 한자투성이 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적벽가(赤壁歌)는 중국 삼국지연의 적벽대전이 소재다. 양반이 몰락하고 서민이 신분상승하는 전환기에 서민들의 신분세탁으로 유사양반(類似兩班:매관매직으로 양반 행세하는 하는 자)층이 형성되어 문학적 수요를 충족시켜줄 강창사들이 필요하였다.

왜 18세기에 갑자기 강창사들이 등장하고 판소리가 불려졌던 것일까. 판소리의 자생론보다 전파론에 더 힘을 주고 싶다. 왜냐하면 18세기 조선에서 강창문화에 대한 사회적 문학적 배경이 없었기 때문이다. 명청시대 중국 문물교류를 살펴보면, 청의 고사계강창 전파에 눈길이 간다. 고사계강창의 고사(鼓詞)는 북을 반주 악기로 하여 설창(說唱)하는 기예를 말한다. 예인이 강석한 후에 북을 두드리면서 강(講)과 창(唱)을 반복하면서 공연을 한다. 서사시가의 7언 운문고사를 북의 반주에 따라 노래로 부른다. 1753년에 유진한(1711-1791)이 판소리 춘향가를 감상한 후 가사춘향가 200여구를 7언체 한시(漢詩)를 남겼다. 이 사실에서 한국의 판소리가 중국 고사계강창 계통 임이 분명해진다.

판소리와 고사계강창의 공통점이 아홉가지다. 첫째, 북을 반주 악기로 설창하는 기예라는 점. 둘째, 강(講&;아니리)과 창(唱&;노래)이 반복된다는 점. 셋째, 뛰어난 예인의 창법을 제자들이 대를 잇다는 점. 넷째, 필사본 목판본으로 고사와 출판이 병행된 점, 다섯째, 단편과 장편으로 공연된다는 점. 여섯째, 농어촌 판에서 부르다가 상업적 도시 판으로 진출한 점. 일곱째, 골계미(滑稽美)가 있다는 점. 여덜째, 주요 예인 중심으로 유파가 형성된다는 점. 아홉째, 12종과 12마당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중국 고사계강창도 판소리였고, 한국의 판소리도 고사계 강창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국문학계에서 중국의 고사계강창과 한국의 판소리가 많이 닮았다는 유사성 연구를 해왔지만, 한국 판소리의 근원이 중국 고사계강창이라는 해석은 문학성에 묻혀바렸다. 그렇다면 왜 18세기에 갑자기 조선에 등장하였는지 그 배경과 해석에 대한 역사학적 규명이 필요하다. 역사학계에서도 판소리와 강창문화의 실상과 배경 연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중국에서 고사계 강창은 북방에서 북과 판으로 연주하는 이야기 문학의 한 형태입니다. 강창하는 방식은 강창사가 악기의 반주 없이 직접 북과 판을 직접 두드리며 이야기와 노래를 섞어서 하는 방식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의 판소리와 중국의 고사계강창은 민간예술이다. 중국학자들은 명말청초(明末淸初)에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의 북방유이민들이 남쪽으로 내려오자 명의 주민들이 양자강 유역의 진강(鎭江), 양주(揚州) 지역으로 이주 남하하였고 이 중국인가운데 만여명의 사람들이 배를 타고 한반도 서남해안으로 피난하여 유입하였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명나라 사람들은 항주만에서 보트피플로 떼지어 사단항로를 타고 호남연안으로 들어와 정착하였다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호남연안과 중국 항주,소주가 가히 비교할만 하다했으며, 형재시집(亨齋詩集)에 “소주 항주에서 건너온 수많은 배들이 와서 정박했다네(來泊蘇杭萬里舡)”라는 한시의 구절에서 중국 고사계강창의 호남유입론을 뒷받침한다. 명나라에서 고사계강창을 연행하였던 사람들이 호남연안지역에서 명청대 고사계강창을 전라도 사투리로 부르면서 조선식 판소리가 태동한 것이다. 18세기 이전에는 판소리문화가 존재하지 않았는데 명청대 강창문화 전래로 조선후기에 강창사가 등장한 것이다. 왜 판소리가 전라도에서 발달 성행하였고, 왜 18세기경에 민간예술로 발달하였는지 판소리에 그 정답이 있다. 한국의 판소리는 청의 고사계강창을 모방한 것이지 독창적인 한국의 정통소리는 아니다.

/송화섭(전 중앙대 교수·사단법인 호남문화콘텐츠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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