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사람들의 일상사(지은이 권내현 외 8인, 펴낸 곳 푸른역사)'는‘승자의 기록’ 대신 서민이나 민중의 이야기를 담은 역사 책이다. 18세기 영월 신씨가의 여성이 도망 노비 추쇄를 위해 소송을 벌인 사건, 1970년대 임실의 한 마을에 만연했던 폭력 실태 등 ‘일상사’를 다룬 글들이다.
책에 실린 9편의 글은 2019년 9월부터 2024년 7월까지 고려대와 독일 튀빙겐대학교, 영국의 에딘버러대학교에서 열렸던 다섯 차례의 일상사 워크숍에서 발표된 논문을 골라 엮은 것이다.
학문사적 의미를 떠나 책에 실린 글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18세기 영월 신씨가 여성의 청원과 소송을 분석한 김경숙은 남편이 부재한 상황에서 도망 노비 추쇄를 위해 소송은 물론 국왕에게 상언ㆍ격쟁도 불사하는 적극적 법 활동을 보여준다.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삶은 한 방편으로 이뤄진 불온인물에 대한 투서라는 ‘동조’(정병욱), 1950~60년대 ‘풍기문란’의 내용과 이에 대한 여학생들의 저항(소현숙), 1970년대 임실의 한 마을에 만연했던 폭력의 실태(안승택) 등 ‘역사책’에서는 만날 수 없는 흥미로운 ‘역사’를 마주할 수 있다.
''임실 창평일기'는 매우 흥미로운 자료이다...한 마을에서 빈발하던 폭력 사건의 양상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일기에서 직접 완력을 써서 상대에게 상해를 입힌 경우만 세더라도 한 해에 적게는 3건(1973년)부터 많게는 13건(1971년)에 이른다. 여기에 멱살잡이처럼 물리적 상해 직전까지 간 경우, 피아간의 가해 상황이 분명하지 않지만 완력이 행사되었을 개연성이 큰 경우…성폭력이나 응징폭력의 경우 등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224쪽)' 왜 이같은 일이 일어났나 자못 궁금해진다.
이밖에 정치종교로서의 새마을 운동(이상록), 부산 형제복지원의 불운한 아이들(주윤정), 교토 민족학교 건립을 둘러싼 갈등(이타가키 류타) 등도 놓치기 아까운 글들이다.
이보다 앞서 일상사 연구의 개척자인 독일 알프 뤼트케 교수의 '일상사란 무엇인가'(2002)가 번역, 출간되었고, 젊은 국내 학자들이 중심이 된 '일상사로 보는 한국 근현대사'(2006)가 출간, 한국에서의 일상사 연구를 위한 물꼬를 튼 바 있다. 이 책은 그간의 연구 공백을 메우며 현재 국내 일상사 연구의 성과를 부분적으로나마 한자리에서 엿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귀한 의미가 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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