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트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들어서자 거실은 헤아릴 수 없는 각종 쇠붙이로 가득 차 있었다. 거실과 베란다 구석구석에 쌓아놓은 각종 쇠붙이들. 신기한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건 온통 녹슨 쇠붙이뿐이다. 선사시대의 유물을 본 듯하기도 하고, 아파트는 그야말로 작은 ‘역사박물관’처럼 보였다. 이는 모두 군산 윤여익(57ㆍ군산어업정보통신국장)씨가 7살 때부터 50년 동안 모아온 공구(연장)들이다. 그 수량만 300여 종류, 7만 여점에 달한다.
가위류ㆍ계측기류ㆍ갈쿠리류ㆍ끌류ㆍ기어풀러류ㆍ나사볼트내기ㆍ다리미류ㆍ대패류ㆍ도끼자귀류ㆍ망치류ㆍ저울추류ㆍ인두류ㆍ옛날 가위류ㆍ농기기류ㆍ각종 베틀기구ㆍ톱류ㆍ등잔과 호롱ㆍ자물쇠류ㆍ시계류ㆍ베틀 바디ㆍ고려 때 만든 동종(銅鐘)ㆍ빗살무늬 자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조명기구류ㆍ안경류ㆍ옛날 옷ㆍ관모ㆍ신발류ㆍ퉁소류가 있다. 여기에 유리제품과 도자기류도 있고, 심지어 각종 단추류까지 우리 농경문화를 이루어 온 공구며 도구, 생활용품이 총 망라돼 있다.
윤씨가 소유하고 있는 공구는 아파트 거실에 진열된 것만이 아니다. 자신의 고향인 충남 장항에도 있다. 대형 컨테이너박스 3개에 수만 개의 공구가 가득 차있다. 참 별난 취미를 가진 별난 사람이다. 그 많은 취미 중 하필 쇠붙이를 모으는 취미를 가졌을까.
“우리 농경문화를 이뤄온 원동력이 바로 공구(연장)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삶과 문화를 이어온 공구는 우리 근현대사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도구였죠. 그러므로 평소 ‘공구 박물관’을 짓는 게 꿈이었는데 이제 그 꿈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윤씨가 공구에 미친것은 7살 때부터다.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일본 학교에 다녔다. 아버지가 일본에서 귀국 후 군산의 배 엔진 공장에서 기술자로 일하다가 후에 철물점을 했다. 소년 윤씨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철물점을 자주 들락거렸다. 그때 철물을 보아온 것을 계기로 오늘날 괴상한 취미인 공구 수집가가 됐다. 윤씨는 학교수업이 끝나면 공부는 뒷전이고 빨리 집에 가서 공구를 가지고 놀려는 마음이 요동쳤던 것.
“공구를 수집하다 보면 꿈에서도 선조가 나타나서 도와준다고 해요. 연장을 관리하기 위해 닦다 보면 꿈속에서 할아버지가 자주 나타납니다.”얼마나 공구에 미쳤으면 꿈까지 꿀까.
윤씨가 공구를 구입한 곳은 주로 고물상이다. 틈만 나면 군산 시대 고물상에 찾아가 공구라고 생긴 것은 모조리 다 구입한다. 또 길거리에 내다 버린 쇠붙이도 모조리 주워온다.
“생활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데 이걸 왜 하느냐.”고 반문하는 아내와의 다툼도 잦았다. 한번은 공구 때문에 아내와 싸우고 가출한 적도 있었다. 그때 윤씨는 아내에게 “먹을 것 생활비는 다 대줄테니 공구 수집하는 일에는 반대하지 말라.”고 타이른 적이 있었다고 했다.
윤씨의 눈에는 연장 하나 하나가 아름다운 기가 담겨 있다. 모든 공구가 역사의 혼이다. 그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공구가 시골 창고에 보관돼 있는 게 아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학생들이 빨리 보아야 하고, 보면 교육적 가치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윤씨 부모님은 윤씨가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는 것을 원했다. 그런데 공무원은 되지 못했다. 윤씨는 현재 수협중앙회 소속 군산어업정보통신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준 공무원인 셈이다. 그가 비록 국가 공무원은 못되었지만 직장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
윤씨의 할머니는 월남 이상재 선생의 집안이다. 외할아버지는 유명한 대목이었다. 이런 영향 탓인지 오늘날 윤씨가 공구수집광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공구를 수집하지 않았으면 옛날에 썼던 공구는 다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 윤씨. 공구는 돈만가지고, 노력만 한다고 모을 수 있는 게 아니고 오직 정성과 관심으로 모을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윤씨는 공구만 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이다. 연장이 사라질까봐 마음을 졸이는 사람이다. 길을 걸으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그의 머릿속은 온통 공구 생각뿐이다.
기자는 그에게 공구 수집 이유를 물었다. 그는 “연장이면 무조건 좋다.”고 했다. 뭐가 그리 좋으냐고 하자 “뭘 만드는 걸 좋아했고, 그래서 수집했다.”고 했다. “집 짓는 것, 문짝 다는 것, 연장으로 뭘 만드는 것이라면 뭐든지 다 배웠다.”고 했다.
“연장은 대를 위해서 썼기 때문에 손때가 묻어서 좋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혼과 숨결이 묻어 있어 더욱 애착이 갑니다. 이게 바로 우리 삶의 아름다움이 아닙니까.”
윤씨는 근대사에서 우리가 썼던 연장은 거의 사라질 위기에 쳐했다고 몹시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한때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공구를 일본에서 전시하려고도 마음먹었었다. 그 이유로 일본인은 공구에 관심이 많다는 것. 일본은 한국을 얕잡아 봤고 한국이 세계적으로 ‘이런 연장을 썼구나.’ 하는 걸 보면 놀랄 것이라고 했다.
윤씨의 아내 정낙순(52)씨는 “처음 남편이 공구 수집하는 일이 못마땅해 많이 싸우기도 했는데 지금은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 말릴 수가 없다. 이젠 남편의 공구 수집을 동조하면서 살아야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윤씨의 딸, 인선(25ㆍ유치원 교사)씨도 “아빠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또 아빠 취미이기 때문에 취미를 존중한다.”며 아버지의 공구 사랑을 옹호했다.

윤씨의 꿈은 딱 한 가지. 다름 아닌 ‘공구 박물관’을 짓는 것. 그런데 ‘공구 박물관’을 지으려면 많은 돈이 들어간다. 그래서 군산시 예산을 지원받는 길을 찾기 위해 시청 공무원에게 알아봤고, 당시 관계 공무원이 몇 번 아파트로 찾아와 사진도 찍어가고 했지만 지금껏 묵묵부답이다.
이에 군산시 문화체육과 김인생 과장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윤씨가 소유하고 있는 공구는 개인 유물이고, 개인박물관 건립에 군산시 예산을 투입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답했다.
그러나 윤씨는 올 겨울 퇴직을 앞두고 내년 초 자신의 땅에 ‘공구박물관’을 건립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사비를 들여서라도 ‘공구박물관’을 짓는 게 그의 소원이다. 박물관 규모는 약 300평정도. 이를 위해 그는 벌써 자신의 땅 1천 평을 이미 매립신청 해놓은 상태다.
사람의 취미를 조사해보면 두 가지로 나뉜 것 같다. 하나는 무엇인가를 즐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엇인가를 모으는 것이다. 스포츠, 음악 감상, 영화보기, 등산, 낚시, 독서, 드라이브, 요리… 등등 이러한 것이 전자라면 공구 수집가 윤여익씨는 후자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평생소원인 ‘공구박물관’ 건립을 기대해 본다.
/신영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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