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희(白尙熙)의 효행 때문에 수원 백씨들 화마 피했다

전주에 세효각(世孝閣), 수원백씨 사당으로 효자 14명과 열녀 3명 나와 '세효각기', 백시만의 아들 백상희와 장손 백사성의 효행에 초점을 맞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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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 자리한 세효각(世孝閣)은 수원백씨 사당으로, 효자 14명과 열녀 3명이 나왔다.

학인당에 살고 있는 수원백씨 은진공파 전주문중은 백시중이 터를 잡은 이후 3대에 걸쳐 효자 정려각이 세워질 정도로 효자의 명가이다.

완산구 전주객사4길 43-24(고사동)의 효자문식당으로 발길을 옮겨본다. 40여면 동안 한결같이 100% 국내산 한우만을 사용하고 있는 이 식당의 갈비탕 한 그릇에 꽁꽁 언 몸을 녹인다. 보통 갈비탕은 맑고 뽀얀 국물인 반면 이곳의 갈비탕은 국물이 진한 갈색이면서도 걸쭉하다. 얇게 썬 편육이 들어있는 일반 갈비탕과는 달리 통갈비뼈가 그대로 들어가 있다.

특제 양념으로 2~3일 정도 숙성시킨 통갈비를 넣고 끓여내기에 고기 또한 심심하지 않고 양념이 잘 배어 있는 이 집은 갈비탕 외에도 불갈비, 갈비찜 등을 맛볼 수 있는 바 그 맛이 참으로 좋다.

바로 앞 전주의 명물 ‘수원백씨 효자문(일명 수원백씨 효자비)’는 이들의 선조안 백규방, 백진석 부자와 백행량, 백응만 부자의 3대 효심을 그리고 있다. 백규방은 아버지가 병으로 신음하자 극진한 병간호로 천수를 누리게 해 ‘가선대부 호조참판’을, 그의 아들 백진석은 부친이 중병으로 신음하자 한겨울에 얼음을 깨어 잉어를 잡아다 복용케 함은 물론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한 까닭에 ‘가의대부 중추부사 내부협판’을 각각 제수받은 효자이다.

효자 백행량, 백응만 부자 역시 효심이 지극해 부모가 돌아가시자 시묘살이를 하는 등 충,효,열의 근본을 세운 인물들이다.

‘증보산림경제’의 9권 ‘치선(治善)’편에서는 ‘전주즙장’이 별도로 언급된다. 서유규의 ‘임원십육지’에서도 전주즙장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20세기 초 전통 장류 문화의 맥을 계승하고 있는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별미장'으로 소개된다. 즙장은 말똥 속에 묻는다고 하여 '말똥즙장'이라고도 하며 전주 백씨가문에서 대대로 전승시키고 있다 하여 백씨장(白氏醬)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사라져 아쉽다.

한국의 백씨는 대부분 수원백씨(水原白氏)를 본관으로 하며, 이외에 남포, 대흥, 부여 등 30여 개의 본관이 전해지고 있지만, 1997년 대다수 백씨 문중이 수원 백씨로 본관을 단일화하기로 합의했다.

수원백씨의 시조는 신라 때 당나라에서 귀화한 백우경(호는 송계)이다. 시조 이후 계대가 실전돼 신라 말 고려 초 인물이며 상장군에 증직된 백창직을 중시조로 해서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백씨의 본관 유래를 보면 수원 백씨의 중시조인 창직(경명왕 때 중랑장 역임)의 증손 휘가 대사마대장군으로 수원군에 봉해짐으로서 본관을 수원으로 했다는 설과 창목의 9세손 천장이 원나라에서 이부상서, 우승상으로 수성백에 봉해지고 고려에 와서 수원백에 봉해져 수원을 본관으로 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세효작, 백씨 이야기'는 전주출신 역사학자 백승종이 자신의 집안인 수원백씨 가문의 역사를 되살려낸 기록이다. 이들은 400여년 동안 줄곧 전주에서 살았다. &;세효각(世孝閣)은 전주에 자리한 수원백씨 사당으로, 효자 14명과 열녀 3명을 모신 곳이다.

백상희(白尙熙), 백사성(白師成), 백사문(白師文), 백동량(白東良), 백동한(白東翰), 백동권(白東權), 백유진(白有鎭), 백경진(白慶鎭), 김해김씨(경진의 배필), 백규진(白圭鎭), 백정수(白正洙), 백흥수(白興洙), 경주김씨(흥수의 배필), 백봉수(白鳳洙), 열녀 신씨(남룡의 모친), 백남룡(白南龍), 백남준(白南埈)이다.

'세효각(世孝閣)'이라는 용어는 사전에 없다. 그러나 글자를 한 자씩 풀이하면 그 뜻이 금세 드러난다. 대대로(世)로 효자(孝)가 나온 집(閣)안이라는 의미다. 선조중에는 효자가 여럿이었으며 헌종은 '세효려(世孝閭)'라고 하는 글씨를 어필(御筆)로 적은 현판을 하사했다고 한다.

'세효각'의 역사는 임진왜란 때 전주로 피난한 영곡(靈谷) 백구민(白龜民)이란 선비에서 비롯된다. 그가 입향조인 셈이다. 부인은 덕수장씨이며, 영곡선생이 현재의 화심문중이라고 한다.

그의 4대 종손인 중암(重庵) 백상희(白尙熙)로부터 효행의 역사가 대대로 이어졌다. 글쓴이는 중암의 8대손이자 영곡의 12대손이다.

1767년 정해년 전주성 안에 큰 화재가 나 2,300여 호가 소실됐다. 이 때 중암 일가는 온전했다.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중암의 효행 때문이라고 했다. 그 화재사건을 진상 조사차 한양에서 내려온 암행어사는 중암에 관한 일을 보고, 조정에서는 큰 상을 내렸다.

'세효각기'는 전주에 살았던 근암 백시만의 자손을 일컫는다. 이는 석하 이형만이 저술한 글로, 백시만의 아들 중암 백상희와 장손인 고암 백사성의 효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는 이 사당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백씨 집안의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멀리 통일신라 말기부터 조선을 거쳐 현대까지 이어진 한국 사회의 생활상과 문화를 생생히 그려낸다. &;이 책은 단순한 족보나 제례를 중심으로 한 가문의 역사가 아니라, 일상의 언어로 풀어낸 생활사다.

&;조선 시대 교양 있는 선비의 학문 전통과 효행, 여성들의 독서와 필사 풍경,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선조들이 선택한 생존전략, 이데올로기의 충돌로 인한 시련까지 세세한 이야기가 교차한다.

&;저자는 문중이 보관하고 있는 편지와 문집, 일기, 고문서는 물론 국가가 발행한 공식문서를 세밀히 읽고, 한 집안의 기억을 시대의 역사로 확장한다. &;책 말미에는 40여 년 이상 역사 연구자로 살아온 저자 자신의 학문적 여정이 담겨 있다.

&;사라져가는 향촌의 역사를 되살리고, 평범한 선비들의 정신을 복원하려는 저자의 시선은 오늘의 독자에게 묻는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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