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학호남진흥원이 ‘남전공 양세실기(藍田公 兩世實紀)’와 ‘충효사 구현실기(忠孝祠 九賢實實紀)’를 한글로 번역했다.
‘남전공 양세실기’와 ‘충효사 구현실기’는 조선 후기 구례 향촌사회 지도층의 국가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성을 실천한 아홉 사람의 행적이 담긴 귀중한 자료이다.
이 자료집은 이들을 선양하기 위한 지방 관서와 문중의 노력, 그리고 국가의 충효와 관련된 정책의 추진과정을 밝히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터이다.
전남 구례는 작은 고을이지만 유서깊은 문중이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구례의 개성왕씨(開城王氏)는 5백년 역사를 자랑한다.
고려의 왕족이었으므로, 조선 건국 전후의 핍박으로 말미암아 변성(姓)이 많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럼에도 구례의 개성왕씨는 성(姓)과 본관을 500년 이상 굳건히 유지해 왔다.
이들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조선을 지키기 위해 의병을 일으켰다. 왕득인(王得人)이 먼저 창의해 석주관(石柱關)에서 싸우다 순국했다.
그러자 그 아들 왕의성(王義成)이 복수장(復&;將)을 표방하며 이 의병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왕의성은 정묘호란 때에도 모의도유사(募義都有司)로서 의병과 군량을 모아 의진에 보냈다.
아버지와 아들이 왜란과 호란에 의병으로 나아간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래서 구례 사람들은 두 사람의 창의사적을 갖추어 그 위업을 포충(褒忠)해 달라는 상서와 통문 등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작성된 각종 공사(公私)의 문서들을 모아놓은 책이 ‘남전공 양세실기(藍田公 兩世實紀)’이다.
이 자료는 왕득인의 9세손 왕사국(王師國)이 선조들의 사적을 널리 선양하기 위해 편찬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이 책에는 구례 석주관 7의사(義士)인 이정익(李廷翼) 한호성(韓好誠) 양응록(梁應祿) 고정철(貞貞喆) 오종(吳琮)의 사적(事績)도 함께 기록되어 있어 그들의 행적과 활동의 파악에 큰 도움을 준다.
‘충효사 구현실기(忠孝祠 賢實實紀)’는 왕사형(王師亨)이 1857년에 편찬한 문헌이다.
정유재란이 발발한 1597년에 의병을 일으켜 석주관에서 싸운 의사와 당시 구례현감으로 활동하다가 남원성에서 전사한 현감 이원춘(李元春)의 사적이 수록되어 있다.
이들에 대한 포상을 요청하는 각종 자료와 왕지익(王之翼)의 지극한 효성에 대한 정려(旌閭)를 내려달라는 상서와 관문, 제문과 축문 등도 모아놓았다.

“산서 조경남의 ‘난중잡록’[한양 사람이다. 진사이고,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임진년(1592, 선조25)에 의병을 일으켰다.】
-趙山西慶男《亂中雜錄》【漢陽人,進士,贈兵曹參判,壬辰倡義】
임진년(1592, 선조25) 11월에 구례(求禮)의 석주(石柱)와 운봉(雲峯)의 팔량(八良) 등에 새로 성을 쌓았다. 두 곳은 호남(湖南)의 군사 요충지로 옛날에 성터가 있었다. 이때 본도(本道)의 방어사(防禦使)인 곽영(郭&;)이 9월부터 항상 남원(南原)에 주둔하면서 조방장(助防將)과 별장 등을 영남 경계에 나누어 보내 성을 쌓아 지키도록 했다. 석주성은 별장과 구례현감(求禮縣監) 이원춘(李元春)이 지켰고, 팔량성은 이조방장 이복남(李福男)과 운봉현감(雲峯縣監) 남간(南侃)이 지켰다.(충효사 구현실기 권1)’
이 책은 봉성지(鳳城志)의 기록도 남겼다.
이원춘이 남원성에서 함락되자 죽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남원성이 함락되었을 당시 사적의 대략’과 ‘양제호(경우) ‘유두류산쌍계청학동기략’도 눈길을 끌고 있다.
‘양제호(경우) ‘유두류산쌍계청학동기략’엔 ‘남원 사람이다. 문과에 합격했고, 이조참의에 추증됐다. 창장공 양대박의 아들이다. 바야흐로 내가 두치(豆峙) 나루를 건너 악양현(岳陽縣)과 화개현(花開縣)을 지나 쌍계사(雙溪寺)의 석문으로 길을 돌려 연곡(燕谷)에 이르렀다. 그곳에 사는 승려가 손으로 가리키며 말하기를, “저 석주(石柱)는 바로 의병이 크게 패배했던 곳으로, 피가 흘러 물과 돌을 적셨으므로 이름을 혈천(血川)이라 합니다”했다. 살펴보건데 양충장공실기(梁忠壯公實紀)에는 제호집(霽湖集)이 함께 붙어 있다’
홍영기 한국학호남진흥원장은 “구례 개성왕씨 종가에 오랫동안 비장되어 온 자료를 선뜻 기탁해준 개성왕씨 종손이자 구례향교 전교인 왕의정 님께 진심으로 고맙다다”면서 “난해한 한문 자료를 번역한 변원균 오보라 선생과 해제를 작성, 이 자료의 가치와 의의를 빛나게 해주신 김기림 교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또. 자료집의 간행에 수고한 권수용 수석 연구위원과 출판 관계자 여러분께도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고 했다.
이 책은 전라남도의 지원을 받아 ‘호남한국학 의병자료총서 1’로 펴냈다. 제작 기획은 남도의병역사박물관 개관준비단, 지은이는 왕사형, 번역은 오보라. 변원균, 교정은 최이호가 맡았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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