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뜻밖의 일이었다. 어릴 적 같은 마을에 살았던 그녀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반가웠다. 사실은 그 시절 내가 몹시 흠모하던 여자였다. 아가씨 때 그녀는 ‘별’이었다. 너무 예쁘고 지향점이 높아 나 같은 사람은 가까이 갈 수도 없었다. 그날은 선약이 있어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며칠 후 노인복지관 헬스장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헬스복 차림이라 긴가민가했다. 먼저 나서기가 계면쩍어서 인사를 안 했다. 알은체할 기회를 놓치고 나서 혹시나 해서 회원명단을 슬쩍 보았다. 그녀가 틀림없었다. 대놓고 사람 무시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평상복과 헬스복을 구분하지 못한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녀는 여전히 고왔다. 내가 먼저 알은체를 안 했으니 다음부터 나를 만나면 외면을 할 것이 뻔했다. 그녀에 대한 내 감성은 여전히 들꽃의 향기 같은데 나의 사소한 실수로 관계의 인연은 끝나 버린 듯하여 마음이 섭섭하기 짝이 없었다.
얼마 전 물건을 사기 위해 동네 마트에 들렸다. 주인은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몇 년 만에 갔는데도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나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하루에도 수많은 손님이 오고 가는데도 어떻게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내가 기억력이 취약한 것은 단지 나이 탓일까? 살면서 항상 비슷한 실수를 반복한다. 하루는 차를 타고 지나가던 모임 회원이 나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며 차를 세웠다. 나는 그 친구의 이름이 순간적으로 생각나지 않아 말을 더듬거렸다. 그 친구의 반가운 표정에 비해 내 표정은 떨떠름할 따름이었다. 실수인지 기억력 저하인지 몰라도 그 순간은 낯이 저절로 뜨거워졌다.
왜 이럴까? 시력이 나빠서 그럴까? 시력하고 사람 이름 기억이 안 나는 것하고는 무관하다. 지금도 책을 읽는 데는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이 정도의 시력이면 괜찮을 것 같은데, 깜빡깜빡 사람을 못 알아보는 일이 반복된다.
다시 그녀를 생각했다. 젊은 시절 근동의 ‘별’이었던 그녀도 세월의 무게는 피해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 곰곰이 그녀를 생각하다가 내가 먼저 전화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좋은 데 가서 밥도 같이 먹고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차도 마셔야겠다.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다 보면 설레게 가슴이 뛸지도 모른다. 반세기 넘는 동안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었노라고 용기 있게 이야기를 할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행동이 어쩌면 나이 먹어서 사람을 몰라보는 것보다 더 큰 실수가 될 수 있겠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그녀와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진솔한 마음을 전하는 시간은 가져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 마음을 고백하는 것은 자칫 실수가 될 수 있으나 온화한 마음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서로의 인생을 격조 있게 존중하는 것은 실수가 아닐 것이다.
수필가 송일섭은
한국문인협회회원 등
전주양지복지관 문예창작 강사역임
현재 한국문인협회김제지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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