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수필]소나무가 된 친구

윤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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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봄부터 집 안의 화단을 손보기 시작했다. 경계석을 새로 쌓고 흙을 부어 올렸다. 그 자리에 소나무 몇 그루를 앉혔다. 문인목처럼 키가 크고 위엄 있는 나무도 아니고, 멋진 정원용 반송이나 귀한 적송도 아니었다. 오랜 시간 밭에서 다듬어진, 키는 겨우 초등학생 정도지만 수간 둘레가 50㎝나 되는 제법 굵은 소나무였다. 여러 갈래로 굽고 휜 줄기, 솟은 가지 하나 없이 수평을 유지하면서도 저마다의 방향으로 뻗어 나간 가지에서 손이 많이 간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소나무를 가져와 심어주기까지 한 이는 정읍에 사는 내 친구였다. 수의사로 동물병원을 운영하며 한우와 사슴도 키웠고, 한때는 싸움소를 끌고 전국을 누볐던 그는 겉으론 호탕하고 거침없지만, 내면은 섬세한 성격이다. 그런 그가 소나무에 빠지게 된 건 20여 년 전, 경상도 어느 산비탈에서 꺾였다가 다시 솟은 한 소나무를 만난 뒤였다. 비틀린 줄기 속에서도 꿋꿋한 생명력을 본 그는 그 아래 앉아서 오랫동안 나무의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진짜 아름다움은 곧고 바른 것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 자신을 지켜낸 시간, 그 버팀에서 비롯된다고.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완벽함이 아니라, 스스로 성실히 견뎌낸 삶의 자취”라고. 그는 그렇게 소나무와 사랑에 빠졌다. 이름있는 소나무들을 찾아다니며 솔방울을 주워다가 씨앗을 받고, 묘목을 키워서 밭과 화분에 옮겨 심고 또 다듬었다. 족보와 같았던 표찰마저 햇빛과 바람에 퇴색되고 찢겨서 지금은 어미 나무조차 밝히기 어렵지만, 천 그루가 넘는 소나무들이 그의 손에서 세월의 예술품이 되었다. 우리 집 소나무도 굽은 가지와 옹이 진 껍질이 그의 손길과 세월의 무늬를 새기고 있다.

그는 조경수를 기르는 농부가 아니다. 매일 매일의 정성과 손질로 살아 있는 예술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이다. 순 따기, 잎 솎기, 철사 걸기…, 그 모든 작업은 단순한 원예가 아니라 수행이었다. 살아 있는 존재와 대화하며 조율하는 절제와 인내의 마음공부 과정이었다.

“이건 미치지 않으면 못 하는 일이여” 그는 웃으며 말한다. 돈을 좇아서는 도달할 수 없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의 경지, 그저 좋아서, 미쳐서 가는 길. 그래서 그는 소나무가 되었고, 소나무는 그의 삶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언행에선 마치 맑은 숲속 공기처럼 쌉싸름하면서도, 청량한 솔향이 묻어난다.

소나무는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다. 화려하지도, 요란하지도 않지만, 늘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킨다. 척박한 땅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자신의 결을 잃지 않는다. 외면은 거칠지만 속은 단단하고 따뜻하다. 그는 한때 실패로 삶이 휘청였다. 그때 묵묵히 곁을 지켜준 건 사람이 아닌 소나무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곁에 있어 준 소나무가 그의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친구의 삶을 보면서 나는 자신에게 묻는다. “무엇이 나를 나답게 살도록 지켜줄 것인가?” 명예도, 재물도, 사람도 아닌, 결국은 내 안의 중심 아니겠는가.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요란하게 흔들리더라도, 본 모습을 잃지 않는 사람. 바람에 꺾이더라도 다시 하늘을 향해 몸을 일으키는 사람. 나는 그런 존재이고 싶다. 우리 화단의 소나무는 새집에 적응 중이지만, 아무런 내색 없이 의연하게 서 있다. 그 곁에 서서 나는 기도한다. 소나무처럼 살기를. 누군가에게 소나무 같은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윤철 수필가는



'에세이스트' 신인상으로 등단, 전북수필문학회 회장 역임

수상 : 전북수필문학상, 새전북신문문학상, 리더스에세이문학상 등

수필집 : '칸트에게 보내는 편지', '당신 가족은 안녕한가요', '나를 닮은 타인 그 이름 가족'

(현) 전북특별자치도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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