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생태학은 생태적 알아차림이다
'어두운 생태학-미래 공존의 논리를 위하여(지은이 티머시 모턴, 옮긴이 안호성, 펴낸 곳 갈무리)'는 생태적 알아차림이다. 그것은 어두운 우울함이며, 어두운 기이함이고, 어두운 달콤함이다. 오늘날 차트에서 언제나 1위를 차지하는 것은 허무주의이기에 우리는 통상적으로 첫 번째 어둠인 우울을 통과하지 못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 생태적 알아차림은, 우리를 둘러싸고 침투하는 수많은 존재자와 우리의 불가분한 공존과 관련된 비극적 멜랑콜리 및 부정성이라는 특징을 띤다. 그러나 이 책은 두 번째 어둠인 기이한 것을 거쳐 세 번째 어둠인 달콤한 것에, 어떤 역설적으로 아나키적이고 희극적인 공존의 감각에 도달하고자 한다.
'어두운 생태학'은 티머시 모턴이 2014년에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에서 진행한 웰렉 강의를 엮은 책이다. 모턴은 신석기 이래로 아무런 의문 없이 실행되어온 ‘농업로지스틱스’에서 생태위기의 원인을 찾는다. 농업로지스틱스는 처음부터 인간과 다른 생명체에게 유독했지만, 인간종은 알고리즘의 실행을 멈추지 않았고 오늘의 행성적 위기에 이르게 되었다. 긴급한 생태위기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생물학적이고 화학적인 환경과 우리를 관계 맺게 하는 다종다양한 사물들, 우리의 인간 자아와 비인간 반려와 이웃 사이의 관계 네트워크들, 그것들 사이의 유대, 그것들을 갈라놓는 갈등들을 다시 깊이 숙고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생태적 알아차림은 우리에게 다수의 규모들, 즉 현재, 생명, 인간, 자연, 사물, 사고, 논리 같은 규범적 개념을 어지럽히는 규모들에서 생각하고 느끼도록 강제한다. 『어두운 생태학』은 끔찍한 사회적, 정치적, 철학적, 문화적 조건에서 탈출하기 위한 환희의 여정이다.
지난 50년간 야생동물 개체군의 73%가 사라졌다고 한다.(한겨레, 2024.10.10.) 2024년의 폭염과 긴 여름은 한국 사회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기후 위기는 이미 이 행성과 인류를 덮쳤다. 다양한 분석과 대안이 제출되는 가운데 많은 과학자와 논평가가 화석연료 산업을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고 있다. 그런데 매일같이 차에 시동을 걸고 있는 우리가 있다.
티머시 모턴은 '어두운 생태학'의 여정을 이 일상의 사례에서 시작한다. 예년 같지 않은 폭염을 겪고 난 우리에게 시동 걸기 같은 행위는 예전 같지 않다. 시동을 걸 때마다 “슬금슬금 다가오는 무언가가 있다.”(26쪽) 모턴에 따르면 시동을 걸고 있는 ‘나’라는 개인이, 대량으로 분산된 어떤 사물의 구성원이고, 이 사물이 종이라고 불린다는 것, 그리고 인간종에게 기후재난에 책임이 있다는 것은 기묘한 일이다. 이 기묘한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차에 시동을 걸 때, 혹은 화석연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교통수단에 오를 때, 나는 45억 년의 지구사에서 ‘여섯 번째 대멸종’ 사건을 일으키려는 의도가 없다. ‘지구’에 해를 끼치고 이미 73%가 사라져버린 야생동물 개체군을 더 살해하고자 하는 의도도 없다. 게다가 내 차 한 대의 시동 걸기는 통계적으로 무의미하지 않은가? 온갖 생각을 더해 보지만, 한 수준 위로 올라가면 매우 낯선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귀결이다. 하루에 이 행성 전체에서 이루어지는 수십억 번의 시동 걸기와 수십억 번의 석탄 삽질을 합산하면 내가 시동을 걸 때 일어나고 있는 일은 ‘지구’에 해악을 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종의 구성원으로서 나는 인류세에 대해 책임이 있다. 물론 나는 내가 지구 온난화를 이해하는 범위 내에서만 형식적으로 책임을 질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범죄자인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나는 과학 수사를 통해 이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모턴은 이 사태가 누아르 소설과도 같다고 말한다. 내가 형사이자 범죄자이다! 나는 하나의 인격체이면서 이제는 행성 규모의 지구물리학적 힘이 된 한 존재자의 부분이다. 모턴은 “생태적 알아차림은 서술자가 자신이 비극적 범인임을 알아내게 되는 순간”(27쪽)이라고 말한다.
내가 차에 시동을 걸 때마다 “슬금슬금 다가오며” 기운을 내뿜는 이 숨은 기계의 이름은 무엇일까? 화석연료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18세기의 ‘산업혁명’일까? 15~18세기에 수십 만 명의 여성을 마녀로 몰아 학살하며 태동한 ‘자본주의’일까? 모턴에 따르면 “증기와 기름의 시대보다 더 거대하게 떠도는 이 구조”는 “농업 그 자체인 기계, 산업 시대의 기계보다 앞선 기계”(83쪽)이다. 그는 이것을 농업로지스틱스라고 부른다.
농업로지스틱스는 “초승달 지대에서 발생하여 여전히 앞을 향해 쟁기질을 하고 있는 농업의 특정한 로지스틱스”이다. 물류나 병참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 ‘로지스틱스’를 모턴이 사용하는 이유는 농업로지스틱스가 “만들어진 공간에 대한 기술적이고 계획적이며 완벽하게 논리적인 접근법”이기 때문이고, “물러서서 논리를 재고함이 없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농업로지스틱스는 “너무도 성공적이어서 이제는 행성 규모로 농업 기술을 지배하는 농업 프로그램”이며 “전 지구적 농업”이라는 초객체를 창조하기에 이르렀다.(83쪽)
농업로지스틱스는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모턴은 ‘어두운 달콤함’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 단계로서 농업로지스틱스의 논리와 귀결들을 세밀하게 탐구한다. 모턴에 따르면 농업로지스틱스는 인간 세계와 비인간 세계 사이에 경계를 그었고 현존을 순전한 양으로 환원했다. 브뤼노 라투르를 비롯하여 많은 학자들이 문제로 삼고 있는 자연-문화 분열은 그보다 앞선 자연-농업 분열의 결과라고 모턴은 본다. 농업로지스틱스는 사회적이고 물리적이고 존재론적인 두려움, 불안, 모순을 제거할 것을 약속했지만 그것은 유독한 방식이었다. 농업로지스틱스는 가부장제, 빈곤, 엄격한 사회적 계층구조, 전염병 같은 인간-비인간 상호작용의 피드백 고리로 빠르게 이어졌다.(87쪽)
이 책은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끝난 이후에 시작하기', 세 개의 본문 장, '시작 전에 끝내기',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턴은 세 개의 장을 세 개의 실(thread)로 구상했다. 책이 진행되면서 이 실들은 운명의 여신이 운명의 거미줄을 엮듯이 함께 짜인다. '첫 번째 실'에서 생태적 알아차림은 어둡고 우울한 통로를 지나간다. 이 통로에서는 기묘함이라는 용어에 관한 자세한 고찰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신석기 이래로 아무런 의문 없이 실행되었으며 이제는 행성 표면을 뒤덮고 있는 농업로지스틱스가 발견된다.
'두 번째 실'에서 생태적 알아차림은 어둡고 기이한 정류장으로 들어선다. 여기서 생태적 알아차림은 농업로지스틱스라는 프로그램의 실행이 맹목적이었던 이유를 탐색한다. 그 과정에서 “문명”이 비인간들을 지워 왔음에도 결코 증발한 적이 없는 인간과 비인간의 원초적 관계성, 즉 “원-석기”(arche-lithic)가 발견된다. '세 번째 실'은 어둡고 달콤한 장소로 들어선다. 이곳에서 생태적 알아차림은 희극의 가능성 공간에 발을 들인다. 부록에 수록된 논문 「생태학을 생각하기 : 그물망, 낯설게 낯선 자, 아름다운 영혼」에서 모턴은 상호의존성 정리와 그것이 함축하는 바를 상세히 탐구해 나간다. 생태학은 내밀성에 관한 것이고 세계에 대한 올바른 미적 전유를 위해 거리를 유지하는 아름다운 영혼은 더는 없다는 것이 여기서 밝혀진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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