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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  이종근
- 2023년 07월 19일 13시20분

세대교체의 서사시, 풍경화의 역사를 쓰다

김스미의 미술 산책〈29〉 윌리엄 터너 ‘해체를 위해 예인된 전함 테메레르’

석양을 배경으로 떠나는 전함의 장엄한 퇴임식
작가의 불안과 시대적 인식이 담긴 절박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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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테메레르’, 1838, 캔버스에 유채, 91×122cm, 런던 내셔널갤러리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종말을 고한다. 시작할 때의 환희는 이제 추억이다. 평생 한 치열한 봉사는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인간은 태어남과 죽음의 여정이 숙명이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는 늘 화두다.

영국 풍경화의 거장 윌리엄 터너(1775-1851)가 있다. 인생 초반에 화가로 성공하고 여행을 통해 영감을 얻었다. 템스강 하류 첼시에 살면서 은퇴한 선장행세를 할 만큼 강이나 바다를 좋아했고 작품의 베이스다.

고전적인 요소가 많았던 초기풍경은 갈수록 자연이 아닌 예술 자체를 표현한다. 그의 바다는 멋진 원시적 풍경이 아니다. 평범한 풍경을 잘 묘사한 대가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작가의 불안과 시대적 인식이 담긴 절박한 메시지다. 풍경화라는 하위주제의 레벨업이다. 방파제에 휘몰아치는 폭풍우와 알프스의 눈보라, 그의 작품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고독한 은둔 성향의 그는 극한의 여행이 영감의 소스였다. 증기선을 타고 가다 만난 폭풍우는 세기의 작품이 됐다. 국회의사당에 불이 나자 달려가 스케치한다. 그의 그림 테마를 평론가 존 러스킨은 ‘죽음’이라 했다. 필자는 고독과 암울한 폭력, 비전 없는 희망처럼 보인다.

전함 테메레르는 1805년 나폴레옹의 몰락을 가져온 트라팔가르 해전의 참전 용사다. 증기선 시대를 맞은 지나간 영웅 범선의 마지막 항해, 이별의 서사시다. 새 시대를 여는 검은 증기선 굴뚝의 붉은 연기가 산업화 시대를 예고한다. 비록 예인되어 끌려가지만, 금색 장식의 아름다운 흰색 전함 테메레르는 찬란한 과거의 위용 그대로다. 터너는 템스강 산책길에 마주한 이 풍경을 묘사했다. 지는 석양을 배경으로 떠나는 전함의 퇴임식은 장엄하다. 강물과 하늘은 풍경 색이 아닌 터너 마음의 색이다. 돛대의 십자가 모양이 숭고함에 의미를 더한다. 할 일을 마친 노장의 백기 투항이다.



△‘노예선’ 1840, 캔버스에 유채, 91×122cm, 보스턴 미술관



BBC 조사, 영국 소장품 중 가장 위대한 그림 1위다. 2020년부터 20파운드 지폐의 주인공이자 배경 그림이다. 왼쪽 푸른 하늘과 붉은 석양의 대비는 과거 영광에 대한 상실감의 표현이다. 그의 작품은 인상주의 태동에 기여하고 표현주의 추상의 시작이다.

‘노예선’은 폭풍우가 밀려오는 바다에 노예를 던지고 돌아가는 배다. 병들거나 팔리지 않는 노예를 보험금을 타내려고 짐짝처럼 버리는 잔인한 풍경이다. 실제 풍경이라기보다 추상적 요소를 강하게 대비시켜 참극의 현장을 고발한다. 터너는 그림을 통해 비인간적인 행태를 고발하고 풍경화를 알레고리 하여 비판했다.

터너의 풍경은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다. 빛과 색채로 시대를 고발하고 지난날을 회상하며, 거대한 자연으로 인간의 초라한 행동의 무례함을 역설한다.

터너는 뒷골목 이발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들 그림을 자랑스럽게 이발소에 걸었다. 시쳇말로 이발소 그림이라고 하는 그림 폄하가 있다. 터너의 그림도 한때 이발소 그림이었다. 19,000여 점 드로잉과 200여 권의 스케치북을 남긴다. 그는 작업의 총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전체를 함께 전시하기를 바랐다. 자기 경험이 그림으로 역사적 증거물이 되기를 원했다. 이것이 터너를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화가로 인정하는 이유다. 세인트폴 대성당에 묻히고 드로잉은 대영박물관에 소장된다. 시곗바늘은 늘 질주한다. 행복한 시대의 아이들이 어디 있을까? 앞서간 선배의 노고와 희생의 대가로 잠시 온 오늘의 평화가 있다. 최후의 승리라는 건 없다. 진실을 표현하는 프로세스가 교양 있고 세련되면 발전이다./화가 김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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