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2년 08월 09일 13시31분
[이승연 교수의 전북문화재이야기]푸름에 젖은 정자, 함벽정
함벽정은 왕궁저수지의 아름다운 경관과 더불어 당시 명필들이 쓴 현판과 편액, 비석을 품은 누각
익산시 왕궁면 왕궁저수지에 세워진 함벽정(涵碧亭, 전북 유형문화재 제 127호)은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누각으로 규모가 매우 크다. 주변의 경관이 아름답고 일대가 매우 넓어서 누각명도 '푸름에 젖은 정자' 라는 뜻으로 지어졌으며, 이 일대를‘함벽정원림(涵碧亭園林) ’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이 누각은 1930년에 왕궁저수지가 완공되어 그 둑과 수문 사이에 높이 50m 정도의 암대(巖臺)가 생기자 이곳 출신 부호였던 표정 송병우(瓢庭 宋炳雨)가 사재를 들여 정면 4칸, 측면 4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창건하였다. 송병우는 망모당(望慕堂)을 지은 표옹 송영구(瓢翁 宋英耉) 가문의 후손으로, 조선 말 종9품 참봉(參奉) 벼슬과 왕궁수리조합장을 지냈으며, 지역의 교육사업과 사회봉사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1919년에는 흉년이 들자 곡물을 풀어 기근에 허덕이는 주민들을 보살폈고, 후학을 양성하고자 사재를 털어 왕궁초등학교, 삼기초등학교, 전주인후초등학교를 설립하고 많은 땅도 희사 하였으며, 왕궁과 삼례를 잇는 도로를 처음 만드는 등 훌륭한 일을 많이 하였던 인물이다. 송병우의 이러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과 더불어 함벽정에는 그의 문화재적인 과업 또한 남겨져 있으며, 당시의 업적을 기리는 공적비와 준공기념비 3기가 함벽정 입구에 세워져 있어서 그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함벽정의 건축양식은 이익공계(二翼工系) 양식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정자로서는 매우 큰 규모에 속한다. 특히 기둥 위의 공포(拱包)는 이익공계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평주(平柱) 위 공포의 쇠설(牛舌)이 전면으로만 돌출되는 데 비해 이 건물에서는 좌우 대각선 방향으로도 돌출시켜 마치 귀 기둥에서의 공포결구수법(貢包結構手法)과 같이 짜여진 특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한쪽에 구들방도 만들어져 하룻밤 묵어갈 수 있는 별장이기도 하였다.
뿐만아니라 함벽정에는 현판 3개와 편액 4개가 걸려 있어서 당시의 문화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외부의 “함벽정” 현판은 전라도 도사(都事 : 감찰관)를 역임한 벽운 유재호(璧芸 劉載鎬, 1870-1953)가 행기(行氣)의 해서로 쓴 것이고, 뒤편 왕궁저수지 방향에서 본 현판은 이조판서를 지냈던 석촌 윤용구(石邨, 尹用求, 1853~1939)가 행서로 쓴 것이다. 내부에는 당시 이곳을 거쳐 갔던 많은 문인들과 서예가가 남긴 현판과 편액이 걸려 있는데, 전서체로 쓴 "표정청경(瓢庭淸境)"의 현판은 전북 김제출신인 성리학자이자 명필로 풍미했던 설송 최규상(雪松 崔圭祥, 1891~1956)이 썼다, 이는 설송이 송병우의 아호인 표정(瓢庭)을 인용하여, 즉 박을 기르는 정원의 맑은 곳을 의미하여 쓴 것으로 보인다.
또한 1937년 김녕한(金寗漢)이 쓴 함벽정기(涵碧亭記)의 기문(記文) 외에 3편의 시문 편액이 걸려 있어서 당시 함벽정에 많은 문인들이 모여서 공부하고, 시문을 읊으며, 풍류를 즐겼던 명소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함벽정은 남송시대 대학자 주희(朱熹)의 시구중 '일수방함벽 천림이변홍(一水方涵碧 千林已變紅 ; 한 줄기 강물 막 푸르러지려니, 많은 수풀 이미 붉게 바뀌었구나)을 차용해 당호를 지었다고 하는데, 이 누각 안에 들어서면 푸른빛이 감도는 저수지의 맑은 물이 한눈에 들어오고 선선한 바람이 등줄기를 타고 지나가며 더위에 지친 몸을 달래주니 푸름에 젖은 정자가 맞다는 생각이 든다.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고 가는 길과 앞마당 그리고 후원에도 오래된 벚나무가 있어서 하늘을 가리며, 저수지의 물 위로 만발한 벚꽃 그림자가 드리워져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이룬다.
그러나 사계절 모두 힐링의 시간을 내어주는 함벽정이니 더위가 한창인 요즈음, 열개문으로 한껏 높게 들린 창호 사이로 보이는 왕궁저수지의 아름다운 전경과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고, 주변의 산책길을 걸으면서 잠시 더위와 근심을 잊는 시간 권유해 보며, 인근 보석박물관과 공룡테마공원, 익스트림 슬라이드 타워, 가족공원이 한데 어우러져 있으니 가족 나들이로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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