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발걸음]기우제와 풍년을 기원하던 선사인의 흔적, 고인돌
/이병렬(고창문화연구회 사무국장·이학박사)
지난 6월 21일은 하지(夏至)다. 하지는 북반구에서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밤의 길이가 가장 짧은 절기다. 한반도의 중남부의 낮의 길이는 평균 14시간 50분이다. 하지까지 농부들은 보리를 베고 모내기를 끝내야 했기 때문에 1년 중 추수와 더불어 가장 바쁜 때였다. 그러나 올해는 몇 십 년 만에 찾아온 가뭄으로 모내기에 애를 먹었다. 모내기를 한 곳도 물이 부족하여 벼의 성장이 예년 같지 않다고들 한다. 대부분의 논들은 경지정리와 수리시설이 잘 되어 있어 어느 정도의 가뭄은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올해처럼 극심한 가뭄이 오면 한해를 극복하는 것도 쉽지 않다.
어느 시기건 1년 벼농사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하지 전의 강수량이었다. 5월 중순부터 6월 말까지의 소만(小滿), 망종(芒種), 하지에 이르는 시기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1년 농사를 망치게 된다. 특히 볍씨 뿌리기에 적당한 시기이자 보리 베기가 한창일 망종 이후부터 하지까지의 물 관리는 절대적이다. 이때부터 모내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하지 전 가뭄과 하지 후 홍수에 대비해야 했다. 옛날 사람들은 망종 전후로 비가 내리지 않으면 연중행사로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 우리나라는 3~4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가뭄의 대재앙을 당하였으므로 전국방방곡곡에서 기우제가 성행했다. 물론 가뭄이 없더라도 사람들은 모내기를 끝내고 마을의 신성한 지역에 제단을 쌓아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제는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오거나 주민 중 한 사람을 제관으로 삼아 관장되었다. 고창 가평 주민들은 방장산 아래 용추폭포 계곡에 산다고 믿었던 용에게 돼지를 산채로 바치는 기우제를 지냈다. 어떤 곳은 잡은 가축의 피를 뿌리는 등 마을 공동행사로 다양한 형식의 제를 드렸다.
하지 전후의 마을행사는 선사시대의 유적인 고인돌에 뚜렷이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인돌과 절기를 연관한 연구는 지금까지 국내에선 이루어진바가 전혀 없다. 절기를 담은 고인돌은 마을 주변의 구릉에 있는 고인돌이나 소규모 고인돌군에서 일정한 패턴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필자는 수백기의 단독형과 소규모 고인돌군의 조사를 통해 각 고인돌과 고인돌 간의 패턴과 의미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동지・춘분・하지・추분의 일출일몰과 금성 및 북극성을 비롯한 행성들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었음을 확인했다. 고인돌시대 사람들의 한 해 패턴은 밤이 가장 긴 동지에서 시작해서 밤낮이 동일한 춘분, 그리고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에 이르면 한 해의 절반이었다. 낮밤이 동일한 추분을 지나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동지에 이르면 한 해가 끝나고, 한 해가 시작되었다.
절기와 관련된 고인돌은 부족민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중요한 제단이었다. 고인돌이 절기를 담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고인돌이 바라보고 있는 지표면의 방위를 통해서다. 고인돌 덮개돌의 장축이나 받침돌의 통로 및 전체적인 형태를 통해 고인도의 방향은 결정된다. 고인돌이 향하고 있는 곳이 결정되면 나침반으로 방위각을 측정한다. 하지와 관련된 고인돌은 덮개돌의 장축이나 통로가 동북쪽인 60° 전후의 지표면으로 향하고 있다. 이 방위 전면에 있는 산봉우리나 들판에서 하짓날 태양이 정확하게 떠오른다. 동북쪽인 60°방향으로 고인돌 통로나 장축을 놓은 것이 하지 관련 고인돌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하지 제단 고인돌이 세계문화유산인 강화 부근리고인돌이다. 하짓날 전후로 이 고인돌의 두 받침돌 사이로 일출의 장관이 연출된다. 물론 고창을 비롯한 한반도 서남부 지역의 마을 인근, 특히 해수면 변동으로 인한 범람의 피해를 입지 않는 하천 상류나 산간의 충적지에 주로 이 방위의 고인돌을 볼 수 있다. 물이 부족한 천수답의 농경지에 망종 전후까지 비가 충분히 내리지 않으면 모내기를 할 수 없어 기우제는 선사시대 부족의 가장 중요한 의례였다. 고대 천문현상과 고인돌의 관계 해석은 자연과학을 배경으로 한 선사시대의 사회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연구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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