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왜곡된 역사에서 동학농민혁명의 미래를 찾다
/전민중(고창군 상하수도사업소 팀장)
많은 이들은 “동학농민혁명(이하 ‘혁명’)이 세계 4대 시민혁명의 맨 앞에 위치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이는 평화를 사랑하는 정신적인 면에서 우위에 있어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혁명 지도부가 내건 포고문과 동학농민군 행동강령 등을 보면 불살생을 목표로, 전투를 수단으로 천명하고 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민란 성격을 지닌 고부봉기를 『동학농민명예회복법』에 포함하려는 움직임 등을 보이고 있어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현상이 과거 왜곡된 혁명 역사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예나 지금이나 왜곡은 또 다른 왜곡을 재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의 상황을 냉철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왜곡된 역사를 직시해야만 한다. 그래야 비로소 혁명의 미래가 보인다. 혁명을 왜곡한 사례 몇 가지 예로 들면 아래와 같다.
첫째, 일제가 왜곡한다.
일본은 혁명을 ’고부가 중심이 되는 폭동 그리고 조선정부에 대항해 일어난 무력 반란‘으로 철저하게 축소한다. 이를 위해 고부봉기와 황토현전승지에 주목하고 ’동학란‘임을 부각시킨다. 결과적으로 당시 정황을 알려주는 여러 기록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포고문을 선포한 무장기포(1894년)는 일제강점기 동안 역사에서 철저히 잊혀진다. 실제 무장기포가 고창 무장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1940년 이후에, 기포일이 3월 20일이라는 것은 1985년에야 밝혀진다.
둘째, 군사정권이 왜곡한다.
혁명과 조상과의 관련성(?)을 강조하여 군사 쿠데타를 합리화하고자 여러 기념사업들을 장려한다. 이러는 동안 일제에 의해 부각된 고부봉기와 황토현전승지는 혁명의 대표로 고착화되는 반면, 무장기포는 역사의 수면 아래로 더욱 가라앉는다. 실제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은 황토현 갑오동학혁명기념탑 제막식(1963년)에서 “5.16혁명도 이념면에선 동학혁명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한다. 전두환 중앙정부부장 또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진압(1980년) 후 전봉준 유적을 정비하고 황토현 기념관을 세운다.
셋째, 지역이기주의도 왜곡한다.
과거 15여년 동안 기념일 제정에 있어 여러 지역들이 줄다리기를 하면서 선양되어야 할 혁명은 만신창이가 되어 간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자료들에 대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수많은 학자들은 무장기포의 타당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지역의 강한 반대가 뒤따른다. 이에 ’기념일 선정위원회‘는 일제가 왜곡하고 군사정권에 의해 고착화된 기념사업들과 국민여론 조사결과를 절대 기준으로 삼는다. 결국 반강제적으로 황토현전승일을 혁명기념일로 제정한다. 여기에서 무장기포는 다시 한번 혁명 역사에서 변방에 위치하게 된다.
사실 ’황토현전승일‘을 기념일로 제정한 것은 목표가 아닌 ’수단‘을 혁명의 얼굴로 내세운 격이다. 따라서 이는 앞서 언급한 혁명이 세계 4대 시민혁명의 맨 앞에 놓여야 한다는 주장을 무색케 한다.
이제는 고등학교 한국사 국정교과서 8종 모두가 혁명의 시작으로 무장기포를 기술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짚신을 신고 참여하여 산화한 수많은 조상들이 과연 싸움을 잘 하는 전투 군인으로 역사에 기억되기를 원할 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서, 세계사에 우뚝 서는 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울력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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